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9일 최연희 의원 성추행 규탄대회가 국회 앞에서 열렸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한 측근이 전하는 최연희 의원(62)의 지금 심경이다. 판사로, 검사로, 그리고 3선 중진의 제1야당 사무총장으로 순탄대로만 달려왔던 한 정치인의 인생이 순식간에 풍비박산이 났다. 한 언론사 기자들과의 술자리 도중 만취 상태에서 여기자의 가슴을 만졌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그는 현재 열흘이 넘게 잠적 상태에 있다. 만약 그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그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가장 불명예스러운 족적을 남기고 의정을 떠나야 할 위기에 봉착해 있는 셈이다. 평소 합리적이고 신사적인 품위와 매너를 유지하던 최 의원이었기에 이번 파문을 바라보는 주변 당사자들과 가족들의 충격은 더 하다. 부인은 “반드시 진실을 가려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강조했다. 일부에서는 “술을 마시면 평소와는 좀 다른 면을 보이기도 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작 최 의원에 대해 비난 여론이 쏟아지는 것은 성추행 사실도 그렇지만 파문 이후 잠적과 침묵으로 일관하는 행태에 대해 무책임함을 탓하는 목소리가 더 높다.
“최연희 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하는 길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이번 성추행 파문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모처럼만에 여야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나라당 역시 전방위적으로 최 의원의 사퇴를 종용하고 있다. 일부 이에 반발하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요즘에는 너무나 따가운 여론에 기가 질린 탓인지 아예 이마저도 숨어들었다.
정작 최 의원은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여론 희석용 ‘버티기’를 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난 뒤 곧 입장 표명을 할 것처럼 보였으나 열흘이 넘게 철저히 잠적하고 있다. 사건의 진위야 어찌 되었든 간에 공인으로서 마땅한 도리가 아니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의 정확한 진상이다. 현재로서는 이 문제를 최초 제기한 <동아일보>의 2월 27일자 보도만이 알려졌을 뿐이다. 이는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기자의 증언을 토대로 한 신문사 측의 입장이다. 그런데 초상집 같은 한나라당 내에서도 “최 의원이 그대로 사퇴하면 결국 동아일보의 입장을 모두 인정하는 결과밖에 안된다”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왜 그럴까. 당시 상황부터 살펴보자.
2월 24일 금요일 저녁 8시경. 서울 광화문 인근에 위치한 한정식집 M에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와 이규택 최고위원, 최연희 전 사무총장, 정병국 홍보본부장, 이계진 대변인, 유정복 대표 비서실장, 이경재 의원 등 7명이다. 이어서 또 다른 한 무리들이 들어섰다. 이들은 <동아일보>의 임채청 편집국장과 이진녕 정치부장, 그리고 정치부 한나라당 출입 기자 5명이었다.
이날의 모임은 한나라당의 요청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신임 당직자들의 상견례를 위한 자리로 만들어졌다는 전언이다. 14명이 서로 마주앉아 최근의 각종 정치 현안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저녁식사가 이어졌다.
2시간 후인 밤 10시경. 양측의 좌장격인 박 대표와 임 국장이 먼저 자리를 떴고, 나머지 인사들은 음식점 지하에 위치한 장소로 ‘2차’를 갔다. 그곳에는 가라오케가 마련되어 있었고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술자리가 시작됐다. 불미스런 사건은 여기서 불거졌다.
유흥을 즐기는 과정에서 최 의원이 옆 자리의 여기자를 뒤에서 껴안고 가슴을 만졌다는 것이 신문사 측의 주장이다. 아무튼 이에 여기자는 강력하게 항의하며 자리를 나섰고 최 의원과 한나라당 당직자들은 그 자리에서 사과를 했다고 한다. 그날의 술자리는 그런 어수선한 가운데 파했다.
다음날 이 사건은 박 대표에게 보고됐다. 곧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박 대표는 그날 저녁 여기자에게 먼저 사과 전화를 했다. “당 대표로서 최 의원을 대신해 백배사죄 한다”고 정중히 사과했다. 이날은 토요일이어서 신문사가 쉬는 날이었다.
사실 이때만 해도 한나라당은 당 대표의 정식 사죄를 동아일보가 받아들이는 정도로 파문이 수습될 것으로 여긴 듯하다.
그 이튿날인 26일 일요일 오전. 최 의원은 당 사무총장의 자격으로 민주노동당 전당대회장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날 오후 2~3시경 박 대표와 이재오 원내대표가 잇따라 동아일보의 임 국장과 이 부장에게 사과 전화를 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했다. 신문사 측이 강경한 입장을 나타낸 것. 이 대표는 이 부장에게 “곧 당직자 회의를 열어 최 의원의 당직 박탈 등 엄중한 조치를 취하겠다”며 사건 진화에 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 지난 2월 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연희 의원이 박근혜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있다. | ||
문제는 이날부터의 최 의원 행적이다. 부인은 기자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남편 역시 이번 파문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무엇보다 본인은 전혀 그런 기억이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내가 지금껏 평생 그런 적이 없는데 그날 그렇게 했겠느냐’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잠시 쉬면서 생각을 정리하겠다’고 집을 나선 이후로 지금까지 전혀 연락이 없다”고 밝혔다.
이후 여론은 빗발쳤고 최 의원의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하늘을 찔렀다. 피해 여기자는 최 의원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할 뜻을 밝혔다.
