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서 ‘맛깔나는 조연’ 역할을 한 김두관 최고위원. 그는 ‘주연’으로 우뚝 설 미래의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여당의 전당대회라는 드라마가 그렇게 싱겁게 끝이 났다면 시청자들의 채널도 다른 곳으로 냉정하게 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흥행에 애먹은 이 드라마에서 유독 시청자들의 시선을 붙잡아둔 또 다른 조연이 있었다. 김두관 후보. 그는 지난해 4·2 전당대회 패배로 깊은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재수생’이었던 그는 이번에도 실패하면 고향 남해로 낙향해 하릴없이 ‘감독’의 콜 사인만을 기다려야 할 운명이었다. 그래서 이번 드라마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그리고 이겼다. ‘김두관이 이번 전당대회의 최대 스타였다’는 평가는 혼백을 다한 ‘십자가 연설’ 끝에 맛본 달콤한 열매였다.
원외(院外) 무명의 설움을 딛고 일약 여의도의 스타로 떠오른 김두관 최고위원. 빛나는 조연이던 그는 과연 앞으로 펼쳐질 새 정치 드라마에서 ‘주연’을 꿈꾸고 있을까. 그를 만나 미리 ‘탐색’을 해보았다.
김두관 열린우리당 최고위원에게 인터뷰를 요청하기 위해 직접 전화를 넣었다. 인터뷰 조정 등의 사소한 일은 공보특보 소관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김 최고위원에게 먼저 전화를 해보았다. 일을 빨리 처리하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김 최고위원에게는 왠지 그래도 될 것 같았다. 한창 잘나가는 유력 대권후보들에게는 언감생심이다. 그런데 김 최고위원에게는 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그가 거물급이 아니라서? 그때는 이미 집권 여당의 ‘넘버 3’인데 공보특보를 통해 정식으로 인터뷰 일정을 잡아야 하는 게 정상적인 일처리일 것이다.
그래도 기자가 직접 그에게 전화를 해 인터뷰 약속을 받아낸 것은 그가 ‘만만했기’ 때문이다. 무슨 시건방진 얘기냐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른바 일류대학 출신 엘리트 정치인들의 뻣뻣함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누구도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친근함과 소탈함이 엿보인다. 이런 그의 모습이 열린우리당 대의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모른다.
그를 잘 아는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그와 술을 마시다 보면 묘한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위아래를 가리지 않고 항상 남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상대방에게 잘 설득시킨다. 모든 사람들에게 진정성을 가지고 대하기 때문에 그와 한번 이야기를 해본 사람들은 그를 신뢰하게 되는 편”이라고 칭찬한다. 김 최고위원이 지난해 5월 대통령 정무특보에 발탁된 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그 배경에 대해 “당정에 걸쳐 경험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성격이 소탈한 점도 높이 샀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는 또한 현장을 중시하는 정치인으로도 통한다. 밑바닥 정서를 잘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정치적 역량을 키워나가고 모든 전략을 세워나간다는 것이다. 그는 “국정 책임자는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내 정치력의 바탕은 ‘바닥의 힘’에 있다”고 말한다.
“대통령 정무특보 시절 일주일에 4~5일은 지방에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현장과 직접 부딪치면서 밑바닥 정서를 수없이 경험했다. 그때 조직을 잘 다져놨기 때문에 이번 전대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또한 많은 사람들과 만나면서 현란한 정치적 수사를 남발하지 않았다.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는 현장의 언어로 솔직하게 다가섰다. 아마 열린우리당 대의원들이 그런 나의 소탈한 모습과 진정성을 이번에 평가해준 것 같다.”
김두관 최고위원은 17대 총선, 2005년 4·2 전당대회의 연이은 패배 뒤 마침내 자신의 작은 꿈 하나를 이뤘다.
─정치인으로서 더 큰 꿈을 꾸고 있나.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자리가 있고 노력을 뛰어넘는 자리가 있다. 어떻게 하다보니 장관도 하고 정무특보도 하고 당 최고위원도 하게 됐다. 국회의원이나 도지사는 사람 노력으로 되는 자리 같은데 대통령과 총리는 사람의 노력을 뛰어넘는 자리다. 욕심 낸다고 되는 게 아니다. 국회의원이나 도지사는 열심히 노력하면 될 것 같기도 한데 그 이상은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 같다.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은 무엇이라고 보나.
▲국민을 섬기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특히 차기 대통령은 통일에 대한 비전을 확실히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 무드를 조성해서 북한의 우수한 노동력과 우리의 자금력을 결합해 대한민국을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 유명해진 2·18 전당대회 ‘십자가 연설’ 장면.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많이 연습했다. 참모들이 ‘힘들게 살아왔는데 부잣집아들같이 연설하니까 표를 안 주지 않느냐’며 따끔한 충고를 했다. 전당대회 전에 임종석 김혁규 의원에 밀려 5위로 떨어진다는 예상도 많았다. 옛날 같으면 7전8기라는 말도 있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해서 3진 아웃제다. 몇 번 떨어지면 사람들이 ‘김두관 이제 안 되겠구나’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점을 참모들이 많이 각인시켜줬다. 연설 연습할 때 두 손을 옆으로 들어 제스처(십자가형)를 취하려고 했지만 쑥스러워서 도저히 안 되더라.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니 열기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나오더라. 살아온 것대로 표현해보자고 했는데 좋게 봐준 것 같다.
