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각 언론사로 한 통의 메일이 전달했다. 한국방송영상제작사협회(구 독립제작사협회)가 보낸 성명서다. 이는 최근 독립제작사 소속 PD들이 교정당국으로부터 고발당해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재판에 회부된 PD들은 각 지상파 방송사의 시사프로그램의 담당자들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보이스피싱’(2015년 8월 방송)을 연출한 본사 PD 1명을 비롯해, SBS <궁금한 이야기 Y> ‘K5 도난사건’(2015년 3월)과 ‘순천 초등생 인질극 사건’(2015년 9월)을 취재한 독립 PD 3명, MBC <리얼스토리 눈> ‘두 여자는 왜 1인 8역에 속았나’(2015년 11월), ‘시흥 아내 살인사건’(2016년 1월), ‘환갑의 소매치기 엄마’(2016년 4월) 등을 취재한 독립 PD 6명 등 총 10명이다.
이들은 왜 법의 칼날 위에 서야 했을까? 교정당국이 문제 삼은 것은 PD들의 취재 과정이다. 이 PD들은 취재하는 사건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교도소나 구치소에 수감된 이들을 만나러 간다. 그들과의 대화는 ‘몰래카메라’ 형식을 통해 촬영이나 녹취돼 전파를 타게 된다. 교정당국은 이 과정을 불법이라 보고 위계공무집행방해 및 건조물침입 혐의로 각 PD들을 고발했다.
제작사협회는 “최근 독립제작사에 소속된 PD 6명도 불구속 기소돼 정식 재판에 회부되었다”며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교도소와 구치소에 있는 수감자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허가 없이 촬영을 했다는 혐의”라고 전했다.
MBC ‘리얼스토리 눈’ 홈페이지
이번 법적 다툼의 시작점은 ‘과연 옳은 취재 행태인가?’다. 그동안 다양한 매체의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는 방송의 공익적인 효과를 위해 교정기관의 수감자 등을 ‘관행적으로’ 인터뷰해왔다. 당연히 방식은 몰래 카메라다. 수감자가 응하지 않을 수 있고, 응하더라도 교정당국이 이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작사협회 역시 “공익적 사건이나 비리 의혹 등을 다루는 시사고발 프로그램의 경우 공문을 통해 정식으로 수감자 인터뷰를 요청하더라도 교정기관은 수감자 보호와 교정시설의 질서유지를 이유로 취재를 허락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취재 행태만 놓고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 방송가의 시선이다.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킨다는 측면에서 순기능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취재 방식을 통해 풀리지 않던 사건의 실마리를 잡거나 묻힐 뻔한 사건이 재조명받으며 수면 위로 올라온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송을 통한 문제해결이 교정당국이나 사정당국 입장에서는 그리 달갑지 않을 수 있다. 정식 조사과정에서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않거나 누락된 부분이 있다는 것이 입증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2013년 6월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 ‘979 소년범과 약촌오거리의 진실’은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진범이 따로있고, 누명을 쓴 소년범이 조사 도중 구타를 당해 거짓 자백 후 오랜 징역살이를 해왔던 것을 짚어 화제를 모았다. 결국 이 사건은 재심이 시작했고 당시 담당 형사는 자살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한 편의 시사프로그램으로 관계당국을 향한 여론은 악화됐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홈페이지
이를 기반으로 제작사협회 측은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방송사는 수감자 인터뷰를 통해 미제사건 등을 추적해 여죄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되는 등 공익적 효과를 가져왔다. 이에 <리얼스토리 눈> 제작진 6명 등 역시 수감자 접견을 통해 범죄를 저지른 이유 등에 대해 취재를 했으며, 방송법 제6조인 ‘국민의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충실히 수행했다”고 성토했다.
이어 “해당 PD들을 공무집행 방해죄로 처벌하는 것은 시사고발 프로그램의 제작진에게 상당한 위축 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물론, 공익 목적의 보도를 한 제작진의 자율성을 심각히 침해해 더 이상 취재를 하지 못하는 선례를 남길 우려가 있다”며 “방송의 공익성을 무시하고 시사고발 프로그램의 제작사 PD를 처벌하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약하는 것이며, 이번 선례로 인해 PD들이 취재의 자율성을 침해받게 되는 것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이와 더불어 각 방송사들이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외주 제작하며 여기에 몸담고 있는 독립 PD들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현재 고발된 PD 등 9명은 독립 PD다. SBS는 해당 PD들에게 법률적 지원을 하고 소송비용을 대고 있지만, MBC는 주로 법률자문 정도만 해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소송으로 인해 발생되는 비용은 외주 제작사나 담당 PD가 떠안아야 한다.
‘갑’의 위치에 있는 방송사는 외주 제작사를 상대로 ‘더 센 것’을 요구한다. 더 센 것이란 결국 사건 당사자의 목소리고, 이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교정당국과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문제가 발생했을 때 방송사에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향후 이 같은 취재는 더 이상 불가할 것이라고 전망된다.
외주 제작사에 속한 PD는 “아이템을 선정하고, 방송을 내기 전 최종 모니터링 과정에 본사 책임자급 PD가 참여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함께 싸우며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것이 옳다”며 “하지만 방송사가 이런 부담을 안길 원치 않고, 교정당국 역시 거대 방송사보다는 소규모 외주 제작사 소속 PD들을 상대로 재판을 진행하며 압박한다면 시사고발프로그램의 날카로움은 무뎌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