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셰 911의 매력적인 뒤태는 뒤창을 최대한 좁히고 리어 숄더를 넓게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 경우 뒷좌석 거주성은 포기해야 한다.
뒤로 갈수록 좁아지는 창문과 그에 이어지는 넓적한 리어 숄더는 여성의 잘 빠진 허리와 골반을 연상케 한다. 포르셰 같은 뒤태를 가진 차를 우리나라는 정녕 못 만드는 것일까. 못 만드는 것일 수도 있지만, 실상은 만들 시도조차 안 하는 것이다.
뒤창 바깥으로 넓고도 평평한 리어 숄더를 만들려면 전제조건이 있다. 뒷좌석에 사람이 타지 않으면 된다. 쏘나타, 그랜저가 뒤에서 봤을 때 허리와 골반의 구분 없이 통짜 몸매가 되는 이유가 있다. 뒷좌석 공간을 넉넉하게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뒤창을 최대한 넓게 만들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세단조차 리어 숄더를 강조하는 쿠페라이크(coupelike)한 멋을 추구한다. 사진은 현대자동차 제네시스.
쿠페의 멋스러움 때문에 요즘은 패밀리 세단도 ‘쿠페라이크(coupelike)’한 선을 최대한 살리려 노력한다. 즉 리어 숄더를 조금이라도 구분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최근 세단들의 뒷모습을 보면 승합차 같은 통짜 몸매가 아닌, 사다리꼴 모양을 내려고 노력한다.
일반적인 세단에 탑승한 뒤 머리와 유리창 사이의 거리를 재어 보면 한 뼘도 안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측면 충돌이 발생한다면 머리에 오는 타격이 클 것이다. 따라서 앞뒤 어디에 앉든 안전벨트는 필히 매야 한다. 승합차처럼 유리를 수직으로 만들면 실내공간도 넓어지고 부상의 위험도 줄어들 텐데 왜 이런 짓을 할까. 그게 다 쿠페라이크한 멋 때문이다.
쿠페(coupe)의 어원은 2인승 마차를 지칭하는 프랑스어다. 실내에 4명이 타는 큰 마차가 아니라 달랑 2명만 타는 좌석만 있어서 빠르고 경쾌하게 달릴 수 있다. 현대적인 쿠페도 2인승이면서 빠르고 경쾌한 승용차를 말한다. 다만 ‘2인승’이라는 한계로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에 쿠페 단독 모델은 드물고, 세단을 베이스로 한 것이 많기 때문에 뒷좌석이 있는 형태가 많다.
지금은 단종된 제네시스 쿠페(현대차)는 세단형 제네시스(1세대)를 베이스로 했기 때문에 뒷좌석이 있다. 그러나 세단처럼 성인 3명이 앉기엔 좁다. 뒷좌석 좌우 폭을 가능한 한 좁히고 리어 숄더를 만들어 쿠페의 맛을 살렸다. 게다가 도어가 2개다. 차명에 ‘쿠페’가 들어가다 보니 ‘쿠페라이크’가 아니라 진짜 쿠페여야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2도어와 리어 숄더만 쿠페의 조건일까. 또 하나는 측면에서 봤을 때 뒤창과 트렁크가 구분되지 않는 ‘패스트백’ 형태여야 한다. 앞서 언급한 포르셰 911의 측면을 떠올리면 된다. 1976년 양산된 우리나라 최초 독자개발 자동차인 포니가 패스트백(fast back) 형태다. 트렁크가 확연하게 구분되는 형태는 ‘노치백(notch back)’이라고 한다.
포니를 쿠페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는 일단 도어가 4개고, 쿠페를 지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 쿠페라고 할 만한 것은 1990년 출시된 현대차 스쿠프(scoupe)다. 당시 파격적으로 2도어를 적용했고, 1991년에는 현대차 최초 독자개발 엔진인 알파엔진을 장착한 데 이어 연말에는 터보 모델을 출시했다. 스쿠프는 완전한 패스트백은 아니고 트렁크 형태가 일부 존재하는 세미 패스트백 스타일이었다. 현대차의 2도어 쿠페는 이후 티뷰론, 투스카니, 제네시스 쿠페로 이어진다.
