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회관 전경.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전경련은 역사적으로 보수 정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전경련은 1988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 자금을 주도적으로 나서서 모금했고 1995년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선 비자금을 제공했다. 2002년에도 전경련 주도로 일부 대기업이 이회창 전 대선후보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다.
전경련 해체론에는 정경유착뿐 아니라 회원사들의 불만도 포함돼 있다. 전경련이 정부와 관계 유지에만 힘쓸 뿐 정작 회원사의 목소리는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전력공사, 한국석유공사 등 공공기관 회원사 7곳이 전경련 탈퇴를 신청했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등 금융권도 탈퇴를 고려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공공기관 회원사들은 그간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 이익단체인 전경련에서 활동하는 건 이치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아왔다.
탈퇴를 신청한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마케팅 활동의 일환으로 전경련에 가입했지만 이렇다 할 마케팅 성과가 없었다”며 “회비까지 내가면서 논란에 휩싸일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일부 공공기관 회원사들은 이미 3~4년 전부터 탈퇴 의사를 밝혔지만 전경련이 탈퇴를 거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 함께 동참하자는 것이 이유였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그렇지 않아도 전경련의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연쇄 탈퇴로 이어지는 걸 두려워한 것 같다”며 “전경련도 스스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탈퇴를 신청하는 또 다른 원인은 부담스러운 연회비다. 전경련의 주 수입은 회원사들의 연회비로 400억~500억 원 수준이다. 어느 기업이 얼마를 내는지는 비밀에 부쳐져 있지만 재계에서는 삼성이 100억 원 이상, 현대자동차와 SK, LG가 각각 50억 원가량을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은 회비 사용 내역 역시 공개하지 않는다. 김상조 소장은 “재무정보의 투명성은 기업경영의 기본 중 기본”이라며 “투명성 요건도 갖추지 못한 전경련이 어떻게 기업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익단체로서 역할을 수행하겠는가”라고 비판했다.
NICE신용평가 재무제표에 따르면 전경련은 지난해 인건비와 관리비로 300억 원 이상 지출했다. 지난해 말 기준 전경련은 전체 직원 113명의 급여로 92억 원을 지출했다. 단순 계산대로라면 전경련 직원의 평균 연봉은 8000만 원이 넘는다. 어지간한 대기업 직원 평균 연봉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회장 판공비나 상근부회장의 연봉은 공개하기 힘들다”고 전했다.
전경련의 부채는 3300억 원, 부채비율은 1442%에 달한다. 비록 대부분 부채가 전경련 신축회관 건설 과정에서 발생했지만 재계 대변을 위해 납부한 회비가 전경련 조직을 위해 과도하게 쓰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기업 회원사들은 전경련 해체를 반대하는 분위기다.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재계를 중심으로 전경련 해체를 반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전경련이 아니면 정부와 연결할 통로가 부족한 게 사실”이라며 “회비 대비 가성비로 따지면 부족한 점이 있을 수 있지만 전경련 회원인 게 (개별기업 입장에서는) 무조건 손해는 아니다”라고 전했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경제정책에 대해 한 기업이 이야기하는 것보다 전경련을 통해 이야기하는 게 훨씬 효과가 있다”며 “전경련이 구설에 올랐다고 해서 바로 해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은 지난 12일 국정감사에서 “전경련이 국민의 신뢰를 받는 단체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발언과 재계의 의견을 종합하면 전경련이 실제 해체될 가능성은 낮다. 민간단체이기에 강제로 해체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없다.
해체론과 관련, 전경련과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의 합병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비록 대한상의가 대기업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하지만 최근 위상만 보면 대한상의가 전경련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 예로 지난해 3월 박근혜 대통령이 중동을 방문할 때 동행한 경제사절단 116명 중 제일 위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었으며 두 번째 역시 이동근 대한상의 부회장이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의 이름은 세 번째야 올랐다.
