▲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전격적인 귀국이 몰고올 파장에 벌써부터 정치권이 출렁이고 있다. 지난 2002년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이 동남아에 머무르던 때의 모습. 사진제공=문화일보 | ||
그로부터 5년 7개월, 김 전 회장이 드디어 기나긴 해외 유랑 생활을 끝내고 곧 귀국할 것으로 보인다. 그의 전격적인 귀국이 몰고올 파장에 벌써부터 정가는 출렁이고 있다. 김 전 회장의 귀국이 정계 개편을 몰고올 것이라는 섣부른 전망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동교동과 민주당은 긴장하고 있고, 이회창 전 총재와 한나라당은 다소 찜찜해하는 가운데 최근 코너에 몰린 여권에서는 ‘회심의 미소’가 언뜻 스쳐지나가고 있다.
2001년 12월. 박정훈 전 의원의 부인 김재옥씨가 “1988년 세 차례에 걸쳐 김우중 회장으로부터 2억∼3억원 정도가 들어간 사과박스 1개씩을 받아 DJ의 장남 김홍일 의원을 통해 동교동으로 전했다”고 폭로했다. 그 파장은 컸다. 당시 DJ 정권은 “김씨의 발언 배후에 김 전 회장이 있는 것 아니냐”며 격앙했다. “김 전 회장이 정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얘기도 나왔다. “더 큰 핵폭탄은 아직 남아 있다”는 얘기도 불거졌다.
1년 뒤인 2002년 12월. 국내에서는 대선 정국이 불을 뿜던 시기였지만 다시 한번 김 전 회장의 귀국설이 떠돌았다. 예상을 뒤엎고 노무현 후보가 대권을 잡았다. 주변에서는 “김 전 회장과 개인적 친분이 있는 노 후보가 당선됐으니 곧 귀국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판단이었다.
김 전 회장의 한 측근은 “97년 대선 때에도 상당한 대선자금이 DJ측에 건네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최소한 정치자금에서는 여야 모두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김 (전) 회장은 항상 정치자금을 여야 후보에게 동시에 제공했다”고 밝혔다.
그의 말을 되짚어본다면 ‘김 전 회장의 정치자금’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정치인은 노무현 대통령 정도인 셈이다. 만약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당선됐으면 김 전 회장의 귀국이 실현됐을 것이란 예측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실제 김 전 회장은 대선의 추이를 봐가며 귀국 준비를 했다가 또다시 주저앉았다고 한다.
김 전 회장의 정치비자금 규모는 수백억원대를 훨씬 넘을 것이라는 게 공통된 관측이다. 재계에서도 “김 전 회장은 정치 권력을 적절히 잘 활용하며 기업을 키워온 스타일”이라고 평한다. 대우 관계자들조차도 이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던 그는 80년 신군부가 들어서자 곧바로 부부 동반으로 전두환 부부를 찾아갔고, 사회정화 운동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식의 발표도 했다. 권력에 가까이 다가가고, 그 권력의 힘을 적절히 이용할 줄 아는 그의 예민한 감각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은 1992년 대선이었다.
자신과 ‘숙적’ 관계였던 정주영 회장이 정계에 투신하여 대선 출마를 발표하자, 김 전 회장도 충격을 받고 대선 출마 가능성을 타진했다. 하지만 당시 당선 가능성에서 여당 후보인 YS보다 낮게 나오자 그는 출마를 포기하고 사실상 YS를 뒤에서 도왔다.
그런 면에서 볼 때 97년 대선에서 DJ의 승리는 김 전 회장에게 좋은 기회였다. 김 전 회장은 야당 인사였던 DJ를 꾸준히 후원해왔다. 김재옥씨의 폭로처럼 87년 대선에서 3위로 낙선한 직후에도 DJ에게 돈 상자를 전달했고, YS 정권에서 정계 은퇴를 선언한 뒤 다시 정계에 복귀한 이후에도 그의 정치자금은 동교동에 건네졌다. 김 전 회장의 한 측근은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시 YS 정권으로부터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밝혔다.