─만약 이번에도 실패했다면.
▲또 떨어지면 다시 남해로 돌아가서 10년 고생해야지. 국회의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정치적으로 엄청 힘들 것이다.
─노 대통령이 도와주었다면 2등과의 격차를 더 좁힐 수도 있었다고 했는데 어떤 도움을 말하나.
▲대통령이 공·사석에서 ‘김두관 특보가 최고위원이 되면 어떨까’ 이렇게 한마디만 하거나 아니면 농담이라도 한마디 하면 금방 소문이 나지 않느냐. 그렇게 되면 아직도 당에는 대통령을 따르는 당원들이 많기 때문에 효과가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지난해 4·2 전당대회 전에도 노 대통령을 만나 ‘한번 도와주십시오’라며 부탁했는데 대통령이 ‘아니 못 도와준다’며 거절했다. 다른 후보들에게도 못 도와준다고 했다는데 어느 후보는 ‘대통령이 도와주기로 했다’며 선의의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리틀 노무현’이란 말 좋아하나.
▲좋아한다기보다 과분한 말이다. 노 대통령은 지역주의 극복과 통합의 삶을 살아온 분인데 내가 송구스럽다. 하지만 농담 한마디 하면 내가 그분보다 좀 더 잘생기지 않았나(웃음).
─지방선거를 대비해 일부 장관들을 차출할 경우 국정 공백이 우려된다는 시각도 있는데.
▲행정부처 내에서 장관 비중이 있긴 하지만 장관이 혼자 뭘 좌지우지 하는 것은 아니다. 장관이 선거에 나간다면 약간 공백이 있긴 하겠지만 그렇게 혼란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내각제 국가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 아닌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의 서울시장 후보 영입에 대해 어떻게 보나.
▲당이 꼭 영입해야 한다. 문희상 전 의장이 한두 번 접촉했는데 여전히 본인이 주저하고 있는 것 같다.
─5·31 지방선거 결과를 예상한다면.
▲16개 광역단체장 중 6~7개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수도권 세 곳은 예측불허다. 앞으로 석 달간 준비를 잘 해야 할 것이다.
─만약 지방선거에 대패한 뒤 정동영 의장 책임론이 나온다면.
▲정 의장이 책임질 정도로 나쁜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낙관한다. 그리고 선거 결과에 무조건 지도부가 책임지는 게 옳은 건지 고민해야 한다.
─유시민 복지부 장관과 자신을 비교한다면.
▲참정연에서 함께 활동했기 때문에 정치개혁이라는 점에선 닮았다. 하지만 개인적 품성은 많이 다르다. 유 장관은 깐깐하고 사물을 보는 안목도 있는 데 반해 나는 늘 넉넉하고 느슨하다는 차이점이 있다. 유 장관은 외국(독일)에서 공부도 하고 중앙무대가 발판이었지만 나는 줄곧 지역 현장에서 경험을 쌓아왔다는 점도 다르다.
─김영춘 의원이 유 장관에 대해 ‘같은 말을 그렇게 싸가지 없이 하는 것은 처음 본다’는 말을 한 적도 있는데.
▲그 사람(유 장관)이 말을 좀 야박하게 한다고 해서…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품성보다는 장관으로서의 능력이 우선이다. 그 사람이 국민연금 개혁이나 양극화 문제 등 복지정책에서 상당히 할 일이 많다. 유 장관에게 그런 태도가 있다고 하면 자기가 고쳐야 하는 것이겠지.
─야당에서는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하면 개헌론을 제기해 돌파구를 마련할 것이라는 지적도 한다.
▲정국 탈출과는 관계없이 개헌은 해야 하는 문제다. 5년 단임제는 1987년 노태우 대통령과 3김이 합의한 제도다. 좀 심하게 얘기하면 돌아가면서 한 번씩 하려고 그렇게 합의한 것 아닌가. 5년 단임제는 현재의 다원화 시대 흐름과는 맞지 않다. 개헌논의는 정치권 이합집산과 관계없이 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서 정치권이 약간 영향을 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은 현재진행형인가.
▲그것은 과거시제다. 그리고 정동영 의장, 김근태·김두관 최고위원 등이 이렇게 당선되었는데 굳이 탈당하겠는가. 탈당이 국정 운영에 유리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당이 강력하게 뒷받침하지 않으면 국정 운영에 어려움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전대를 통해서 당 지도부가 탄생했기 때문에 대통령이 갑자기 탈당하시겠나 싶다. 탈당하겠다고 하면 하시지 말라고 만류할 생각이다.
─차기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 경선은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정동영 김근태 천정배 유시민 이해찬 강금실 이런 사람들이 후보가 될 것으로 본다. 김혁규 위원도 있다. 내년 전대에서는 다자 구도를 만들어 경쟁해서 살아남는 사람이 대선에 가야한다. (정동영-김근태 양자 구도가 아닌) 다자 구도가 될 것으로 본다.
─지금부터 대선 후보 경선 준비를 많이 해야 하지 않나.
▲그것은… 7년 후쯤에나 한번 하지. 전국 이장님들 다 동원해 가지고(웃음).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나.
▲꿈을 갖고 열심히 해야지. 자기 노력을 통해서 후보 반열에는 오를 수 있겠지만 선택하는 것은 국민 몫이다. 꿈은 있어야지….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