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툰상’(2000만 원)에는 박정호 작가의 <6인용 게임>이 선정됐으며, 3편을 선정하는 ‘우수상(각 1000만 원)’에는 전세훈 작가의 <경매전쟁>, 임성훈 작가의 <여행만담>이 이름을 올렸다. 이상경 작가의 <공백의 묘수>는 광주정보문화사업진흥원 2016년 문화콘텐츠 기획창작스튜디오 지원사업 선정으로 수상에서 제외됐다. 각 수상자들의 인터뷰와 최종심 심사평을 싣는다.
제6회 일요신문 만화공모전 대상 수상자 황준영 작가.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성경에 ‘힌놈의 골짜기’라는 곳이 나온다. 예루살렘 남서쪽에 위치한 이곳은 인신 공양 제사가 벌어졌기 때문에 ‘살육의 골짜기’라고도 불렸다. 늘 쓰레기를 태우거나 인신 공양 제사를 위한 제단에서 불이 솟구쳤기 때문에 지옥과도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일요신문 만화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황준영 작가의 작품이 바로 이 ‘힌놈의 골짜기’에서 착안한 <힌놈의 낭떠러지>다. 현역 대학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대학이라는 작은 사회가 사람을 극한으로 모는 낭떠러지 같다고 생각했다.
“힌놈의 골짜기를 지옥이라고도 하잖아요. 학자금 대출에 짓눌려서 제대로 졸업하지 못하는 학부생, 학위를 얻기 위해 교수들의 정치판에 여기저기 눈치 싸움해야 하는 대학원생, 그리고 학기마다 계약 연장을 걱정해야 하는 시간 강사까지 한번만 삐끗해도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는 사람들이에요. 대학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의 절망과 고뇌가 뒤섞이는 걸 보고 현실의 지옥, ‘힌놈의 낭떠러지’ 같다고 생각해 제목을 짓게 됐죠.”
그는 강사인 자신의 처지를 “하루살이 같다”고 표현했다. 2년 이상 한 학교에 머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학기마다 신규 계약을 체결하거나 갱신하다 보니 한 학기가 끝날 때쯤이면 “이 학교에 계속 남을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먼저 들었다고 했다. 그의 작품 <힌놈의 낭떠러지>에는 이처럼 강사로서 그가 대학 내에서 겪어야 했던 어려움과, 또 다른 ‘하루살이’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교수들의 정치 싸움에 휘말리는 대학원생과 조교들이다.
<힌놈의 낭떠러지>는 ‘호러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다. 대학 사회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부조리들이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작가는 픽션이라고 말하지만 누가 봐도 수긍할 수 있는 스토리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현실적인 얘기를 다뤘다는 말이 된다.
실제로 그는 강사 생활을 하며 만난 전현직 대학원생과 조교들의 경험담을 작품에 녹여냈다. 교수가 대학원생의 논문 소재를 훔쳐 자신의 논문에 이용하고, 자신의 뜻에 어긋나는 조교는 강제로 그만두도록 한다. 비교적 정의감을 잃지 않은 교수가 이를 막아보려고 애쓰지만 학내에서 세력이 약하기에 오히려 고립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유령이 나오는 공포 분위기 속에서도 현실감을 잃지 않는 이유는 여기서 기인한다.
“커다란 부조리가 아니라 대학처럼 폐쇄적이고 작은 사회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소소한 부조리들을 날것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의 주력 장르는 ‘호러’와 ‘스릴러’다. 러브 코미디나 개그 장르가 시기를 막론하고 선호되고 있는 요즘, 여름철 특화 장르를 밀면서 부담감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장르가 장르인 만큼 다른 공모전에서 몇 번의 고배를 마셨던 그는 ‘제6회 일요신문 만화공모전’을 앞두고도 고민을 거듭했다고 말했다. 만화를 업으로 삼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으로 어느덧 나이가 차 서른을 넘어가자 걱정이 늘어가는 부모님을 보며 점점 자신감이 떨어져만 갔다.
올해 초 부모님과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올해 안에 데뷔를 하지 못하면 평범하게 회사에 취직하기로. 웹툰이라는 이름으로 만화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금방이라도 ‘만화가’로 이름을 날릴 것 같은 희망이 차올랐다. 그러나 희망은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사그라졌다. 9월이 되자 초조함은 극에 달했다. “안 될 놈은 안 되나 보다” 포기를 앞두고 있을 때 <일요신문>으로부터 1차 본선 합격 전화를 받았다.
