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O 총재로 내정된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이 낙하산 인사 시비로 곤혹스런 입장에 처했다. | ||
일각에서는 “정치판에 이어 프로야구마저 부산상고 동문들이 장악하려 들고 있다”며 이번 파문의 진원지로 ‘부산상고 동문’ 측에 강한 의혹을 내비치고 있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7년간 장기 집권(?)한 박 총재 측의 ‘조기 사퇴’라는 기습 공격에 ‘실세 총재’ 영입을 은밀히 준비해 오던 세력들이 한방 먹은 것이라며 이른바 ‘야구계 내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아무튼 이번 파문의 중심에 서게 된 신 전 부의장은 아주 궁색한 입장에 놓이게 됐다. “대답하기가 참 민망하다”는 그의 대답이 어쩌면 가장 솔직한 지금 그의 심경일 듯하다.
2005 시즌을 마치고 조용히 한 해를 마무리하던 프로야구계에 파문이 일기 시작한 것은 지난 11월 말이었다. 박용오 KBO 총재가 임기를 불과 4개월여 남겨둔 시점에서 갑자기 조기 사퇴 의사를 표명했기 때문. 사퇴 배경에 대해 권력 주변의 압력설이 터져 나온 것과 동시에 차기 총재로 신 전 부의장이 유력하게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낙하산 시비가 불거진 것.
팬들의 집중적인 비난이 쏟아진 것은 신 전 부의장이 갖는 정치적 이력과 그 비중 때문이었다. 누가 봐도 신 전 부의장은 대통령의 최측근이었기에 어쩌면 이런 의혹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의 이력을 잠시 살펴보자.
신 전 부의장의 직업은 한마디로 정치인이다. 그는 35세의 젊은 나이에 부산에서 금배지를 단 이후 지난 15대까지 무려 7선의 관록을 자랑하는 국회의원이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는 YS 밑에서 혹독한 민주화투쟁을 하기도 했다. YS정권에서는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했다. 하지만 YS가 퇴진하면서 그 역시 2000년 총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에 의해 구 정치인 취급을 받으면서 동반 퇴출당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정계 은퇴의 수순을 밟을 것으로 여겨졌던 그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1년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이었던 노 대통령이 대권도전을 선언하면서부터였다. 부산상고 10년 선배인 신 전 부의장은 이때부터 노 대통령의 정치적 조언자 역할을 맡았고, 2002년 대선전에는 부산상고 총동문회장을 맡으며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공신이 됐다.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신 전 부의장은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을 맡았다. 2004년 2월 그는 17대 총선 지원을 명분으로 부의장직을 사퇴했다. 이때만 해도 그가 총선을 통해 정치권에 다시 복귀할 것으로 관측하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하지만 뜻밖의 복병을 만났다. 불법대선자금에 연루되어 구속기소된 것. 2004년 5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그는 지난해 8·15 때 특사로 사면됐다.
이때부터 신 전 부의장의 거취는 다시 정치권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2002년 대선에서의 그의 공헌도와 노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 등을 감안할 때 어떤 식으로든 그가 무슨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신 전 부의장과 무척 가깝게 지내는 부산상고 동문의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당시 신 선배에게 노사정위원장직을 맡아주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다. 신 선배는 이 제안을 수용할 의사가 있었지만 막상 주변에서 말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후에도 신 전 부의장의 거취를 둘러싸고 물밑 제안은 몇 차례 오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 전 부의장이 은근히 청와대비서실장을 원했다는 얘기도 있고 주변에서 차기 무역협회장을 거론했다는 얘기도 전해졌다.
그동안 신 전 부의장은 주변 지인들과 함께 골프 등 운동으로 소일하면서 가급적 조용히 지내기 위해 애쓴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상고 동문회장직도 임기 만료와 함께 물러났다. 하지만 오랜 정치생활로 여야를 막론하고 정계 주변에 친화력이 두루 폭넓은 그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도 노 대통령의 국정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측면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 전 부의장은 가끔씩 대통령의 초청으로 청와대에 들어가 부부동반으로 함께 식사하거나, 혹은 독대를 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측근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사면복권된 이후 오히려 신 전 부의장 주변에서 “한시라도 빨리 일을 하셔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일선에 다시 나설 것을 권유하는 주문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중심은 역시 부산상고 동문 그룹이라는 전언이다.
그에 따르면 “이번 KBO 총재 추대건도 뜻있는 후배들이 신 선배에게 적극 권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초 신 선배는 자신과 직접적 연관성이 없는 이 자리에 적극적 입장을 나타내지 않았으나, 오히려 비정치적인 자리이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국가와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로 더 좋은 것이 아니냐는 조언을 결국 받아들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일각에 알려진 것처럼 청와대 개입설은 터무니없다는 것이 이 측근의 주장이다.