이런 가운데 지난 8일경 <일요신문>에 한 통의 제보가 들어왔다. 국회 관계자라고 밝힌 그는 “최근 최 의원 사태에 대해 지금껏 알려진 것과는 다른 사실들이 있다”고 전했다.
그 요지는 대략 이랬다. 1차 식사 자리부터 폭탄주가 돌기 시작했고 최 의원은 여러 잔의 폭탄주를 마시며 이미 취했다는 것. 2차에서 가라오케가 들어오고 본격적으로 폭탄주가 돌면서 노래 부르고 춤추는 분위기가 됐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이 자리에 한나라당 당직자와 동아일보 기자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음식점에서 부른 ‘여성 도우미’들이 함께 있었다는 증언이다. 이들은 곁에서 폭탄주도 만들어주고 노래도 함께 부르고 심지어 일부 참석자들과 블루스도 함께 추는 등 흥을 돋우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피해를 주장하는 여기자 또한 사건 발생 전까지만 해도 이 분위기에 함께 잘 어울렸다는 증언이다.
<민중의 소리>는 7일자 보도에서 비교적 ‘2차 술자리’의 내부 상황에 대해서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보도에 따르면 ‘M측에 따르면 1차 식사 자리부터 소위 ‘식사 도우미’ 여성들을 대동한 채 밥을 먹었으며 가라오케 시설이 있는 2차에까지 이어졌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2차에서도 시중을 들 수 있는 여성들이 있었다. 기자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자리에서 블루스를 추기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비용은 한나라당에서 부담했으며 1~2차 식사 및 술값 비용, 도우미 봉사료 등을 합쳐 500만 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히고 있다.
이 문제를 최초 제기한 신문사 측은 당초 보도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정가에서는 “최 의원이 음식점 주인인 줄 착각했다고 변명한 것도 결국 도우미들과 함께 노래부르고 노는 과정에서 도우미와 착각했다고 한 말이 잘못 표현된 것이 아니겠느냐”는 얘기도 나왔다.
국회 법사위 소속의 한 의원은 “최 의원은 평소에도 술을 별로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최 의원 부인과 최 의원실의 비서진도 “주량이 약한 것이 아니라 술을 거의 못 마신다고 하는 편이 맞다”고 밝혔다. 최 의원에 대해서 일부 동정적 심경을 표출하는 측에서는 “평소 술도 못하는 양반이 그날 지나치게 술을 많이 마시고 실수를 한 것 같다”고 안타까워한다.
그렇다면 최 의원은 평소 술을 거의 못하는 체질일까. 이에 대해서는 또 의견이 엇갈린다. 과거 검사 시절의 최 의원을 기억하는 인사들은 “잘은 못했지만 전혀 못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폭탄주 몇 잔 정도는 함께 돌렸던 기억이 난다”고 전하고 있다. <중앙일보>의 인물정보에도 최 의원의 주량은 ‘소주 1병’으로 소개되고 있다. 최 의원 지역구인 강원도 동해의 한 주민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술을 한잔씩 같이 했고 술에 취하면 점잖던 양반이 다소 말도 과격해지는 등 좀 변하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 것으로 <민중의 소리>는 보도했다.
이에 대해 최 의원 측은 “과거 검사 시절에도 술을 많이 못했지만 특히 최근에는 이제 환갑을 넘겼고 당직으로 인해 상당히 건강이 악화된 상황이어서 술을 거의 안했다”고 전했다.
최 의원은 초중등생 시절 고향 동해에서 수재 소리를 듣고 서울에 유학, 서울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그는 72년 사시 14회에 합격, 당초 판사로 법조계에 입문했다가 일년 만에 곧 검사로 옷을 바꿔 입었다.
최 의원은 허약체질이라는 사유로 군도 면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최 의원은 “대학 재학으로 계속 연기하다가 사법고시에 합격, 법무관 임관을 위해 훈련소에 입소했으나 고된 훈련을 견디지 못해 두 차례 귀향조치 후 면제됐다”고 밝힌 바 있다. 최 의원은 174㎝에 67㎏으로 비교적 마른 체형이다.
89년 대검 공안과장을 역임하며 ‘공안통’의 인상을 강하게 남겼고 6공 말기와 문민정부 초기 청와대 사정비서관과 민정비서관을 역임하며 정치인의 꿈을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춘천지검 차장을 마지막으로 검사장 진급을 마다하고 96년 신한국당에 입당했다. 당시 총선에서 여당인 신한국당은 홍준표 이사철 안상수 정형근 등 검사 출신들을 대거 정치 신인으로 영입했던 바 있다. 최 의원은 고향인 동해에서 김효영 현역 의원을 밀어내고 공천을 따냈다. 이후 고향에서 내리 3선을 기록했다.
최 의원의 취미는 독특하다. ‘업무개발’이라고 한다. 그만큼 그는 일에 대해서는 철저함을 기하는 완벽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또 하나의 취미는 ‘걸으며 사색하기’라고 한다. 그의 성격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 최 의원은 어느 한적한 거리를 걸으며 사색에 잠겨 있을까. 부인의 말처럼 심혈을 다 바쳐온 한나라당의 출당과 의원직 박탈 종용에 배신감을 느끼고 있을까. 아니면 술자리의 실수를 두고두고 자책하며 ‘일장춘몽’의 허탈함을 느끼고 있을까.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