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1일 한나라당 원내대표실에서 만난 강재섭 대표. 부드럽고 유머 넘치는 평소 모습과 달리 이날은 사학법 반대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하며 인터뷰 내내 딱딱한 모습을 보였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은 지난 주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야당이 오만해져 저렇게 막 나가는 것이다. 이번에는 절대 타협하지 않겠다”며 강경 대응 방침을 거듭 확인했다. 물밑 대화도 제의하지 않았다고 했다. 야당이 명분 없이 국회를 뛰쳐나간 이상 제 발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것이라고 했다.
이에 강재섭 한나라당 원내대표도 ‘포문’을 열었다. 강 대표는 사학법 개정안 통과 뒤 강경 투쟁을 주도하면서 언론과의 인터뷰마저 자제한 채 ‘투쟁’에 힘을 쏟아왔다. 그런데 선약 때문에 성사된 <일요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다시 한번 ‘대여 선전 포고문’을 쏘아 올렸다. 사학법 개정안 정국은 박근혜 대표가 강경 투쟁을 주도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원내 사령탑인 강 대표도 그에 못지않게 강경한 자세를 보이고 있어 향후 원내대책이 주목된다. 강 대표를 지난 12월21일 국회 대표실에서 만나 사학법 정국의 해법을 들어보았다.
“콜록 콜록.”
강재섭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기자를 맞으면서 기침부터 했다. 건강체질인 그도 사학법 개정안 반대 장외집회에 참석하면서 감기에 걸려 버렸다. 집회 연설 때문에 목도 쉬어 있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번 사학법 개정안 통과에 대한 강 대표의 강경 대응에 짐짓 놀란 표정이다. 일부에선 강 대표의 ‘강수’에 대해 “박근혜 대표가 강하게 나오자 어쩔 수 없이 호흡을 맞추기 위해 따라간다”는 지적을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강 대표의 입장은 단호하다.
“나에 대해 부드러운 의회주의자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도 생각하는 원칙이 무너지면 강하게 가는 사람이다. 지난번 행정수도법과 신문법 통과 과정을 보라. 행정수도법은 충청도 눈치 보고 넘어갔고, 신문법도 방송 눈치 보면서 신문 조지는 거 대충 넘어갔다. 둘 다 위헌 요소가 있었지만 우리가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아 문제가 더 커진 경우다. 이렇게 되면 시민단체나 헌법재판소가 해결해줄 때까지 자기 목소리도 없는 정당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사학법도 어느 날 위헌 판결이 났을 때 민심 대충 보고 넘어갔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것은 절대 안 된다. 그래서 이번에 민심이 다소 우리와 거리가 있더라도 민심을 설득해야 한다.”
강 대표는 여당에도 확실한 메시지를 던지겠다는 각오다. 그는 “이번에 확실하게 해 놓아야 다음에 열린우리당이 무모한 행동을 하지 못한다. 여당이 ‘아이고 이번에 시껍했다(혼나다, 크게 놀라다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고 느끼도록 확실히 보여줄 것이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강 대표도 여론이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주지 않는 점을 부담스럽게 느끼고 있다. 그래서 국회의장실 점거 농성도 12일 만에 풀었다. 그는 연말 임시국회 때 시급한 현안에 대해서는 여당에 협조할 의사가 있음도 내비쳤다. 하지만 ‘조건’이 좀 까다로웠다.
“예산안과 부동산 관련 법안 등 시급한 현안은 내년을 위해서 확실히 올해 통과되어야 한다. 임시국회 마지막 날 본 회의에 가서 검토한 뒤 내가 전격 등원을 결심할 수도 있다. 여지는 남아 있다. 하지만 그날도 김원기 의장이 사회를 보면 단상 점거를 하고 악착같이 막을 것이다. 김 의장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게 우리 방침이다. 김 의장이 사회를 안 보는 선에서는 (예산안 처리를) 넘겨줄 수도 있다. 아니면 아예 무시하고 열린우리당끼리 알아서 하라고 할 수도 있다. 그것은 다음 주에(12월26일 전후) 결정할 것이다.”
강 대표는 예산안 등 민생 법안에 대해서는 올해를 넘기지 않고 처리를 하겠지만 그것도 본회의 당일 상황에 따라서 유동적임을 강조했다.
