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삼성전자는 시총 1위 자리를 유지해왔지만 2012년 전까지만 해도 대표지수인 코스피200 대비 변동폭이 컸다. 그런데 2013년부터 갤럭시 스마트폰이 대박을 터뜨리며 삼성전자 주가가 100만 원을 넘어섰고, 이후 코스피200과 거의 같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이 지난 8월 11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갤럭시노트7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갤럭시 노트7을 소개하는 모습. 삼성전자는 결국 지난 11일 갤럭시노트7 단종을 발표했다. 고성준 기자
올 들어서도 삼성전자 주가는 고공행진을 했다. 갤럭시노트7의 교환이 꽤 순조로운 듯 보였고, 최근에는 행동주의 헤지펀드인 엘리엇도 사업분할과 배당확대를 제안해 사상 최고가를 견인했다. 코스피200 내 삼성전자의 비중은 20%에 육박했고, 삼성전자 덕분에 지수가 오르는 현상도 더욱 뚜렷해졌다.
그런데 갤럭시노트7 단종으로 상황이 역전됐다. 코스피를 이끌던 ‘슈퍼공룡’의 발목에 ‘무쇠 추’가 채워지면서 삼성전자의 하락이 지수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을지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됐다.
문제는 삼성전자의 증시 내 비중이 높아지면서 나타난 쏠림이 시장 왜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 데 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상황이다.
국내 상장 주식의 약 40%를 보유하고 있고, 삼성전자 지분 절반 이상을 가진 외국인들은 파생시장을 통해 투자위험을 회피한다. 파생시장에서 가장 대표적인 지수는 코스피200이다. 코스피200 내 삼성전자 비중은 20%에 달한다. 삼성전자가 움직이면 코스피200도 움직일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를 팔기 전 코스피200 선물을 내다팔거나 콜옵션 매도, 풋옵션 매수로 수익을 낼 수 있다. 반대로 삼성전자를 사기 전 코스피200 선물을 사거나 콜옵션 매수, 풋옵션 매도로 수익을 낼 확률이 높다.
외국인들이 1100조 원에 달하는 코스피200을 직접 움직이기는 어렵지만, 220조 원짜리 삼성전자를 통해 1100조 원짜리 코스피200을 움직이는 건 상대적으로 쉽다. 개미들은 물론 국내 기관들도 삼성전자를 쥐고 흔드는 외국인들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삼성전자 지분은 삼성 특수관계인과 자사주가 30% 이상, 외국인이 50%, 국민연금이 10%를 보유 중이다. 코스피200을 벤치마크로 삼는 펀드 대부분 삼성전자에 운용자산의 15% 이상 투자하고 있다. 외국인들은 대부분 장기투자자로 파악된다. 따라서 실제 시장에서 유통되는 주식은 10%에 한참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최근 계속된 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의 ‘씨를 말리는’ 효과를 가져왔다는 평가다. 작은 매매에도 주가가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뜻이다.
삼성전자 주가와 코스피200의 월간 차트 비교.
외국인들은 매수뿐 아니라 매도를 통해 삼성전자 주가를 움직인다. 주가가 하락하기 전에 빌려둔 주식을 팔아, 즉 공매도(short selling)해 현금을 마련하고 주가가 하락한 후 되사 갚으면 차익이 생긴다. 유동성에 민감해진 주식에는 공매도 전략을 펼치기 좋다. 주식을 팔아 시세를 떨어뜨리는 효과가 커서다. 220조 원짜리 삼성전자 주가로 1100조 원짜리 코스피200을 조절하면 지수는 물론 선물 및 옵션 가격까지 조절할 수 있다.
펀드 시장의 왜곡도 발생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주식형펀드는 시가총액 비중에 따라 종목을 구성한다. 벤치마크(benchmark), 쉽게 말해 펀드의 출발점을 시장수익률을 기준으로 삼기 위해서다. 펀드매니저는 이렇게 구성된 종목 가운데 전략적으로 시장보다 비중을 높이거나 낮춰 초과수익을 노린다. 기본적으로 삼성전자를 편입할 수밖에 없다.