국내에서 그나마 쿠페스런 차를 만드는 곳은 현대·기아차뿐이다. 현대차는 제네시스 쿠페, 기아차는 ‘K3 쿱(Coup)’을 만든다. 구형 제네시스를 기반으로 한 제네시스 쿠페는 현재 단종 상태로 신형 제네시스 기반의 쿠페가 개발 중이다. K3 쿱은 차마 ‘쿠페’라고 하진 못하고 ‘쿱’이라고 이름 붙였다. 세단형 K3를 도어만 2개로 개조했기 때문이다. 대신 터보엔진 사양을 넣어 ‘가볍고 경쾌한 거동’을 추구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심지어 기함급인 S클래스의 쿠페 버전도 만들었다. 사진은 S클래스 쿠페.
수입차로 눈을 돌리면 다양한 쿠페들을 볼 수 있다. 심지어 메르세데스-벤츠의 기함(플래그십) S 클래스의 쿠페 버전도 있다. 현대차로 치면 에쿠스 후속인 EQ900의 쿠페형이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EQ900으로 쿠페를 못 만들 것도 없지만 살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쿠페의 정의가 워낙 광범위하다 보니 문짝을 네 개나 달고도 쿠페라고 우기는 차도 있다. 폭스바겐 ‘CC’는 ‘컴포트 쿠페’를 뜻한다. 해외에서는 ‘파사트 CC’로 판매되는데, 세단형 파사트와 플랫폼을 공유하면서 지붕을 납작하게 하고 루프라인을 최대한 뒤로 뺀 패스트백 스타일이다. 평소에는 가족을 태우는 패밀리 세단으로, 운전자 혼자 탈 때는 쿠페를 모는 기분을 내기 위한 것이다. 다만 이름에 쿠페를 의미하는 글자가 들어갔다고 해도 엄밀히 말하면 쿠페와 거리가 있다. 메이커가 새로운 카테고리를 창조하겠다고 나선 노력은 가상히 봐 줘야 할 것이다.
폭스바겐 CC는 4도어 쿠페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추구했다.
그렇다면 같은 2도어인 BMW Z4, 닛산 370Z 같은 차는 쿠페가 아닐까. 뒷좌석이 없으면서 작고 경쾌한 이런 차들은 별도로 ‘로드스터’라고 부른다. 뒷좌석이 아예 없기 때문에 측면 비례와 뒷모습을 사고의 제약 없이 창조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쿠페는 4도어 세단과 로드스터의 중간 형태로 볼 수 있다. 비상 시 또는 단거리 이동 시 뒷좌석에 사람을 태울 수도 있어 로드스터보다 조금 더 실용적이다. 대신 20㎞ 넘는 장거리를 뛰면 뒷좌석 탑승객은 다리에 쥐가 나서 버티지 못할 수 있다. 다리를 움직일 공간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최근 출시된 쉐보레 카마로SS는 쿠페가 아닐까. 2도어에 패스트백에 가까운 루프 형태, 그리고 무지막지한 배기량(6.2ℓ)을 지녔지만, 보디라인이 직선 위주로 각이 졌고 덩치가 커서 경쾌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카마로, 머스탱(포드), 바이퍼(닷지)와 같은 차들은 ‘아메리칸 머슬카’로 별도 분류된다.
한국에서 쿠페라이크한 세단 말고 진정한 쿠페가 더 많이 나올 수 없는 것일까. 2015년 인구총조사에서 1인 가구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가구구성이 됐다는 점을 보면, 향후 1~2인 탑승 위주의 쿠페 보급이 늘어날 환경은 무르익은 것 같다. 구매력을 가진 30~40대 싱글 남녀가 많아지는 것도 쿠페 입장에선 고무적이다. 독자 중에서도 최근 10회 운전 중 탑승자가 2인 이하였던 경우가 8번 이상이라면 쿠페를 사더라도 불편함이 없을 것이다.
우종국 자동차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