▲ 사학법 개정한 처리 전날인 지난 8일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왼쪽)과 강재섭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만나 의견을 나눴으나 입장차만 확인한 채 서로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있다. | ||
▲그것은 감세안과의 빅딜이 절대 아니다. 그에 상응한 조치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든지, 아니면 우리와 다시 협상해 사학법을 개정하든지 양자 택일이다.
─여당이 개정안 ‘전격 통과’를 강행한 속사정이 무엇이라고 보나.
▲여당 지지율이 10%대밖에 안되기 때문에 이러나 저러나 망했으니 우리편끼리라도 결속을 시키자는 의미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옛날에는 야당이 땡깡을 부리면 좀 달래고 뭐 좀 내주고 하는데, 자기들이 이번에는 일부러 깽판 쳐놓고 우리보고 그랬다고 하니 되겠나. 민생법안을 먼저 통과시켜놓고 꼭 하더라도 내년 2월이라도 할 수 있는데 예산이고 뭐고 하나도 통과 안 시키고 갑자기 (사학법을) 통과시킨 것은 노 대통령이 외국 가기 전 딱 통과시키라고 지도부 불러서 오더를 주고 정권 차원에서 그냥 해버린 것이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여야의 극한 대치에 대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권에서는 ‘야당 흔들기’를 계속할 것이다. 우리로서는 이번 사학법 전격 통과가 그 전초전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밀리면 내년 지방선거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여당이 정략적 의도로 법안을 통과시킨 이상 우리도 끝까지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대로라면 사학법 개정안을 두고 해를 넘기면서까지 여야의 지루한 힘 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강재섭 대표도 사학법 문제에 대해서는 절대 물러날 여지가 없는 듯 보였다. 그 외 정치적 현안에 대한 그의 입장을 들어보았다.
─내년부터 본격적인 ‘대권 정치’가 개막된다.
▲2006년은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가장 정치가 어려운 시기가 될 것으로 본다. 그야말로 정치가 필요한 시기다. 그 전에는 3김이 영향력을 가지고 판을 주도했기 때문에 정치가 어떤 의미에서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 겉으로 보면 복잡하지만 속으로는 단순했다. 그 뒤로도 이회창이라는 ‘준 3김’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주자들이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런데 내년은 사상 처음으로 오너가 없는 정치가 시작되는 원년으로 기록될 것이다. 여당은 김근태 정동영 두 장관으로는 직선제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할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가 끝나면 사실상 노 대통령은 과거 DJ와 달리 정치적으로 거의 식물인간 상태가 될 것이다. 그러면 여당도 정권재창출을 하기 위해서 대연정, 개헌론, 내각제 등 별별 이야기를 다 던질 것이다. 그리고 한나라당도 임자 없는 정당이 된다. 옛날 이회창 총재처럼 카리스마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러니 한나라당도 엄청 복잡해지고 저쪽도 복잡해져서 커다란 이합집산이 생길 것이다.
─한나라당 내에는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 등 ‘빅3’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강 대표의 자리는.
▲내년 지방선거가 끝나면 그때부터 대권 주자를 정하는데 아직 1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다. 그 과정에서 뜨는 별이 있고, 지는 별이 있고, 또 새로운 벤처 기업을 차려서 나타나는 사람도 있고 별 사람이 다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무슨 인지도 조사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일부에서는 강 대표도 대권 주자인데 왜 뜨지 않느냐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전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우리는 대권주자 하겠다고 선언한 적도 없고, 대구시민도 강재섭이가 할지 안할지 아무도 모른다. 국민들은 지금 떠오르는 박근혜 이명박 같은 사람에게만 관심이 있다. 그러니까 주가라는 것은 상장한 사람에게 주가가 있는 것이지 우리같이 상장 안한 사람은 주가가 없는 것이다. 현재 주식이 상장되어 있는 사람은 여야에 몇 명 있다. 그런데 한나라당 내에서 그것 가지고는 재미가 있나. 내년 6~7월이 되면 나도 너도 하겠다고 나올 사람 많을 것이다. 그 중에 코스닥 상장해서 성공하면 뜨는 것이고 10배, 20배 튕기는 것이다. 정치라는 것은 엄청난 생물인데 내년같이 진짜 보기 드문 정치의 해에는 주가가 요동을 칠 것이다.