“1차 합격 명단을 보니까 다들 프로 작가님들이더라고요. 자신이 있었을 리가 있나요. 그랬는데 한 3화 정도 그려보니까 ‘이 정도면 최소한 2등은 하겠는데?’라는 조금 건방진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림과 스토리가 1화보다 훨씬 나아진 게 제 눈으로도 보였거든요. 그런데 막상 대상을 수상했다는 연락을 받으니까 멍하더라고요. 얼른 정신 차리고 부모님께 제일 먼저 연락드렸죠. 다들 저를 보는 눈초리가 달라지던데요. 살면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1등을 이제 와서 하게 되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좋은 작품으로 성장하는 작가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독자들과 함께 공감하고 싶습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탑툰상’ <6인용 게임> 박정호 “또 한번의 기쁨이 ‘훅’처럼 들어와” 두 번째 수상이라 감흥이 없을 줄 알았는데 기쁨은 시간차를 두고 ‘훅’처럼 들어왔다. 지난 제3회 일요신문 만화공모전에서 장편 만화 <스퀘어>로 우수상을 수상했던 박정호 작가는 3년 만에 ‘탑툰상’을 거머쥐었다. 지난 3회 우수상 상금이 500만 원에서 올해 ‘탑툰상’은 2000만 원이 주어진다. 기쁨도 4배, 부담도 4배가 된 셈이다. 제6회 일요신문 만화공모전 탑툰상 수상자 박정호 작가.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원래 펜으로 그리면서 연재를 하다가 2010년부터는 웹툰이라는 장르로 만화계 판도가 바뀌니까 타블렛(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용도의 기구)으로 작업을 해야 하잖아요. 쥐는 법도 몰랐어요. <일요신문> 공모전에 참여하면서 처음으로 사용법을 배운 거죠. 그전에는 일일이 사인펜으로 그림 그려서 스캐너로 복사해서 인터넷에 올리는 미련한 방식으로 작업했어요. 그래도 나이 먹기 전에 다시 한 번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공모전에 임하게 됐습니다.” 그의 작품 <6인용 게임>은 밀실 스릴러 장르다. 좁은 공간에서 발생하는 주인공들 간의 쫓고 쫓기는 심리 게임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그가 이제까지 그린 작품들 중 정통 스릴러물은 <6인용 게임>이 처음이다. “국내에서 이런 장르의 스토리 웹툰이 없지 않았나 싶어요. 이제까지 사람들이 건드리지 않은 장르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금은 생소한 소재와 내용을 가지고, 잘만 풀어내면 신선하면서도 완성도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시작했어요. 지난 3회 때는 스토리라는 개념을 잡지 못해서 내용이 중구난방이라는 지적을 많이 받았거든요. 이번에는 스토리를 제대로 풀어낼 수 있는 노하우를 가지고 시작했기 때문에 10대부터 40대 독자까지 만족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원] |
‘우수상’ <경매전쟁> 전세훈 “7~8년간 경매공부 매진했어요” 90년대 <아이큐 점프> <소년 챔프> 등 소년 만화 잡지를 한 번이라도 들춰본 사람이라면 작가 전세훈의 이름이 낯설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는 <소년챔프>에서 <노노보이>와 <슈팅>을 인기리에 연재했던 중견 작가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신인 작가의 마음으로 ‘일요신문 공모전’에 참가했다. 까마득한 후배들과 공모전을 통해 작품을 겨룬다는 게 어찌 보면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그는 오히려 “세상에 작품을 내보내기 위해서는 어떤 작가든 신인의 자세로 겸허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제6회 일요신문 만화공모전 우수상 수상자 전세훈 작가 드물게도 그의 작품은 ‘경매’를 다루고 있다. 그것도 ‘집’에 대한 경매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의식주(衣食住)라지만 이제까지 패션과 음식에 관한 웹툰은 많았어도 집을 주제로 한 것은 거의 없다시피했다. 그처럼 특이한 주제로 작품을 그리면서 그는 7, 8년간 경매 공부에 매진했다. 그 세계를 제대로 알기 전에는 시작조차 할 수 없다는 그 나름대로의 작품 철학 때문이었다. “사람이 희로애락을 느끼며 생활하고, 위안을 받기도 하는 공간이 바로 집인데 자본주의의 특성상 하루아침에 집을 빼앗고 뺏기는 상황이 계속 벌어집니다. 가족이 모이는 하나의 장소가 어느 날 사라지고 파괴되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게 바로 경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가족들의 상처, 치유를 그린 드라마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원] |
