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계 2위 그룹 총수인 정몽구 회장이 정말 검찰의 노림수를 몰랐을까.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사진은 대검청사. | ||
정보가 곧 생명으로 통하는 치열한 정보전쟁 속에서 산전수전을 겪어 온 재계 서열 2위 그룹의 수장인 정몽구 회장이 정말 검찰의 ‘노림수’를 사전에 전혀 알지 못했을까 라는 의문인 것이다.
현재까지 나타난 검찰과 현대차의 공방전에서 현대차가 일방적으로 당하는 모습을 보면 정 회장과 현대차가 전혀 예상치 못한 ‘저격탄’을 맞았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올 초부터 압수수색 직전까지 정 회장의 행보, 현대자동차 내부의 갑작스러운 분위기 변화에 관한 뒷얘기가 최근 하나둘씩 흘러나오면서 재계 일각에서는 검찰 수사와 정 회장의 대응을 다른 각도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 가장 큰 단서는 압수수색 직전 정 회장의 보인 묘한 행보다. 정 회장은 압수수색 직전 평소와는 다른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 측근들마저도 어리둥절했다는 후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주은 사장이 구속된 글로비스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있기 보름 전인 지난 3월 10일, 지난해 5월까지 대검 차장을 지냈던 김앤장의 이정수 변호사가 글로비스의 사외이사로 긴급히 선임된 점에 대해서도 재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올해 정 회장은 어떠한 악재가 생길 때마다 내부 체제 전환이나 혹은 외부 인사 영입 등으로 사태 수습에 나섰다
올해 초 정몽구-정의선 경영 승계 및 그룹 인사와 관련한 여러 악재가 불거지자 정 회장은 즉시 비상경영체제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특히 대내외 경영 환경 및 정보 분석과 대응책 마련, 그리고 감사실 기능을 강화하면서 흐트러진 그룹 내 분위기를 정비하는데 주력했다.
지난 2월 현대차가 하청업체 납품 단가 인하 계획을 발표하면서 여론이 악화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산업자원부와 공정위가 현대차에 대한 집중 견제 의지를 보이자 정 회장은 내부적으로 공정위 부위원장 출신의 조학국 법무법인 광장 고문을 사외이사로 영입하고 박병일 전 서울지방국세청 조사 2국장과 공정위 산하 약관심사자문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는 김광년 전 서울지법 부장판사를 사외이사로 연임시켜 대응 태세를 취했다.
이러한 전례로 볼 때 이 변호사 영입도 글로비스의 중대한 문제가 불거진 것을 대비하기 위한 포석일 수 있다는 게 재계 일각의 관측이다.
나아가 이 변호사 영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검찰의 대대적인 압수수색과 수사가 본격화되는 일련의 상황이 벌어진 것과 관련, 현대차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 변호사가 글로비스를 비롯한 현대차의 수사 수위를 놓고 사전에 검찰과 정 회장 사이를 오갔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까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는 형편이다.
해석과 추측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지난 3월24일 중국 출장에서 귀국한 후의 정 회장 행보 또한 묘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현대차 주변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 회장은 귀국한 금요일 저녁 일부 임원들과 과음을 했으며 다음날 중국 공장 오픈 등과 관련한 중요 업무보고를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저 보통의 술자리였는지 아니면 특별한 의미의 술자리였는지 각기 다른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정 회장의 행보와 맞물려 검찰이 압수수색 과정에서 정 회장 집무실만을 유일하게 수색하지 않은 점도 여러 가지 추측을 부르고 있다. 검찰은 현대차 압수수색 직후 “정 회장 집무실은 외부인이 작동할 수 없는 전자장치로 잠겨 있어서 수색하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재계 일각은 물론 현대차 내부 인사들도 검찰의 태도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위기다. 비자금 금고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더구나 정 회장 집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까지 챙겨온 검찰이 전자장치를 이유로 정 회장 집무실을 수색하지 못했다는 것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라는 것.
더구나 정 회장이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검찰의 수사가 경영 승계로 방향을 튼 것도 사실 어느 것이 원인이고 어느 것이 결과인지 정확히 알기 힘들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정 회장은 검찰 수사의 끝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검찰의 예상치 못한 저격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것일까. 정 회장 귀국 후 검찰의 수사 방향에 온통 재계의 관심이 쏠려 있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