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보에 공개된 이인희 한솔 고문, 이건희 삼성 회장, 고 이병철 회장, 이명희 회장의 사진(왼쪽부터). 이병철 회장은 임종 전 이들을 불러 유언을 남겼다. | ||
이화여고-이화여대 미대를 나온 그는 4·5대 국회의원과 삼호방직 및 삼호무역 회장을 지낸 정상희씨의 차남 정재은씨와 지난 67년 결혼했다. 슬하에 1남1녀를 두었다.
탤런트 고현정씨와 결혼했다 이혼한 아들 정용진씨(38)는 현재 신세계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고, 딸 정유경씨는 조선호텔 상무로 일하고 있다.
그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그 자신에 대해 “분석하는 것, 변화무쌍한 것,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고 했고 “추구하지 않고 감동받지 않는 삶은 재미가 없다”고도 밝혔다. “아버지를 닮았고, 아버지를 닮아야지”하고 다짐했던 이 회장은 마음에 드는 음식을 발견하면 일주일 동안 그것만 먹기도 하는 편식습관도 있고, 늘상 메모하는 습관까지 아버지를 닮았다고 밝혔다. 다만 이병철 회장이 ‘스트레스까지 즐겼다’면 이명희 회장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도망가는 편’이라고 한다.
이명희 회장이 이병철 회장과 많이 닮았다는 얘기는 삼성가 인물들의 증언에서도 확인된다.
이 회장의 사촌오빠인 이동희 제일병원 전 이사장은 “명희는 막내라는 것을 누구나 느끼게 해주는 동생이다. 구김살 없고 집안의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는 동생이다. 어린 시절에는 애교덩어리였고 나이가 들어서는 매사를 깔끔하게 처리해서 누구나 명희를 좋아했다.
우리 집안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들은 명희야말로 돌아가신 선대 회장님을 가장 많이 닮았다고 말하곤 한다. 명희는 선대 회장님만큼이나 깔끔하고 정확, 명확한 편이다. 결혼을 한 뒤에는 ‘신세계 이 상무’라고 불리곤 하지만 마찬가지로 나에게는 늘 ‘애교덩어리 막내 명희’였다”고 그의 회고록에 쓰기도 했다.
삼성가의 장자인 이맹희씨도 그의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에서 이명희 회장의 삼성가 내 위치에 대해 짐작할만한 발언을 했다.
그는 “운명 전에 아버지(이병철)는 인희 누나, 누이동생 명희, 동생 건희, 그리고 내 아들 재현이(현 CJ 회장) 등 다섯 명을 모아두고 그 자리에서 구두로 유언을 하고 건희에게 정식으로 삼성 경영권을 물려주었다”고 밝혔다.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일찌감치 밀려났던 이맹희씨는 부친인 이병철 회장과 소원해진 뒤 오랜기간 낭인 생활을 했다. 그때 호랑이 같던 이병철 회장 몰래 맹희씨를 도운 것은 막내 여동생 명희씨였다. 그는 이에 대해 “(낭인 생활 당시) 내 생활비는 누이동생 명희가 상당부분 보조를 해주었는데 나는 지금도 명희에게 더할 나위 없는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명희는 내가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 주었고 늘 따뜻한 마음씨로 오빠인 나를 감싸 주었다. 내가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말을 못하고 있으면 늘 지갑을 열고 가지고 있던 돈 전부를 나에게 쥐어준 것도 명희였고 아버지가 나에 대해서 부정적인 평가를 하면 마지막까지 내 편을 들어서 아버지를 설득하려 한 것도 명희였다. 도망자 생활을 하던 시절에도 나는 경제적으로 명희 덕을 많이 봤다”고 회고록에 적고 있다. 이명희 회장이 삼성 집안에서 균형자 노릇을 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명희 회장이 이런 역할이 가능했던 데는 그가 이병철 회장을 누구보다도 따르는 ‘사랑스런 딸’이었기 때문이다. 이명희 회장은 신세계 사보에 기고한 ‘아버지 이병철 회장과 나’라는 글에서 이병철 회장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받았을 당시의 상황에 대해 썼다.
“76년 아버지가 최초로 위암 판정을 받았을 때 집안의 공기는 무거웠으며 사람들은 차마 아버지께 위로의 말씀도 붙여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 곁에서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하염없이 울었다. 철없이 우는 막내딸에게 아버지는 그간 조사한 수술 의사의 경력부터 위암 완치사례, 치료계획 등의 자료를 보여주면서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셨다. … 아버지가 도쿄에서 수술을 받을 때 내가 동행했다. 수술이 끝나고 난 후 아버지께서 수술실에 들어갈 때 무슨 생각을 하셨느냐고 여쭤 보았더니 “니가…”라면서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글썽이셨다. 나는 아버지 가슴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렸다. … 나는 아버지께 인간적으로 반했고 아버지도 나에게 반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를 모시면서 어떻게 하면 아버지가 하루 하루를 즐겁게 보내실지, 또 어떻게 하면 아버지께 감동을 드릴 수 있을지를 계속 생각하고 실천했다.”
선대 회장에 대한 이명희 회장의 애틋한 정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삼성가 사람들로부터 이병철 회장만큼이나 ‘깔끔하고 정확하고 명확하다’는 평을 듣는 이 회장은 이번 기고문에서 이건희 회장에 대한 평도 실었다.
“아버지는 시간을 잘 지키고 계획된 일정에 따라 철저하게 움직이는 분이었다. 그런 점에 비하면 삼성의 이 회장은 조금 다른 측면을 지닌 사람이다. 그러나 예리한 직관력이나 동물적인 감각은 결국 같은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부하 직원의 행보만 보고도 현장 상황을 파악할 정도로 예리한 직관력의 소유자였다. 삼성 이 회장도 아버지의 그러한 직관력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이건희 회장에 대한 이런 직접적인 평가는 이례적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