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호사협회가 주최한 ‘대한민국 형사재심 제도의 실태와 개선방안’ 토론회가 13일 오후 2시부터 변협회관 14층 대강당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송상교 변호사, 박미숙 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 박준영 변호사, 강문대 대한변협 재심법률지원소위원장, 권오걸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고상만 인권운동가
대한변호사협회가 주최한 ‘대한민국 형사재심 제도의 실태와 개선방안’ 토론회가 13일 오후 2시부터 변협회관 14층 대강당에서 열렸다.
“그래도 나는 하지 않았다 : 결백 프로젝트의 첫 걸음”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번 토론회에선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삼례 3인조 강도치사 사건’ 등 최근 재심이 진행되고 있는 주요 일반 형사사건을 중심으로 법률 전문가들의 토론이 이어졌다. 그동안 형사사건은 과거사 사건과 비교해 재심에 대한 논의가 적었다.
토론에 앞서 피해자 증언 청취 시간이 마련됐다. 증언자로는 살인 누명을 쓰고 무기수로 복역하다 36년 만에 재심으로 무죄를 선고 받은 ‘춘천 파출소장 딸 살인사건’의 정원섭 목사, 이달 말 선고를 앞둔 ‘삼례 3인조 강도치사사건’의 최대열 씨, ‘부산 엄궁동 2인조 강간살인사건’의 최 아무개 씨와 장 아무개 씨가 나섰다.
이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겪은 일과 현재 심정을 밝혔다. 강단에 선 정원섭 목사는 1972년 발생한 춘천파출소장 딸 살인사건을 언급하며 “시간이 얼마나 지나든 진실은 꼭 밝혀져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삼례 3인조 가운데 한 명인 최대열 씨는 장애를 가진 부모와 동생을 돌보기 위해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경찰에 구속됐던 당시 상황을 담담하게 이야기 했다. 부산 엄궁동 2인조 사건의 최 아무개 씨는 경찰의 강압 수사를 강력히 주장하면서도 도움이 절실했던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토론회에 참석한 사건 당사자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박준영 변호사, 삼례 3인조 사건의 강일구 씨, 최대열 씨, 강문대 대한변협 재심법률지원소위원장, 춘천 파출소장 딸 살인사건의 정원섭 목사.
# “일반 형사사건 재심 돕는 국가기관 필요”
본격적인 토론은 이날 자리에 참석한 권오걸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불이익재심의 허용여부에 대한 법리적, 비교법적 검토’ 주제발표로 문을 열었다. 불이익재심이란 무죄판결을 받은 피고인이 향후 진범임이 밝혀진 경우 재심을 통해 유죄선고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현행법에서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이익 재심만을 허용하고 있다.
권 교수는 해외 입법례 사례를 통해 불이익재심의 본질과 범위에 대해 설명하면서 “불이익재심이 인정되면 반복되는 기판력의 배제로 법적 안정성이 파괴될 수 있다”며 “완전한 진실이 발견될 수 없다면 일정한 제한이 필요하다. 이익 재심만을 허용하는 현행법의 태도는 타당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수원 노숙 소녀 사건’과 앞서의 약촌 오거리, 삼례 3인조 사건 등 굵직한 형사 사건들을 재심으로 이끈 박준영 변호사는 ‘국내 판례 운영 및 제도의 문제점 제언’ 주제발표를 통해 그동안 현장에서 느낀 형사재심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과거사 위원회 등의 활동으로 많은 시국사건의 재심이 이뤄졌다. 일반 형사 사건에서도 시국사건에서 나타나는 수사의 위법이나 재판의 문제가 없었다고 볼 수 없다“며 ”그런데 공권적인 조사권한이 없는 상황에서 재심준비활동은 늘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실제 현장에서 겪은 가장 절실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과거사 정리 위원회와 같은 일반 형사 사건의 재심을 돕는 국가기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지정토론에는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박미숙 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송상교 변호사(공익인권변론센터 소장), 고상만 인권운동가가 차례로 나서 형사사건 재심에 대한 허점과 개선 방향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한상훈 교수는 “학계에서도 일반 형사사건 재심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며 “오판을 시정하고 진실과 정의를 바로잡는 것이 재심절차라고 할 때, 재심은 널리 인정되는 것이 적절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날 사회를 맡은 강문대 대한변호사협회 재심법률지원소위원장은 토론회에 참석한 법률 전문가와 시민들과의 전체토론을 마무리하며 “잘못된 수사 또는 재판으로 인권침해가 발생한 사건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연구 성과가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토론회에는 대한변호사협회 측은 현행 재심 제도에 대한 논의를 위해 검찰과 법원에 참석을 요청했지만 “참석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