실제 DJ 정권이 출범한 이후 김 전 회장은 승승장구했다. 재계의 탐탁찮은 반응에도 불구하고 DJ의 강력한 주문으로 그는 전경련 회장에 취임했다. DJ는 “정치는 내가 대통령이지만 경제는 김 회장이 대통령이다”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DJ 정권 출범 직후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금모으기 운동 등을 벌여나간 아이디어 역시 김 회장에게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만큼 정권 초기 김 대통령과 전 김 회장의 밀착 관계는 꽤 깊었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은 DJ 정권 출범 직후 경제 각료들과 잦은 마찰을 빚었다. 심지어는 대통령이 배석한 회의석상에서 그들을 가리켜 ‘책상대물림들’이라는 비하적인 표현까지 썼다고 한다.
김 전 회장의 최측근인 백기승 전 대우 이사는 “99년 초부터 당시 이헌재 금감위원장, 강봉균 청와대 경제수석, 전윤철 공정거래위원장 등 3인의 김 회장에 대한 반감과, 이에 따른 대우그룹의 워크아웃 처리 공감대 구축이라는 기류를 걱정하는 우려의 소리가 이어졌고, (권력) 가까이서 이를 지켜본 이조차 ‘대우의 붕괴는 이들 3인으로 대표되는 국민의 정부 재벌 정책 입안자들이 감정의 벽을 넘어서지 못한 데 있었다’는 안쓰러운 지적을 할 정도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강봉균 전 수석은 “당시 외환위기의 주범이 무차별적인 돈 빌리기로 몸집만 불려온 재벌과 이들에게 무분별하게 돈을 빌려준 금융권이었는데도, 해외 금융 부담이 누구보다 큰 김 회장은 구조조정에 늑장을 부렸고 오히려 수출금융 규제완화를 (대통령에게) 계속 요구했다. 도저히 그의 말을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반박했다.
실제 정·관·재계는 물론 학계에서조차 “박정희식 개발 성장 시대의 총아였던 김 회장이 김대중식 재벌 규제 정책 시대로의 전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너무 강하게 부딪쳤다”고 진단했다. 김 전 회장의 경기고 동창인 이종찬 당시 국정원장도 “DJ 정권 초기 김 회장에게 ‘대선자금 낸 것 믿고 회사 구조조정 않으면 다칠 수도 있으니 받아들여라’라고 충고했던 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당시 김 전 회장은 정말 순진하게 DJ에게 건네진 정치비자금만 믿고 정부의 구조조정 권고를 뿌리치는 고집을 부렸던 것일까. 이에 대해 김 전 회장의 측근들은 ‘음모론’을 주장하고 있다.
백 전 이사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증언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김 회장 퇴진 이후 사실상 회장 자격으로 대우를 방문하고 있던 오호근 기업구조조정위원장은 대우 간부들과의 대화 도중 ‘98년 6월부터 당초 1년간 계약으로 위원장직을 맡기로 했기에 99년 5월 그만두겠다고 하자 조만간 대우가 워크아웃에 들어간다며 극력 만류하는 바람에 99년 말까지 6개월을 연장 근무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당시 DJ 정권은 이미 대우 그룹의 워크아웃을 결정하기 3개월 이전부터 사실상 퇴출의 밑그림을 그려놓고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에 대해서는 야당인 한나라당의 박계동 의원도 같은 견해를 밝히고 있다. 지난 2001년 베트남에서 김 전 회장을 만난 바 있는 박 의원은 “재벌 개혁의 칼날을 휘두르던 DJ 정권으로서는 해외 시장에 선보일 수 있는 가시적인 성과가 필요했다. 그런 면에서 대우는 아주 좋은 상품이었다. ‘봐라. 대우라는 세계적 기업도 필요하면 워크아웃도 불사한다’는 식으로 말이다”라고 전했다.
▲ 왼쪽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 이회창 전 총재, 노무현 대통령. | ||
박 의원은 “그래도 김 회장은 마지막까지 DJ를 믿었다고 한다. ‘워크아웃을 하더라도 대우자동차 등 6개 계열사의 구조조정은 김 회장에게 맡기겠다’는 약속을 하며 ‘잠깐 나가 있어라’고 했는데, 결국 그것이 마지막이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전직 국회의원 L씨는 “당시 김 전 회장에 상당히 호의적이었던 DJ의 마음이 점차 돌아선 것은 경제각료 3인방의 제지도 컸지만 99년 5월 국정원장이 이종찬씨에서 천용택씨로 교체된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98년 국방장관 시절부터 군무기 사업자 선정 문제로 김 전 회장과 사이가 틀어졌던 천 원장이 국정원의 정보력을 동원해서 대통령에게 ‘김 회장의 문제점’을 수시로 보고했다는 것이다.