이 측근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번 추대 파문 역시 신 전 부의장으로서는 미처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고 한다. 당초 계획은 올해 3월까지가 임기 만료인 박 총재가 물러나면 자연스럽게 주변 야구인들의 추천과 KBO 이사회의 추대 형식을 빌어서 “마지막 남은 역량을 프로야구 발전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뜻을 피력하며 수락하는 수순이었다는 것.
그런데 갑자기 박 총재가 조기 사퇴 의사를 표명하면서 정치권의 ‘압력설’이 불거지기 시작하는 등 사태가 꼬여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프로야구계 주변에서는 “당초 프로야구계 내부에서도 박 총재 퇴임 이후 카드에 대해 얘기가 분분했고, 실제 야구인 L씨 등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기도 한 상황이었다”며 “그런데 갑자기 정치권 실세격인 신 전 부의장을 차기 총재로 추대하는 것이 어떠냐는 얘기가 내부에서 돌기 시작하자 박 총재가 이를 불쾌하게 여겨 조기 사퇴를 표명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신 전 부의장과 비교적 가까운 한 인사는 “신 전 부의장은 오랜 관록으로 경제계 인사들과도 친분의 폭이 매우 넓다. 모르긴 몰라도 8개 구단의 구단주들이나 사장단들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은 아주 손쉬웠을 것”이라고 전했다. 롯데 신격호 구단주와도 친척뻘인 것으로 알려졌다. 즉, 신 전 부의장 추대 작업을 준비한 측의 시나리오는 대체로 낙관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프로야구계 저변에 폭넓게 퍼져있는 부산상고 출신 동문 야구인들의 지원을 얻어 우호적 여론을 조성하고 이어 신 전 부의장이 ‘프로야구 발전 방안을 위한 청사진’을 갖고 구단의 고위층에게 협조를 구한다는 것.
그런데 박 총재의 조기 사퇴로 상황이 갑자기 급박하게 돌아가자 어정쩡한 입장이 된 신 전 부의장은 처음에는 무척 고심했다가 이내 “당초 계획대로 총재직에 한번 도전해보겠다”는 입장을 최종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처 준비되지 못한 상황에서 사태가 급진전되고 여론이 악화되자 신 전 부의장 역시 적잖이 당황하고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실제 이 같은 분위기는 12월29일 저녁 신 전 부의장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는 “모든 내 입장을 3일 이후로 미루겠다”는 입장만 계속 반복했다. 다음은 기자와의 일문일답이다.
─파문에 대한 입장은 뭔가.
▲3일까지는 어떤 인터뷰에도 응할 수 없다.
─왜 그런 입장을 정했는가.
▲아직까지는 이사회에서 정식 추대된 것도 아니고… 또 (이상국) 사무총장이 나한테 임의로 그렇게 하지 말고 좀 지켜달라 하더라.
─그건 KBO에서 인터뷰를 하지 말아달라고 정식으로 요청했다는 그런 뜻인가.
▲아무튼 인터뷰는 어려우니까 그 전까지는 내가 좀 입장이 어렵다.
─최근까지 KBO측 관계자를 만난 적이 있는가.
▲없다.
─지난 12월27일 이상국 사무총장을 만났는데.
▲그것 한 번뿐이다.
─이사회 측과 만난 일은.
▲이사회 만날 이유가 없다.
─혹시 이 일과 관련해 청와대 측과 접촉한 일은 있는가.
▲없다.
─프로야구 총재에 뜻을 둔 것은 언제부터였나.
▲자꾸 그런 유사한 질문이 나오던데 그게 ‘언제부터’라는게… 그게 참 민망한 질문인데… 뭐라 말하기가….
─평소 야구를 즐겨봤는가.
▲즐겨 봤다.
─혹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팀이나 선수가 있는가.
▲그런 질문은 중립적인 입장에서라도 좀 대답하기가 이상하지 않나.
─총재가 된 이후의 복안이나 계획을 지금 갖고 있는가.
▲있다. 하지만 3일 이후에 말하겠다.
─그렇다면 지금 KBO의 업무파악이나 야구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고 보면 되나.
▲그렇다. 실무자들과 접촉을 해서… 계획이라는 것이 뭘 뜻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다.
─현재 프로야구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에 대한 것도 3일 이후 대답하겠다.
인터뷰에서도 감지되듯 신 전 부의장은 상당히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KBO 총재를 본인이 당초 강력히 원한 것은 아니었던 듯한 뉘앙스를 많이 내비쳤다. 그렇지만 사태가 이렇게까지 확산된 이상 이제 본인으로서도 물러날 수 없다는 강한 입장도 느껴졌다. 과거 5·6공 시절인 초창기를 제외하고는 역대 ‘낙하산 정치인사’ 총재 가운데 단 한 명도 제대로 임기를 채우고 물러난 총재가 없다는 점에서 신 전 부의장의 행보 역시 못 미더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많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