현행법상 공모펀드 내 특정 종목 비중은 총 자산의 10%를 넘을 수 없지만, 시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를 넘는 종목만은 예외적으로 시총 비중만큼 편입할 수 있다. 이런 종목은 삼성전자뿐이다. 즉 삼성전자 비중이 높아 펀드에도 삼성전자를 잔뜩 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삼성전자 주식 물량이 한정되다보니 펀드들이 벤치마크를 맞추기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우선주, 선물, ETF 등으로 간신히 삼성전자 움직임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삼성전자 쏠림 현상이 다시 더 높아지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
증시 한 관계자는 “사실 주요국 증시 가운에 우리처럼 특정 종목 쏠림이 큰 곳이 없다. 증시에서 삼성전자 비중을 줄이는 방법은 두 가지다. 다른 종목들이 커지거나 삼성전자를 줄이거나다. 삼성전자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쪼개 사업회사를 국내와 함께 미국 나스닥에도 상장시키자는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제안은 시장효율과 주주가치 측면에서 본다면 긍정적일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최열희 언론인
엘리엇의 서신은 ‘연서’가 아닌 ‘경고장’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 단종 결정 이후 엘리엇매니지먼트(엘리엇)가 우호적인 반응을 내놓은 데 시장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삼성과 대립하던 엘리엇이 삼성과 동반자적 협력관계를 추구하는 게 아니냐는 풀이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엘리엇은 여전히 삼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여기고 있으며, 오히려 이번 갤럭시노트7 사태를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 총수 일가와 경영진에 대한 압박을 높이는 지렛대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엘리엇이 삼성에 보낸 주주제안 원문을 분석한 결과, 현재의 지배구조와 경영방식에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주가치가 엉망이며, 지배구조는 불투명해 경영효율이 떨어진 상황이니 자신들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앞으로 이 부회장이 주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경고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엘리엇은 편지에서 지배구조에 대해 ‘불필요하게 복잡하다(unnececessarily complex)’고 꼬집었다. 순환출자로 복잡하게 얽힌 지분구조에 대한 지적이다. 또 현재 상태로는 미래 지배구조에 대한 불확실성만 높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후계와 금산분리 및 순환출자 규제 강화 등의 변화가 계속되고 있는 데 따른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대목으로 해석된다. 배당 요구를 하면서도 ‘자본이 심각하게 비대(significantly overcapitalized)’하다고 질타했다. 미래투자를 위한 저축 수준을 넘어서는 현금 보유로 자본이 비대해져 자본수익률(ROE), 배당수익률, 배당성향 등이 모두 낮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경쟁사와 숫자를 하나하나 비교해, 삼성전자의 저조한 자본효율 및 주주경영 지표들이 삼성전자 주가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을 강조했다. 발행주식의 12.78%에 달하는 자사주도 자본효율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나눠서 의결권을 되살릴 게 아니라면 아예 소각해 자본효율을 높이는 게 낫다는 제안까지 했다. 삼성전자 자사주는 지배구조의 핵심이란 점에서 이를 소각하라고 제안한 것은 상당한 압박을 한 셈이다. 자신들의 제안이 글로벌 투자자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 맥쿼리, 모건스탠리, 씨티, 바클레이스, 제이피모건, 크레디트스위스, 도이치방크 등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삼성에 대한 최근 조언들도 소개했다. 모두 자신들의 제안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이사회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엘리엇은 제안을 담은 편지와 함께 보낸 프리젠테이션(PT) 자료에서 현재 이사진 구성은 국제감각도, 경험도, 성적다양성도 충족하지 못해 글로벌 경쟁업체들과 비교해 부족한 점이 많다는 점을 분명히 따졌다. 엘리엇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주주들을 대표할 수 있고, 국제적인 경영감각을 가진 독립사외이사 3명을 제안했다. 엘리엇은 지난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주총을 계기로 삼성그룹 내 지배구조에 의미심장한 변화를 가져온 점도 은근히 자랑했다. 엘리엇의 제안 원문을 본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점잖게 말해 제안이지만 하나하나 따져보면 오히려 요구에 가깝다. 등기임원 선임을 앞둔 이재용 부회장 입장에서는 지분 절반을 가진 외국인 주주들의 지지가 절대 필요한데 엘리엇이 그 틈을 파고 든 것으로 보인다. 받아들일 수도, 그렇다고 아예 무시할 수도 없는 삼성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이번이 아니더라도 주주들을 달랠 뭔가 의미 있는 조치들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