L 전 의원은 “솔직히 지난 DJ 정권 때 김 전 회장의 입국을 종용하는 듯한 제스처를 여러 차례 취했지만, 정부나 수사 당국이나 별로 적극성을 띠지 않았다. 당시 여권 내에서는 김 전 회장의 귀국은 막는 것이 좋다는 입장이 공공연히 피력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김 전 회장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자연스레 지난 97년 대선자금 이야기가 불거질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실제 김 전 회장은 99년 당시 DJ의 한 측근에게 대선자금이라는 X파일의 폭로 가능성을 흘리기도 해서 동교동측을 긴장시켰다고 한다. 김 전 회장이 주장하는 대선자금의 규모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수준이었다는 것.
그렇다면 현 노무현 정권은 김 전 회장의 귀국이 몰고올 파장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을까. 기자는 참여정부 출범 이후부터 꾸준히 김 전 회장의 복귀 가능성을 취재했다. 하지만 출범 초기 여권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부담스럽다”, “국민의 정서가 아직 무르익지 않았는데 파장을 일으킬 필요가 있느냐”는 쪽이었다. 항간에 떠도는 노 대통령과 김 전 회장간의 친분설로 인해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올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섞여 있는 듯했다. 오히려 야권에서 김 전 회장의 귀국설이 흘러 나왔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 여권의 기류에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3월 초 당시 열린우리당 차기 의장이 유력시되던 문희상 의원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우중 회장도 사면심사의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해서 눈길을 끌었다. 자연히 김 전 회장의 귀국 임박설이 또다시 나돌기 시작했다. 숨죽이고 있던 김 전 회장의 해외 동선도 비교적 활발하게 전달되기 시작했고, 김 전 회장의 측근 주변에서 입국 가능성이 언뜻 내비쳐지기도 했다. 한 측근은 “현 정부와 김 회장 간의 유일한 걸림돌인 이헌재 부총리가 도덕성 문제로 낙마했으니 이제 걸림돌도 제거된 셈이 아니냐”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불거진 열린우리당 김종률 의원의 지난달 김 전 회장 조우 사실은 최근 여권의 기류 변화가 단순한 추정만은 아님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김 의원은 “순수하게 개인적인 차원에서 우연히 이뤄진 만남”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특히 김 의원은 민변 창립 멤버로서 노 대통령과 상당히 친밀한 관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노 대통령이 과거 총선에서 낙선한 뒤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함께하기도 했고, 특히 이해찬 총리와는 정계 입문 시절부터 상당히 가까운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소한 윗선의 심중은 알고 만났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야권의 한 의원은 “김 전 회장의 귀국이 지금 시점에서 바로 터져나오는데 대해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 유전 게이트에 행담도 사업 의혹까지 온통 여권의 비리 의혹으로 코너에 몰린 시점에서 김 전 회장의 귀국설은 벌써부터 정가의 관심을 돌려놓고 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야권의 한 전직 의원은 “김 전 회장이 들고올 X파일의 후폭풍은 DJ가 1순위이고 창이 2순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은닉자금이나 분식회계 수사 과정에서 자연스레 불거져 나올 대선자금과 정치자금을 두고 한 말이다. 특히 지금도 DJ 경제팀의 ‘대우 죽이기 시나리오’를 믿고 있는 김 전 회장과 그 측근들은 대우 명예 회복을 위해 더욱 목소리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
한 전직 의원은 “김 전 회장이 국내에 있는 자체만으로도 DJ와 민주당에 대한 압박 카드로 작용할 수 있다. 대선자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나라당과 이회창 전 후보도 마찬가지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으로서는 굳이 손해볼 것 없는 정국 대전환용 카드를 손에 쥔 셈이다. 또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호남에서 세를 확장하고 있는 민주당에 보다 강력한 압박을 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 정권 입장에서는 김 전 회장의 귀국은 더없이 좋은 카드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여권과 김 전 회장측의 ‘빅딜’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국민 정서상 김 전 회장을 바로 사면시키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이미 70을 바라보는 고령인 데다가 오랜 해외 생활로 건강이 악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사면 이전에 형 집행정지로 나오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 카드라면 김 전 회장도 충분히 감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