‘우수상’ <여행만담> 임성훈 “다큐멘터리 만화도 재미있을 수 있다” ‘물리치료사’와 ‘직업 군인’. 도무지 만화와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직업을 경험하고도 만화를 선택한 작가가 있다. 임성훈 작가는 나이 서른에야 만화의 길에 들어선 ‘늦깎이 만화가’다. 취미로만 그리던 만화에 대한 갈증이 결국 그를 일요신문 만화공모전까지 이끈 셈이다. 제6회 일요신문 만화공모전 우수상 수상자 임성훈 작가 ‘만담’이라는 제목처럼 이들은 30대 한국 남자라면 누구나 안고 있는 고민과 얘깃거리를 여행지라는 낯선 장소에서 풀어낸다. “어찌 보면 두 친구의 추억만으로 끝날 수 있었던 여행기에 지나지 않았죠. 그렇지만 단순히 추억이 아니라 이 사회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주인공이 30대, 남성,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독자층이 제한적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앞섰다. 여성들의 공감은 얻지 못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주제가 더 좋지 않을까. 여행 다큐멘터리 장르라는 소재가 가진 한계 역시 펜대를 잡고 있는 그의 손을 하루에도 수차례 멈추게 했다. “소재도, 등장인물도 선호할 수 있는 독자층이 한정돼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이 고민했어요. 하지만 <일요신문>이라는 매체는 충분히 상업적이지 않아도 작품 자체를 보고 심사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에 공모전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다큐멘터리 만화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연재를 통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원] |
[심사위원단 총평] <힌놈의 낭떠러지> 사회적 메시지·발전 가능성 호평 10월 11일 이현세 심사위원장(사진)을 포함한 네 명의 심사위원이 일요신문 회의실에서 만화공모전 최종심사를 했다.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제6회 일요신문 만화공모전은 서바이벌 방식을 통해 당선자를 가리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대상 서바이벌에 오른 다섯 작품은 지난 예심을 통해 개성과 완성도를 갖춘 수작들로 선정됐습니다. 이 작품들의 다음 회차 원고를 통해 작품의 기획, 이야기의 진행, 연재 능력 등을 다양하게 고려해 최종대상작을 선정했습니다. 먼저 대상에 선정된 <힌놈의 낭떠러지>는 이미지 구성에 다소 약점을 가지고 있으며 기초적인 데셍과 원고 구성의 미흡했음에도, 기획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메시지와 문제적 소재를 바라보는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과 만화적인 설정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또 공모전의 취지인 재능 있는 신인작가의 발굴이라는 점과 향후 발전 가능성이 높은 작품이라는 장점 역시 심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소재를 개성적인 색감과 묘사로 표현했습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인상적으로 표현해 소재에 긴장감을 불어넣어 작가의 재능에 큰 기대를 갖게 합니다. 탑툰상에 선정된 <6인용 게임>은 다소 미숙한 원고의 완성도에 비해 작가의 탁월한 스토리텔링능력이 눈길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범죄와 게임의 룰을 가진 스릴러장르를 능숙하게 소화해내는 작가의 이야기 전개 능력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다만, 그것을 표현하는 작가의 연출과 기본기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번 공모전 작품 가운데 가장 상업성이 높은 작품으로 평가를 받은 만큼 더 발전된 모습으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경매전쟁>은 흥미로운 소재와 탄탄한 기본기와 능숙한 전개를 갖춘 완성도 높은 작품입니다. 작가의 오랜 연륜에서 비롯된 작품의 안정감 역시 <경매전쟁>의 장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탄탄한 기본기와 안정감이 새롭게 다가오지 못한다는 점과 비슷한 느낌의 여러 작품들과 차별화된 요소가 없다는 점이 가장 아쉬운 부분입니다. <여행만담>의 경우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 여행기와 일상의 이야기를 잘 버무린 수작입니다. 다만 만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가 다소 정리되지 않고 전개되고 있다는 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작가의 스토리텔링능력과 일상을 표현하는 다양한 감성이 대단히 좋은 인상을 남긴 작품입니다. 전체적으로 다양한 소재와 기획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로 매우 능숙한 이야기 전개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작품의 장점과 단점이 뚜렷한 가운데 향후 작품의 성장 가능성과 한국만화 발전이라는 일요신문의 공익적 공모전 취지를 감안해 매우 근소한 차이로 각 작품의 우열을 가리게 되었습니다. 일요신문 만화공모전에 오랜 기간 열정을 바쳐 제작한 소중한 원고를 응모해 주신 작가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의 작품활동에 대해서도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내드립니다. 정리=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