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5·6호기 조감도. 사진제공=한국수력원자력
[일요신문] 안전과 관련한 동남권의 정서는 9월 12일 이전과 이후로 극명하게 나뉜다. 지진 얘기다. 조금 부풀려진 얘기 같지만 저변에 흐르는 분위기는 결코 만만치가 않다. 특히 지진으로 인한 일차적인 피해보다 이로 인해 원전사고가 발생할 것에 대한 우려가 크다. 원전 신고리 5·6호기 건설에 대한 지역여론이 악화일로를 걷게 된 이유다. 이와 관련한 논란을 들여다봤다.
부산시 연제구 거제동에 거주하는 주부 A 씨(38)는 최근 난데없는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 규모 5.8의 강진이 경주에서 발생할 당시 자신의 20층 아파트에서 어린 딸과 함께 공포에 떨고 난 이후부터다.
A 씨는 지진으로 인한 트라우마에다 국내 원전이 진도 7.0 이상의 강진에 속수무책이란 얘기를 접하자 수도권으로 이사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고민에 빠졌다. 이는 A 씨와 고민을 함께 나눈 같은 주부인 친구 B 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회와 형편만 된다면 하루 빨리 부산을 떠나 수도권으로 가야한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지난 9월 12일 경상북도 경주시 남남서쪽 8km 지점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은 1978년 지진 관측이 시작된 이후 한반도에서 발생한 역대 최대 규모의 지진이었다. 본진의 최대치는 경주·대구 지역에서 측정된 진도 6이었으며 부산과 울산·창원 등에서는 진도 5가 감지됐다.
당시 본진의 진동은 전국 대부분 지역뿐만 아니라 일본·중국 등에서도 느낄 정도로 강력했다. 또한 지진 발생 직후에는 휴대폰의 통화와 문자를 비롯해 갑작스런 트래픽 증가로 인해 카카오톡 메신저와 일부 포털사이트에 장애가 발생하기도 했다.
본진이 발생한 지 일주일 뒤인 9월 19일 오후 8시 33분께 경주시 남남서쪽 11km 지점에서 규모 4.5의 지진이 또다시 발생했다. 여진은 계속 이어져 9월 20일에는 그 횟수가 400회를 상회했다. 여진은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가장 최근인 지난 10일에는 규모 3.3의 여진이 재차 발생했다.
이런 가운데 현재 국내 원전기술로는 규모 7.5 원전 제작이 불가능하고 기술개발 또는 연구용역 진행도 전무한 것으로 드러나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최근 국회 김정훈 의원실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 ‘국내 원전에서 내진설계 규모 7.5 원전 건설 가능성’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다. 이에 한수원은 “현 내진설계기준을 0.6g로 상향 조정이 가능한지 여부를 관련사에서 검토한 결과, 새로운 노형을 신규 개발하는 수준의 전면적인 재설계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APR1400 노형인 신고리 5·6호기에 이를 적용하는 것은 현재 국내 기술수준으로는 어렵다”고 답했다.
또한 한수원은 “현재 내진설계 규모 7.5(0.6g) 원전건설을 위한 연구용역 및 기술개발은 진행 중인 건이 없다”고 함께 밝혔다. 초강력 지진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원전을 담당하는 기관에서 실토한 셈이다.
이에 따라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이는 사회 전 부분을 총망라해가며 전개되고 있다. 경실련·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들이 거센 목소리를 내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반대 입장에는 정치권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여기엔 여야가 따로 없다. 더불어민주당(더민주)이 보다 강경한 자세로 어젠다를 선점하고 있지만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도 반대에 적극적이다. 특히 하태경 의원(부산 해운대구갑)은 최근 인구밀집지역에 원전 추가 건설을 금지하는 ‘원자력안전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원전과 관련한 논란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이 바로 활성단층이다. 이 문제는 올해 국정감사장에서도 이슈가 됐다. 지난 1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가 한수원을 대상으로 한 국정감사에서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 두고 여야 위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이날 야당 의원들은 원전부지 인근서 지진이 발생한 만큼 건설을 중단하고 활성단층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수원은 활성단층으로 판명될 경우에만 후속조치를 취하겠다고 맞섰다.
이훈 더민주 의원은 “신고리 5·6호기 건설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활성단층대와 관련한 논의가 부족했다. 신고리 건설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배숙 국민의당 의원은 “신고리 5·6호기 부지에서 5km 떨어진 곳이 일광단층 또한 활성단층으로 판명됐다”면서 원전 건설을 전면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특히 이날 김경수 더민주 의원은 한수원의 지질보고서가 조작됐다는 의혹을 제기해 주목을 받았다. 이런 지적들에 대해 한수원 조석 사장은 “문제제기만으로 원전 건설을 중단할 수 없다. 지질학계에서는 활성단층이라고 보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면서 버텼다.
이렇듯 9월 12일 발생한 지진은 원전 건설에 대한 논란으로 확대되고 있다. 인근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 처리에 200조 원이 든다는 최근 보도는 이런 논란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에 앞서 1000만에 육박하는 동남권 주민들의 안전이 담보할 수 없는 벼랑 끝에 놓였다는 지적이 갈수록 무게감을 얻고 있다.
동부산발전연구원 김동기 사무국장은 “원전의 위험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금이라도 전력생산에 대한 패러다임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면서 “특히 한수원을 포함한 원전 마피아들의 논리에 동남권 주민들의 안전이 짓밟혀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하용성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