▲ 지난 19일 부산역에서 장외 투쟁에 나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국회사진기자단 | ||
▲상장을 해야지…. 그런데 그것을 미리 하면 촌놈이지. 내가 대등한 입장에서 싸울 입장이 아닌 지금, 뭐 하려고 상장하나. 내가 열 마디 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열 마디 하는 게 가치가 다를 때는 상장을 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 않나. 상장할 필요 없다. 그런데 상장해놓고 주식이 1~2%밖에 안되면 그것은 사실상 끝난 기업이지. 그렇지 않나.
─대권주자로서 강 대표의 역량이 잘 알려지지 않은 까닭은 무엇이라고 보나.
▲일단 책임 있는 자리에 올라가야 된다. 예를 들어 원내대표가 열흘간 얘기해도 뉴스에는 조금밖에 (반영이) 안 되는데 당 대표가 열흘간 듣다가 한마디 하면 큰 이야깃거리가 된다. 원내대표니까 TV에 얼굴이라도 비치는데 그냥 의원은 아무리 좋은 일 해도 신문에 한 조각도 안 난다. 삐딱한 소리를 해야 나온다. 그런데 나는 삐딱한 소리를 하는 성격이 아니고 그 직책에 맞게 최선을 다해왔다.
그리고 지난번 당 대표 경선에 나왔다가 서청원에 한 번, 최병렬에 한 번 떨어지고 나서 책임 있는 자리에 오를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 올라갈 기회를 잡은 것이 결국 원내대표 자리였다. 대표로서 어느 정도 자신을 알릴 기회가 있지만 당 화합과 국회운영을 위해 그것에 대한 한계가 있다. 대권주자로 선언한 것도 아니고 한계가 있었던 것인데…. 이제 대표를 그만둬야지. 때가 되었으니.
─대체 강재섭만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나는 어지러운 당을 잘 통합시켰다. 앞으로 통치자의 할 일은 국민통합과 화합이다. 계속 갈등 일으키고 나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그런 것은 이제 필요 없다.
─여당은 4년 중임 정·부통령제를 주장하는데 개헌론은 어떻게 보나.
▲못 믿는다. 그 사람들 하고 싶은 것은 오히려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일 것이다. 내년에는 개헌론을 줄기차게 제기할 것이다. 목표는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뭐 이런 거 해서 정권을 계속 유지해나가고 싶어할 것이다. 우리는 개헌 문제 논의하더라도 내년 선거 끝나고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여당은 개헌을 하기 위해 연정론을 내세운 것 아닌가. 연정이란 게 내각제 하자는 것이다. 국민들 살 일이나 연구해라! 무슨 개헌 얘기냐.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론이 아직 유효하다고 보나.
▲저 사람들의 원래 의도가 정권 재창출이기 때문에 개헌론이든 연정론이든 계속 얘기할 것이다. 국민들 먹고살기 바쁜데.
─박 대표와 호흡을 맞춰왔는데 (박 대표는) 어떤 사람인가.
▲적절치 않다. 평가라는 것은 한참 위에 있는 사람이 아랫사람을 평가하는 것이지 동료가 동료를 평가한다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정치적 사건은.
▲지난 1992년 12월 대선 직전 박철언 선배와 헤어질 때다.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당선되기 바로 전이었다. 그런데 김 전 대통령과 틀어진 박철언 선배가 나에게 같이 탈당하자고 권유했다. 하지만 내가 몸담았던 정당을 명분 없이 탈당하는 것은 힘들겠다며 잔류를 선언했을 때 정말 가슴이 아팠다.
차라리 대선 후보 경선 전후였던 4, 5월에 탈당하자고 했으면 따라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선 직전 탈당은 나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마치 롯데와 삼성이 프로야구에서 싸우다가 롯데가 이기고 관중들도 다 끝났다고 집에 가고 난 뒤 며칠 있다가 승복 못한다고 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았다. 어쨌든 인간적으로 가슴 아팠고 괴로웠다. 그런 심정은 지금까지도 계속되지만 후회해본 적은 없다. 지금 하더라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길거리 투쟁에서 뼈마디까지 파고든 한파 때문일까. 아니면 원내대표로서 사학법 정국의 무게가 남다르기 때문일까. 평소 기자들 사이에서 유머가 풍부한 정치인으로 꼽히던 강 대표는 이날 좀처럼 웃지 않았다. 그의 유머가 언제쯤 되살아나 여의도 정가를 녹여낼지 자못 궁금해진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