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및 정부기관이 발주한 소프트웨어의 저작권을 발주처(정부기관)가 소유하는 경우가 82.3%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국내 다수의 정부기관들이 여러 용도로 민간 업계에 소프트웨어 개발을 발주한다. 정부 발주 소프트웨어 개발은 해당 업계에서도 중요한 젖줄이다. 특히 이제 막 업계에 뛰어든 신생 업체들의 경우 정부 발주 사업은 더더욱 중요하다. 경쟁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아 정부 발주에 성공한다면 이를 포트폴리오로 삼아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도 있다. 이렇듯 정부 발주 소프트웨어 개발은 해당 기관의 필요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지만 민간 업계 성장이라는 중요한 기능도 동반된다.
그런데 여기에 어두운 단면이 존재한다. 국내 정부기관의 발주와 수주를 통해 만들어진 소프트웨어의 저작권을 누가 갖게 되느냐의 문제다. 이는 소프트웨어 역시 프로그래머에 의해 구상되고 만들어지는 엄연한 창작물이기 때문이다. 응당 이에 대한 지적재산권이 발생한다.
국내 정부발주 소프트웨어 개발 저작권 대부분은 창작자인 수주 업체가 아닌 발주처인 정부기관에 귀속된다. 2012년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공공기관 및 정부기관이 발주한 소프트웨어의 저작권을 발주처(정부기관)가 소유하게 되는 경우가 82.3%로 나타났다. 수주처인 개발업체가 저작권을 갖게 되는 경우는 15.1%에 불과했다. 발주처와 수주처가 공동소유하는 경우도 고작 2.4% 남짓이었다. 순수 민간부분(발주처-73.4%, 수주처-20.1%, 공동소유-5.4%)의 발주처 저작권 귀속비율보다도 8.9%p 높은 수치였다.
소프트웨어업계와 저작권 학계 내부에서는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저작권법을 다루는 한 학계 관계자는 “국내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낮은 이유 중 하나는 개발자의 창작 의욕이 높지 않다는 데 있다. 별 다른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이라며 “정부 기관 스스로 소프트웨어 저작권을 단독으로 소유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개발자의 활용과 개발 의욕을 저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발주 소프트웨어의 저작권 귀속은 업계의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현행법상 수주 업체들의 저작권을 보호하는 장치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 법률인 용역계약 일반조건에서 발주기관과 수주업체의 저작권 공동소유가 고려될 수 있지만 이마저도 수주업체가 소프트웨어를 상업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선 발주처의 동의가 필요하다.
게다가 지방자치단체에 적용되는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의 발주 사업의 경우 개발업체가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다른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위해선 지자체장의 허락 및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즉 자기가 만든 개발 소프트웨어를 이용하기 위해 발주처에 다시금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말이다.
기관운영 시스템을 전문으로 개발하는 한 업체는 해외 기관으로부터 사업발주 제안이 왔지만 눈물을 머금고 이를 접어야 했다. 해당 개발 소프트웨어가 국내 정부기관의 발주로 제작돼 정작 업체는 저작권을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해당 업체는 해외로부터 기술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국위선양과 외화벌이가 가능했지만 정작 정부가 발목을 잡은 꼴이었다.
실제 업계에 종사하는 프로그래머들은 기본적으로 약자의 입장인 수주업체 입장에서 저작권 요구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기자와 만난 한 중견 프로그래머는 “발주처인 정부기관과 수주업체는 철저한 갑을 관계”라며 “워낙 경쟁사가 많기 때문에 개발 소프트웨어의 저작권을 운운할 수 없다. 발주처 입장에선 차기 계약 시 수주업체를 바꾸면 그만이다. 저작권 귀속문제는 기관과 업체의 불합리한 발주계약의 일면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프로그래머는 “다른 산업도 마찬가지지만 소프트웨어 업계 역시 하청에 하청이 이어지는 기형적인 산업구조가 자리하고 있다”라며 “이러한 다단계 구조 때문에 업계가 권리를 주장하고자 입김을 모으기도 쉽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정부기관이 저작권을 소유하는 업계 관행은 소프트산업 국제시장을 놓고 경쟁을 펼치고 있는 미국, 일본 등과 비교하면 차이가 더욱 두드러지는 대목이다. 일본의 경우 관계 법률에 따라 국가연구개발 및 소프트웨어 개발용역에서 발생하는 저작권에 대해 연구 개발자 및 창작자에 저작권을 비롯한 권리가 귀속 되도록 하고 있다.
미국 역시 극히 예외적인 규정을 제외하고는 수주업체가 저작권을 취득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극히 예외적인 규정이란 군사시설이나 국가 에너지 시설을 비롯해 기밀 정보를 다루는 소프트웨어 등이다. 이러한 예외를 제외하곤 개발자의 권리가 폭넓게 보장된 셈이다. 앞서의 국가 모두 자국 관련 산업의 보호를 위해 도출되는 권리를 법률로서 잘 보장해주고 있는 경우다.
앞서의 학계 관계자는 “소프트웨어 산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선 개발자 저작권 확보를 통해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이를 보장하는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당부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