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 16일 대검에서 서울구치소로 구속수감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
그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과도 10여 년 이상 친분을 맺어온 것으로 드러나 눈길을 끈다. 노무현-김우중 두 사람의 인연 속으로 들어가 본다.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 ‘대우가족’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87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무현 변호사는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씨가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것에 크게 분노해 사인 규명작업에 나섰다가 3자 개입과 장례식 방해 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었다. 당시 노 대통령은 변호사 업무정지 처분까지 받았다. 이런 사실이 일부 신문에 보도된 것을 계기로 노무현 이름 석자가 세상에 알려졌고, 노 변호사 자신의 인생도 큰 전환점을 맞는다.
이 사건을 계기로 노 대통령은 대우조선과 남다른 인연을 맺게 된다. 그는 지난 90년대 중반 대우조선의 거제 공장에서 파업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거제로 내려가 노사 중재를 열성적으로 했다. 노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김우중 전 회장의 경영스타일을 알게 됐으며 이를 계기로 김 전 회장과 교분을 쌓아온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다가 노무현 대통령이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종로 보궐선거에 출마한 것을 계기로 김우중 전 회장과도 더욱 가까워지게 된다. 둘 사이에 바로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있었기 때문.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김 전 회장과 경기고 동기동창인 동시에 김 전 회장에게 정치무대와의 끈을 이어주는 ‘정치교사’이자 ‘바람막이’와도 같은 존재였다. 대우가 몰락할 때도 그나마 김 전 회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대좌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이종찬 전 원장의 도움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런 이종찬 전 원장이 98년 종로 국회의원에서 국가정보원장으로 입각하게 되면서 그 자리를 노 대통령이 물려받게 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새 정부의 요직에 재직중인 이종찬 전 원장을 대신하여, 직전 선거에서 그 지역에 출마했던(당시 꼬마민주당 후보) 연고권을 기반으로 집권당인 새정치국민회의의 공천을 받게된다. 이 과정에서 노 대통령은 같은 여권인 이 전 원장의 도움을 받게 되고, 김 전 회장과도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98년 7월 김우중 전 회장의 큰아들 선재의 이름을 따서 만든 아트선재센터(관장 정희자) 개관식에도 참석하는 등 김 전 회장과 친분을 두텁게 쌓아나간다. 당시 개관식에는 김덕룡 한나라당 부총재 등 각계 인사 4백여 명이 참석해 대 성황을 이뤘다고 한다.
▲ 지난 2001년 8월17일 <동아일보>에 실린 노무현 대통령(당시 변호사)의 대우자동차 서포터 광고. | ||
그런 인연 때문인지 노 대통령은 유독 대우그룹의 노사 관계에도 관심이 많았다. 노 대통령은 지난 2000년 5월 노사갈등이 심하던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을 방문했었다. 그런데 노조원들과 대화를 나누다 흥분한 노조원이 던진 계란을 맞는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당시 “구조조정의 큰 흐름을 되돌릴 수 없다. 부평공장이 같이 매각될 수 있도록 협력하자”며 원칙론을 제시하자 노조원들이 흥분한 나머지 계란을 던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그 뒤 대우자동차측에서 광고모델로 섭외한 것에 전격 응하며 대우에 대한 애정을 과시한다. 지난 2001년 ‘표류하던’ 대우자동차를 돕기 위해 회사 광고에 무료로 출연, 첫 번째 정치인 자동차 광고 모델로 기록되기도 했다. 그는 이를 계기로 대우차 명예 판촉 이사직을 맡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노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대선 때 인천지역에서 선전하게 된다.
그리고 노 대통령은 청와대에 입성한 뒤였던 지난 2003년 11월 대우조선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청와대 소식지인 ‘청와대 브리핑’(2003년 11월28일자)은 노 대통령이 옥포 대우조선을 방문해 “비서진이 준 참고자료에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라고 적어놨는데, 아니다. 몇 번인지 모를 만큼 많다. 87년과 89년 노동자들이 파업하려던 시기에도 왔다”고 말했다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대우 사랑은 때때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그가 공개 석상에서 대우 사태와 김우중 전 회장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해 구설수에 올랐던 것. 노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지난 2001년 3월 서강대 최고경영자과정 입학식에서 ‘원칙이 승리하는 사회를 위하여’라는 강연을 했을 때였다.
노 장관은 당시 대우 사태와 관련해 “김우중 회장은 분식회계도 하고 이중 장부도 작성해 처벌받아야 한다는 말이 있으나 김 회장을 변명해주고 싶다”면서 “김 회장은 시대적 상황이 변화됐는데 변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다”며 김 전 회장을 감싸안았던 것. 만약 그 이후로도 노 대통령의 김 전 회장에 대한 생각이 변하지 않았다면, 향후 김 전 회장의 처리를 예상하는 바로미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노 대통령과 김 전 회장과의 관계는 양날의 칼처럼 친분과 갈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대우건설 비자금 사건이다. 지난 2002년 대선을 앞두고 김 전 회장의 최측근이었던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이 여야 정치인들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준 것이 탄로 난 것이다. 특히 노 대통령의 측근 안희정씨가 대선 전에 대우건설로부터 2억원을 받은 부분이 새롭게 드러나면서 노 대통령측이 당내 대선 후보 경선과 관련해 불법 자금을 받은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되면서 노 대통령의 도덕성에 큰 타격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대우건설 비자금 사건은 비극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남상국 사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에게 연임 청탁을 하면서 3천만원을 준 것도 드러나 건평씨가 불구속 기소된 것이다. 그 사건으로 ‘열이 받은’ 노 대통령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대우건설 사장처럼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하신 분들이 시골에 있는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그런 일 이제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하게 된다. 이에 충격을 받은 남 사장은 결국 그 날 한강에 투신자살한다.
노 대통령의 대우 인연은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계속된다. 그는 지난 2003년 4월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위원장에 배순훈 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임명했다. 배 전 장관은 대우조선 사장과 대우전자 회장 등을 거친 ‘대우맨’이었다. 김 전 회장은 청와대에 자신의 ‘파이프 라인’을 심어놓고 귀국을 저울질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배 전 장관은 한때 김 전 회장과 사이가 좋지 않기도 했지만 현재 대우인회 자문위원을 맡으면서 여전히 대우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김 전 회장은 참여정부 들어서도 몸을 바짝 엎드려 여론을 탐색하다가 노무현 정권이 3년 차에 접어들자 여러 경로를 통해 귀국 의사를 밝힌 뒤 이번에 전격 귀국하게 된 것이다. 아직 DJ 정권 때의 경제 관료들이 그대로 ‘살아 있어’ 쉽게 김 전 회장의 미래를 점칠 수 없다.
그럼에도 두 사람 사이에 지난 90년대 초반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끈끈한 ‘다리’가 놓여있음을 감안한다면 김 전 회장의 ‘세계경영’도 다시 날갯짓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여권 핵심부 의원들 사이에서 사면론이 광범위하게 떠돌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