전경련이 재계 대변인이 아닌 한국경제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연구소, 즉 싱크탱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싱크탱크로 전환한다고 해서 정경유착의 고리가 끊어질 것으로 예상하기는 힘들다. 재계 모임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아 또 다른 로비창구가 될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해체가 힘들다면, 또 해체론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전경련이 스스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김상조 소장은 “전경련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든 것을 투명하게 밝히고 국민의 평가를 받는 것뿐”이라며 “꿈쩍 않고 버티는 것으로는 위기를 모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해체 위기 몰렸는데 회장은 나 몰라라 허창수 전경련 회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종종 “(전경련이) 국민과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전경련과 관련된 의혹과 논란이 터질 때마다 허 회장은 물론 전경련 수뇌부조차 직접 해명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허 회장은 지난 4~5월 보수단체인 어버이연합을 지원했다는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는 물론 최근 미르·K스포츠 재단 논란과 관련해서도 뚜렷한 입장이나 해명을 밝히지 않았다. 허창수 회장이 내내 침묵하는 이유는 청와대를 의식하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청와대가 침묵하는 상황에서 허 회장이 단독으로 입장을 밝히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9월 29일 허창수 전경련 회장을 비롯해 전경련 수뇌부를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투기자본감시센터 관계자는 “미르·K스포츠 재단 사태는 결과적으로 청와대에 뇌물을 준 셈”이라며 “뇌물받은 사람이 가만히 있는데 준 사람이 먼저 나설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허 회장은 2013년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를 지원하기 위해 전경련 창조경제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고 위원장을 맡았다. 지난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당시에는 자유경제원이 국정화를 적극 지지했다. 자유경제원은 1997년 전경련 산하로 설립됐다가 1999년 독립했지만 여전히 전경련의 금전적 지원을 받고 있다. 허 회장의 임기는 내년 2월까지다. 허 회장은 2011년 회장에 취임해 3차례 연임 중이다. 지난해 연임을 고사했으나 회장 공석 사태를 막기 위해 결국 수락했으며 더 이상 연임은 없다고 공언한 상태다. [박] |
실제 배후는 이승철 부회장이라는데…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을 주도한 인물은 허 회장이 아니라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허창수 회장은 아무것도 모르며, 이것이 전경련과 관련한 의혹과 논란에 대해 허 회창이 침묵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더민주) 원내대표는 지난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허 회장은 더 이상 이 부회장의 농간에 이용당하지 말라”며 “전경련 개혁에 허 회장이 직접 나서달라”고 당부했다. 회원사에서 받는 예산을 집행하는 전경련 사무국은 이사회·총회 등 형식적 절차만 거치면 외부 감사 없이 전권을 행사할 수 있다. 따라서 자금 결재 등의 업무는 비상근 명예직인 허 회장보다 상근 임원인 이 부회장이 처리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전경련 관계자는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아무래도 상근부회장 선에서 이뤄지는 결재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이 논란의 중심인물로 지목되는 또 다른 이유는 차은택 감독과 인연 때문이다. 더민주 측은 “이승철 부회장과 차은택 감독은 민관합동 창조경제추진단에서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다”며 “실제 두 사람이 함께 근무했던 2015년에 미르·K스포츠 재단이 설립됐다”고 주장했다.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 사진제공=전경련 이 부회장을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이 부회장은 정부의 임금 인상 정책에 대해 “임금 인상보다 창조경제를 통해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 시급하다”며 반대해 시민들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2011년 당시 전경련 전무였던 이 부회장과 정병철 전경련 부회장이 ‘양철’로 불리며 거센 비난을 받았다. 이른바 ‘양철’이 전횡과 독단을 일삼고 전경련을 사조직처럼 운영한다는 것이었다. 2011년 7월 ‘양철’은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의 인력을 30% 이상 구조조정했다. 당시 전경련은 비용 절감 차원에서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것이라고 밝혔지만 재계에서는 정병철 부회장과 이승철 전무가 ‘자기 사람’을 요직에 앉히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내치기 위한 것이라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한경연 측 역시 전경련에 대한 비난 여론을 한경연의 책임으로 돌려 회피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그해 8월에는 ‘전경련의 정치권 로비 그룹 할당’ 문제가 터지면서 ‘양철’에 대한 비난이 극에 달했다. 재계에서조차 ‘양철’의 교체를 요구했을 정도였으며 전경련 해체론이 재계를 뜨겁게 달군 바 있다. 거센 비난과 교체 요구에도 이승철 부회장은 2013년 정병철 전 부회장이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자리에 후임으로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이 부회장이 교체되기는커녕 오히려 승진한 배경에는 허 회장이 있다. 당시 허 회장은 이 부회장을 낙점한 후 회장단 동의를 구했다. 이승철 부회장은 1959년 12월 1일 생으로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후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입사해 1999년 전경련 지식경제센터 소장에 올랐고 2003년 경제조사본부장(상무), 2007년 전무를 거쳐 2013년 부회장에 올랐다. 부회장 승진 이후 이 부회장은 큰 위기 없이 자리를 지키며 지난해 연임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는 “재계에 허창수 회장은 얼굴마담이고 실제로는 이승철 부회장이 창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것으로 안다”며 “알게 모르게 이 부회장이 재계 지지를 많이 받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미르·K스포츠 재단 자금 출연에 대해 기업들의 자발적인 뜻이라고 주장해온 이 부회장은 지난 12일 국정감사에서 “수사 중인 사건이라 답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자 이 부회장의 답변 태도가 달라진 것으로 해석된다. 야당 측과 시민단체는 이 부회장의 태도를 문제 삼는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이 부회장의 태도는 버티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해보겠다는 속셈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그렇게 해서 전경련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고 전했다. 또 이 부회장이 답변을 회피하는 이유는 정치권과 관계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김관영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이 부회장의 무성의한 태도는 스스로 현 정부의 하수인임을 자인하는 것”이라며 “전경련은 하자 있는 제품과 다름없으며 국민의당은 전경련 해체를 위해 가능한 당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연임에 성공한 이 부회장의 3연임에 대해서는 아직 언급되지 않는다. 반대로 조기 경질 가능성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