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배우 강혜정 | ||
강혜정은 자신의 연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딱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모호한 본능에서 시작해서 점차 세기를 더해가는 게 강혜정의 연기다. 그 연기라는 게 무작정 소리지르는 것 같지만 열심히 생각한 연기인 것도 사실이다. 모두가 비로소 그를 ‘여배우’라고 부르게 만든 <올드보이> 때부터 그랬다. 최민식, 유지태라는 센 배우들의 틈바구니에서도 강혜정은 스스로를 분연히 드러냈다.
<웰컴 투 동막골>에서도 마찬가지다. 남북한 병사들이 대치한 일촉즉발의 순간, 갑자기 등장한 강혜정은 머리에 꽃을 꽂은 채 말한다. “느그들, 친구가?” 그 순간 긴장은 의뭉스럽게 증발해버리고 눙치듯 모든 것이 강혜정의 엉뚱한 행동들 속에 묻혀버린다. 그건 무작정 해버린 연기가 아니다. 강혜정은 자신의 본능과 이성을 조화시키고자 늘 애쓴다.
“그동안 박찬욱, 최민식 같은 사람들과 일을 하면서 내가 내뱉는 말의 단어 선택, 내 눈빛이 달라지더라.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소통할 수 있는 인간관계가 다양해지고, 배우고 자극 받았다는 거다. 많은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지, 어떻게 행동하고 얘기해야 하는지도 배웠다. 나보다 더 쿨하고 더 뜨거운 사람들을 만났다.”
강혜정은 자신을 ‘선문답의 여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선문답은 늘 이렇게 자신의 진심을 담고 있다. 엉뚱한 듯하면서도 늘 고민을 하는 게 강혜정이다. 그게 연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강혜정은 <나비>와 <올드보이>라는 작품을 거치면서 부쩍 성장했다. 두 작품 모두 흔히 말해 ‘센 역할’이었다. <나비>에서처럼 바닷가에서 애를 낳거나 <올드보이>에서처럼 친아버지와 정사를 해야 하는 역할을 보통 감정의 세기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흔히 강혜정이 세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적어도 그녀는 자신이 단지 센 배우는 아니라고 말한다.
“내가 센 게 아니라 같이 작업한 배우들이 센 거다. <나비>도 그렇고 <올드보이>도 그렇고 <쓰리 몬스터>도 마찬가지였다. 상대가 세면 맞받아치는 힘도 자연히 세진다.”
사실 강혜정은 낯을 가린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나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눈다는 행위에서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는 듯 보인다. 강혜정은 담배를 어지간히도 많이 피운다. 특히 낯선 사람과 만날 때는 더 그렇다. 그건 강혜정이 섬세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을 열어 보이는 데 서툴기 때문에 자꾸 낯설어 한다. 그래서 강혜정은 인터뷰를 싫어한다. 절친한 사람에게도 나를 드러내 보이기가 힘든데 공개적으로 자신에 대해 말하는 건 더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혜정은 어떤 면에선 이미 완성된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쑥스러워하긴 하지만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다.
강혜정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특징 없는 신인에 불과했다.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 없는 저예산 영화의 주연을 맡았다. 일찍부터 그녀는 연기에서만큼은 치열했지만 유별나 보이진 않았다. 문승욱 감독의 <나비>에서 보여줬던 임신한 10대의 모습은 여느 예쁜 여배우가 꺼릴 만한 역할이었다. 그러나 아직 덜 다듬어져 있었다. 용감했지만 더 기다려야 했다. 강혜정은 다른 배역을 찾아 계속 오디션을 봐야 했다. 방송국 청춘 시트콤에 캐스팅됐다가도 중도 하차해야 했다. 본인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기억이지만 말이다.
▲ 강혜정이 출연한 영화, 연기한 배역들은 평범한 것이 없었다. 10대 임산부로 출연해 주목을 받았던 영화 <나비>를 거쳐, <올드보이> <쓰리 몬스터>로 연기력을 각인시켰다. 올해는 <연애의 목적>을 통해 흥행스타로 거듭난 이후 <웰컴 투 동막골>의 광녀 ‘여일’을 소화하며 | ||
그러다 강혜정은 <올드보이>의 오디션을 보러 갔다. <복수는 나의 것>에 이어 박찬욱 감독의 차기작으로 관심이 집중돼 있던 작품이었다. 오디션 현장에는 박찬욱 감독과 주연을 맡은 배우 최민식, 설경구, <장화, 홍련>의 김지운 감독 같은 쟁쟁한 영화인들이 심사위원으로 앉아 있었다.
강혜정에겐 <올드보이>에서 그녀가 맡게 될 ‘미도’가 횟집에서 ‘오대수’를 처음 만나는 장면이 주어졌다. ‘어디 한번 해 봐라’였다. 잘 하면 기회가 주어질 것이지만 못하면 끝이었다. 강혜정은 오디션 현장 인근에서 진짜 회칼을 구해서는 들고 올라갔다. 진짜 칼을 들고 연기를 하면 ‘미도’의 느낌이 전해질 것 같아서 그랬다고 너무나 진지하게 말했다. 박찬욱 감독과 최민식, 설경구, 김지운 감독은 웃기 바빴다. 결국 강혜정은 ‘미도’가 됐다.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를 찍으면서 가장 어려웠던 장면이 강혜정과 최민식의 첫 정사신이라고 우스갯소리처럼 말한 적이 있다. 강혜정이 너무 몸을 안 가려서 눈 둘 곳이 없어서 힘들었다는 것. 이제 강혜정은 그런 박찬욱 감독의 짓궂은 칭찬을 웃어넘길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겼다. 작품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그녀의 지금 연기가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강혜정은 연인 조승우와의 만남에 대해서는 몹시 말을 아끼는 편이다. 일부러 숨기려 드는 건 아니지만 또 공공연하게 드러내놓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말하고 싶은 게 있을 때는 아주 솔직하다.
