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당의 계속되는 러브콜에 강금실 전 장관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사진은 장관 시절 모습. | ||
하지만 지금의 강 전 장관 얼굴에선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오는 ‘5·31 지방선거’ 예상 판도에서 자신이 가장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패’의 위기감에 몰린 여권으로서는 ‘강금실 카드’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이 되어 버렸다. “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다”는 강 전 장관의 한마디 말에 기대를 걸고 있는 여당의 표정에는 비장감마저 서려 있다.
그래서일까. “시대가 정말 강금실 같은 사람을 원한다면 그도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에게는 그런 책임의식과 열정이 있다”는 한 지인의 말은 오는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 차례 파란을 감지케 한다.
강금실. ‘대한민국의 소통령’이라 불리는 서울시장의 강력한 후보로 각 매체의 여론조사는 앞다투어 그를 1위에 올려놓았다. 급기야 최근의 한 여론조사에서는 그에 대한 지지도가 50%를 넘어섰다. “서울시장이 되면 진짜 열심히 한번 잘해보겠다”고 호기롭게 출사표를 던지는 기성 정치인들에게는 마치 조롱이나 하듯이 10% 안팎의 지지를 보내고 마는 것에 비한다면 정작 본인은 서울시장에 관심도 없다는 식인 강 전 장관에게 보내는 서울시민들의 ‘짝사랑’은 다소 이상스러울 정도로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정치권의 유혹은 더욱 극성스럽다.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 출마한 이들은 한결같이 강 전 장관을 언급했다. 그 중에서도 김근태 의원은 가장 구체적이면서도 절박했다. 그는 “판이 잘 안되면 당신과 같이 강물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고 했더니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다고 하더라”며 영입가능성을 한껏 부풀렸다.
당초 “정치보다는 춤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며 다소 소극적이던 정동영 상임고문도 강 전 장관에 대한 여론 지지도가 계속 올라가자 최근 “국민의 사랑을 받는 지도자이고 우리당 정체성에 가장 어울리는 분이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나타냈다.
김부겸 의원은 “강 전 장관과는 개인적으로 형수 동생하는 사이”라고 친분을 강조하며 “삼고초려가 아닌 백고초려를 해서라도 모셔오겠다”며 기염을 토했다. 김혁규 의원과 조배숙 의원 역시 강 전 장관과의 개인적 인연과 만남을 강조하며 영입에 한몫하고 있음을 역설했다.
얼핏 보면 강 전 장관의 대중적 인기도를 자신의 지지세에 이용해보고자 하는 계산이 깔려있는 듯하지만, 단순히 그렇게만 볼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다. 실제 현재의 상황이라면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오는 5월의 지방선거에서 여당의 참패는 피하기 힘들 것이라는 데에 공감대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에 비해 절대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서울 지역에서 강 전 장관이 부동의 1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권으로선 더 이상 좌고우면할 여지를 없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김근태 의원이 언급했다고 하는 ‘공동책임론’이다. 현재 여권 인사들 가운데서도 특히 김 의원과 강 전 장관은 남다른 공감대를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이 과거 군사정권 시절 민청련 의장직을 맡았을 때 강 전 장관이 후위에서 지원하며 끈끈한 친분을 유지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 의원을 도왔던 소설가 황석영씨, 시인 김정환씨 등의 문인들은 오늘날 강 전 장관의 절친한 문화계 인맥 스펙트럼과도 겹친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김 의원은 단순히 ‘인재 영입’ 차원이 아니라 ‘동지애’적 심정으로 호소한 것”이라며 “강 전 장관이 이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무거운 ‘화두’를 던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법조계의 한 인사가 “(강 전 장관이) 현 정부의 초대 법무장관을 맡았다는 점이 그에게는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라고 언급한 대목도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상이다.
2006년 2월 현재 강 전 장관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다. 강 전 장관의 한 법조계 지인은 “의리에 약한 강 전 장관에게 제대로 먹혀든 것은 역시 책임과 의리론이었다. ‘함께했던 사람들이 어려운 위기에 처해 있는데, 혼자 모른 체하는 것은 의리가 아니다’라는 읍소가 그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의리’가 통용될 정도로 치열한 시대를 살아왔던 강 전 장관에게는 또 그에 어울리는 많은 부류들의 끈끈한 지인들이 있다. 기자는 종종 그래왔듯이 이번 취재에도 역시 그의 주변 지인들의 접촉을 통해 현재 그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들여다보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마저도 그리 녹록지 않았다.
평소 강 전 장관의 소식에 대해 때론 간헐적으로 때론 비교적 상세히 전해주었던 몇몇 지인들도 이번만큼은 상당히 조심스러웠고 일견 배타적이었다. 한 문화계 지인은 “에이, 제발 그만합시다”라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기도 했다. 모르긴 해도 강 전 장관의 거취를 묻는 주변의 질문공세에 상당히 시달린 듯했다.
