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3년 11월 당시 신상우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이 청와대 다과회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 ||
말 많고 탈도 많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인 신씨가 KBO 차기 총재로 거론되자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라는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코드 인사에 대한 비판이 일었고, 지난 7년간 정치판의 입김을 불허했던 KBO가 결국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 아니냐는 여론도 있었다. 신상우 내정자 추대 과정에선 과연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
▶7년 전 맹세는 어디로
지난 11월25일 스포츠조선이 신상우씨의 KBO 총재 내정 사실을 보도했다. 야구계의 고위인사로부터 “아, 새 총재? 신상우씨라고 하던데”라는 말이 흘러나온 덕분이었다. 프로야구계는 발칵 뒤집혔다.
7년 전 KBO가 새 총재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야구계는 한마음 한뜻이었다. ‘이제 더 이상 정치권의 스쳐가기식 낙하산 인사는 없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그 결과 박용오 총재가 KBO 수장이 됐다. 이번 신상우씨의 총재 내정은 결국 우여곡절 끝에 얻어낸 KBO의 홀로서기 노력이 7년 만에 물거품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정작 KBO 이사회를 구성하는 사장단은 “금시초문이다. 처음 듣는 얘기”라며 총재 내정설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당시 8개 구단의 사장 대부분은 신상우씨 총재 내정 사실에 대해 정보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결국 12월26일 KBO 이사회에서 신상우씨가 차기 총재로 추대됐다. 이 과정도 코미디에 가깝다. 8개 구단이 아무도 후보를 내지 않고 입을 꽉 다물자 KBO 이상국 사무총장이 “아무도 말씀을 안하시니 신 전 부의장을 만나 의견을 묻고 최종 결정하겠다”고 매듭지었다. 그리고 같은 날 신상우 내정자는 “야구인들이 반대하지 않으면 총재직을 수락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굳이 누가 반대할까
그렇다면 KBO를 비롯한 8개 구단 수뇌부는 반대할 뜻이 전혀 없었을까? 신상우 내정자가 전면으로 나서기 이전까지는 LG 구본무 구단주가 총재를 맡으면 어떠냐는 얘기가 있었다. 하지만 본인이 고사했다. 반면 한화 김승연 구단주는 차기 총재를 맡으려는 의지가 있었다는 게 구단 관계자 및 야구인들의 증언이다. 평소 야구장을 자주 방문하며 애정을 보였던 인물이라 야구계에선 좋은 카드로 인식됐다. 그러나 신상우씨 이름이 거론되자 김승연 구단주는 뜻을 접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벌 오너 입장에선 정치판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총재직에 도전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야구인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서울 모 구단의 프런트 관계자는 “생각해보라. 정권이 낙하산 총재를 점찍어놓은 상황서 누가 나설 수 있겠는가. 8개 구단이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대단한 벼슬도 아닌 KBO 총재 자리 때문에 오너들이 정권에 맞서 고개를 쳐들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는 말도 덧붙였다.
부산상고 동문인 삼성 김응용 사장이 신상우 내정자를 추대하기 위해 막후 조정자 역할을 했다는 소문도 있다. 실제 김 사장은 2004년 11월에 라이온즈 CEO로 취임한 뒤 정·재계의 부산상고 출신 인맥과 활발한 교류를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11월 말 열린 야구인골프대회 때 김 사장이 `프로야구 위기론’을 설파했다. 프로야구 부흥을 위해선 새로운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곧이어 박용오 총재의 사퇴와 신상우 내정자 추대가 이뤄지자 결국 모두 같은 선상에서 진행된 일이 아니냐는 의혹이 생겼다. 야구인들 대부분은 “(김 사장이) 직접 나서진 않았어도 최소한 상의 정도는 했던 관계가 아니었겠는가”라고 말하고 있다.
▶낙하산을 활용하자
프로야구는 시급한 현안을 쌓아두고 있다. 40년이 지난 지방의 낙후된 구장 문제, 현대 유니콘스의 연고지 이전 문제 등 하루라도 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때문에 일각에선 실세 총재의 능력을 이용해 프로야구 발전에 긍정적인 도움을 받도록 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프로야구 선수협회가 신상우 내정자 추대에 앞서 “현 상황을 개선하고 프로야구 발전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물이 새 총재로 왔으면 한다”고 성명을 발표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낙하산 총재를 막을 수 없다면 그를 활용하자는 얘기다. 과거에 비해 프로야구인들이 성숙했고, 언론의 비판 기능도 강화됐다고 볼 때, 프로야구는 신상우 내정자를 통해 최대한의 실리를 얻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