“그저 좋으니까 만난다. 우리 만나는 거 숨기려고는 안 했다. 그냥 들킨 거다. 다들 당당히 사귄다고들 하는데 그런 표현이 싫다. 우리의 행동을 그저 ‘당당하다’라는 네 음절의 말 안에 포함시키는 것이.”
사실 말 많은 연예계에선 강혜정과 조승우의 만남에 대해 ‘말’들이 많다. 특히나 조승우가 <말아톤>으로, 강혜정이 <웰컴 투 동막골>로 한국영화의 최고 흥행 스타로 떠오르면서 강혜정과 조승우를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에 비교하는 일까지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강혜정의 조승우에 대한 애정은 그런 식의 가십과는 거리가 멀다.
“알다시피 조승우씨는 연기를 너무 잘해서 내가 더 이상 해 줄 말이 없다. 내 역할은 조언자가 아니다. 단지 내 곁에서 그가 쉴 수 있게끔 해주고 싶다. 그 사람이 적어도 내 앞에 있을 때는 그냥 일 생각 안 하고 쉴 수 있게 말이다. 설사 일 생각을 하더라도 그냥 쉴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위로가 될 수 있는 존재가 됐으면 좋겠다. 어쩌면 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강혜정의 마음 씀씀이는 조승우의 누나인 뮤지컬 배우 조서연씨도 한 인터뷰에서 인정했다. 조서연씨는 “강혜정은 낯을 가리는 것 같으면서도 알고 보면 다정다감하다. 친언니처럼 챙겨주고 아프지 말라고 말도 많이 해준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강혜정은 조승우와 만나기 전에는 남자 배우와 만나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배우와 사귄다는 건 여러가지로 불편할 것 같다”고 말했었다. 강혜정은 “배우인 남자 친구가 다른 여배우와 키스하면 싫을 거 같다”며 영화배우를 사귀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승우를 만난 지금 그녀는 많이 변했다.
▲ 지난 5월 백상예술대상에서 연인 조승우가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하자 강혜정이 기뻐하고 있다. | ||
박광현 감독은 처음 <웰컴 투 동막골>의 ‘여일’역으로 강혜정을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았다. 강혜정은 ‘미친년’ 연기에는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아서였다. 박광현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삼고초려하는 심정으로 세 번 강혜정과 만났다. 그때마다 강혜정은 ‘여일이 정말 미친 것 맞느냐’고만 물었다”고 말했다. 박광현 감독이 머리에 꽃을 꽂은 ‘미친년’ 여일 역으로 강혜정을 염두에 둔 건 광고 촬영장에서 그녀를 만난 뒤부터였다.
“강혜정씨가 촬영 현장에서 노는 모습을 봤는데 신선했다. 그동안 강혜정씨가 영화에서 강하고 센 역할만 주로 맡았기 때문에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실 강혜정은 <올드보이> 이후 연기력을 인정받았지만 인기 있는 스타만을 찾는 투자자들에겐 매력적으로 보이진 않았었다. <웰컴 투 동막골>은 제작 당시 몇 차례나 투자를 거절당해야만 했다. 그건 대중적으로 환호를 얻는 유명 스타만을 선호하는 투자자들의 잘못된 옹고집 탓이 컸다. 하지만 강혜정은 그런 과정에서 서서히 스스로의 상업적인 가치도 높여왔다. 그녀가 처음 단독 여주인공으로 등장한 <연애의 목적>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강혜정은 연기력과 흥행성 양쪽 모두에서 가능성 있는 배우로 성장했다. 그게 모두 불과 1년 동안의 일이다.
강혜정은 조승우와 함께 <도마뱀>이라는 작품에 출연할 예정이다. 배우와 사귀는 것은 아무래도 불편할 것 같다던 1년 전에 비하면 완전히 다른 변화다. 그와 함께 그녀의 연기에 대한 생각과 영화에서의 위치도 완전히 달라졌다.
<도마뱀>은 20년 동안 묘한 만남을 계속하면서 사랑을 키워가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강혜정은 어릴 적부터 조승우 앞에 불현듯 나타났다 사라지는 엉뚱하면서도 신비한 여인 역을 맡는다. 강혜정은 얼마 전 피로가 겹치면서 갑상선이 부어올라 수술을 받았다. 그때도 역시 조승우가 그녀 곁을 지켰다.
강혜정은 올해 스물다섯 살이다. 그런데 그녀가 연기에 대해 말하는 태도와 생각은 여느 25세짜리 배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깊다. 이제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나이 먹은 스물다섯 살짜리 여배우다. 그것도 불과 1년여 만에 부쩍 성장해버린, 열정이 차고 넘쳐 옆에 있는 사람까지 동화시켜버리는 매력적인 여배우다.
강혜정 프로필
생년월일: 1982년 1월1일
키, 몸무게: 162cm, 46kg
데뷔: 1997년 하이틴잡지 모델
학력: 인천외고-서울예대 연극영화과
수상경력: 2001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여우주연상, 2003 청룡영화제 여우조연상
작품: MBC <뉴논스톱>, SBS <은실이>, 영화 <나비>, <올드보이>, <쓰리 몬스터>, <연애의 목적>, <웰컴 투 동막골>, <도마뱀>(출연 예정), <친절한 금자씨>(우정출연), <남극일기>(우정출연)
신기주 월간 영화담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