▲ 2004년 7월 이임식 때의 강금실 장관. 그는 이 자리에서 “너무 즐거워서 죄송하다”고 밝혔다. | ||
강 전 장관의 지인 인맥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문화계와 법조계, 그리고 정관계다. 그 중에서도 문화계는 가장 폭 넓고 오랜 지기들이 많다. 그만큼 또 속내를 편하게 털어놓는 인사들이다. 문학계 미술계 영화계 등 분야도 다양하고 그 자신이 애착을 갖고 있는 전통무용과 천주교 등으로 맺어진 무용계와 종교계 지인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무용계의 한 지인은 기자에게 <일요신문>의 강 전 장관 전통무용 사진 보도에 대한 섭섭함부터 먼저 토로하기도 했다. 또 다른 한 지인은 “최근 강 전 장관과 전혀 연락이 없었다. 전통무용을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문화계 지인들은 평소 강 전 장관의 정계 진출 가능성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 지난 2004년 총선 출마설이 한창 나돌 때에도 그들은 “언론이 강 장관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그는 절대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예상은 적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목소리가 달라졌다. “솔직히 우리도 잘 모르겠다”라거나 “속 얘기를 들은 바가 없다”며 단정적인 예상을 피해갔다. ‘개인적으로 서울시장 출마를 찬성하는 입장인가, 아니면 반대인가’라는 질문에도 “그의 결심이 중요한 것인데, 우리가 그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역시 즉답을 피했다.
법조계 지인들은 또 조금 다르다. 강 전 장관의 서울시장 출마설에 대해 “한번 해볼 만한 것 아니냐”는 기대 섞인 전망과 “진흙탕 싸움에 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공존하고 있는 양상이다. 하지만 굳이 저울질을 하라면 출마 쪽에 무게중심이 더 기울어진다.
한 검찰 고위 간부는 “강 전 장관 때가 그래도 좋았다. 요즘 서울시장 출마설이 돌던데 어떻게 보는가. 한번 나올 만하지 않겠나. (검찰 내부에서도) 기대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민변 출신의 한 변호사는 “강 전 장관은 여전히 자신이 정치에 썩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계산된 행동이 아니라 진실된 마음으로 낯선 환경에 뛰어드는 것을 꺼려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또 ‘혼자’보다는 ‘더불어’라는 공동체 의식이 있다. 우리 사회에 대한 깊은 문제 인식과 치열한 고민을 토해내는 열정도 있다. 민변 활동을 한 것도 법무장관을 수락한 것도 그런 차원이다. 현재의 상황을 그저 외면만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호불호가 분명한 강 전 장관이 이 정도까지 깊은 고민을 한다면 사실상 본인은 (출마 쪽으로) 어느 정도 마음을 정한 게 아닌가 싶다. 다만 나갈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는 듯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강 전 장관이 공동대표로 있는 법무법인 ‘지평’의 한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너무 앞서가는 측면도 있지만, 심각히 고민중인 것은 맞는 것 같다”라며 “거의 매일 사무실에 나오지만 내부에서도 그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말을 않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참여정부 들어 함께 내각에 참여했던 인사들과 예전부터 친분을 맺어왔던 정치권 인사들, 그리고 최근 그와 접촉했던 열린우리당 관계자들이 중심이 되는 정관계 지인들은 강 전 장관의 출마 가능성에 상당히 무게를 두고 있다. 여당의 한 의원은 “강 전 장관은 ‘작년까지만 해도 서울시장 출마는 정말 생각도 못해본 일이었다’면서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계속 치솟는 결과에 다소 당황해하고 있다. 그는 ‘주변의 권유와 설득이 워낙 많아서 무작정 외면하기만은 어렵게 됐다’며 고민스러워했다”고 전했다.
실제 강 전 장관은 지난 1월 말 한 언론사와의 전화통화에서 “출마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은 밝히기 어렵다. 조금 있다가 이야기하자”며 결심을 하기가 간단치 않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강 전 장관의 설득에 상당한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진 한 여성계 인사 역시 “이제 (그의 결심을) 기다려볼 뿐”이라고 말을 아끼면서도 기대감은 감추지 않았다.
2004년 7월 법무부 청사를 떠난 직후 강 전 장관은 그해 하반기 동안 휴식을 만끽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05년부터 그의 ‘활동’은 조용히 다시 시작됐다. ‘지평’에 거의 매일 출근을 했고, 여성인권대사로 임명되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또는 전직 법무장관 등의 전력으로 해외 포럼이나 강연에 참석하기도 했다.
며칠 전 한 언론사 기자와의 만남에서도 그는 “요즘 일하는 재미에 푹 빠져 산다”고 밝힌 바 있다. ‘지평’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서울 강남에 있는 로펌 사무실을 서울역 부근으로 옮길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 2000년 변호사 14명으로 출범한 사무실의 규모가 이제 50명의 규모로 커진 만큼 확대된 외연에 걸맞게 사무실도 넓히는 셈이다. ‘지평’의 또 다른 관계자는 “사무실에 거의 매일 나오기는 하지만 외부 약속이 많아서 사무실에 머무는 시간은 얼마 안 된다”고 전했다.
화려하고 세련된 옷차림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또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은 절대 못 입는 성격인 강 전 장관. 주변의 유혹에 흔들림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불혹을 넘어 이제 그도 ‘지천명’이라고 하는 나이 50줄에 접어들었다. 최근의 치솟는 여론조사 지지율과 국민들의 거센 요구, 그리고 ‘의리’와 ‘책임’을 들먹이는 여권의 압력과 지인들의 출마 권유가 과연 강 전 장관에게 ‘하늘의 명’으로 받아들여질까. 그의 선택에 따라 지방선거 정국은 또한번 강하게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