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정배 장관의 수사 지휘권 발동 이후 지난 13일 대검청사로 출근하는 김종빈 검찰총장이 취재진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이종현 기자 | ||
그러던 중 마감에 임박해서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대검차장실에 전화를 넣었다가 기자를 부장검사로 착각한 비서의 실수로 천만다행히도(?) 전격 통화가 이뤄졌다. 부장검사인 줄 알고 전화를 받았던 김 총장은 기자의 기습적인 질문 공세에 무척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고 최대한 간결하게나마 인터뷰에 응했다. 보통의 고위 검찰 간부였으면 “전화가 잘못 연결된 것 같다”며 그냥 끊었을 수도 있을 터였다.
또 한 번의 통화는 검찰총장으로 내정된 직후인 지난 3월에 이뤄졌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던 당시 김 총장의 재산내역을 취재하던 기자는 친형이 선물해줬다는 김 총장의 자동차에 대한 질문을 비서에게 남겼다. 비서는 김 총장에게 물어서 답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잠시 후 기자에게 걸려온 전화는 뜻밖에도 김 총장 자신이었다. 그는 직접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남다른 형제애 등의 가족사에 대해 기자에게 상세히 설명했다. 인사청문회 준비에 한창 바쁠 것으로 예상, 비서를 통해 간단한 해명을 요구했던 기자의 허를 찌르는 총장의 적극성에 기자는 놀랐다.
천정배 장관과 김종빈 총장은 같은 호남 출신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터울은 7년이나 난다. 학연도 없다. 천 장관은 목포고-서울대를 나왔고, 김 총장은 여수고-고려대를 나왔다. 천 장관은 사시 18회로 연수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변호사의 길에 뛰어들었고, 김 총장은 사시 15회로 검찰에 입문했다.
두 사람은 서남해안의 한 이름 없는 섬 태생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어린 시절은 전혀 달랐다. 천 장관의 어린 시절은 비교적 유복한 형편이었다면, 김 총장의 어린 시절은 무척 불우했다.
실제 ‘고아’나 다름없는 10대를 보냈다는 비화가 <일요신문>(679호 5월22일자)을 통해 처음 소개되면서 잔잔한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김 총장은 중학교 시절을 보육원에서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중학교 생활기록부에는 집주소란에 당시 여수시 관문동에 위치한 한 보육원 주소가 기재되어 있었던 것.
같은 법조인이라는 인연 외에는 전혀 교차점이 없던 두 사람이 참여정부에서 처음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으로 만난 셈이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밖에서는 흔히 김 총장에 대해 유약한 이미지라고 말하는데, 이는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김 총장 자신이 합리성을 중시하는 선비적인 스타일이어서 그렇지 대단히 강단있는 분”이라고 밝혔다.
김 총장이 골프나 술보다는 사찰 여행과 바둑을 좋아하는 점도 그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다. 여러 사람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조용히 내실을 다지는 스타일인 것이다. 다소 고지식하게 보일 정도로 원칙적이고 타협을 모르는 성격이어서 권력욕이나 출세욕, 재산 욕심 등과도 거리가 멀었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후배들을 자상하게 챙기는 스타일도 아니라고 한다. 한때 군사정권 시절 두주불사형의 보스 기질이 있어야 발 빠르게 승진했던 시절에 비한다면 김 총장은 그나마 시기를 잘 만난 셈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그런 김 총장의 성격 탓에 법무장관이 지난 6월 김승규 전 장관에서 천 장관으로 바뀌자 “장관과 총장의 관계가 원만하진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기도 했다. 천 장관 스타일이 강한 원칙을 바탕으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인데, 총장은 거기에 적당히 맞춰주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이번 수사지휘권 발동 파문이 일었을 때 대검 주변에서 “검찰총장의 스타일상 밑에서 반발이 심하면 심할수록 자신이 책임을 지려고 할 것”이라며 사표 제출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조용하지만 또한 나름대로 공명심도 대단히 높은 스타일이라는 지적이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김 총장으로서는 당연한 선택을 한 셈”이라며 그로서는 다른 선택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