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후보는 대학원 1년 때인 84년 사시 26회에 합격했다. 원칙상으로는 사법연수원 16기를 수료해야 맞지만 그는 동기들보다 1년 늦은 17기로 수료했다. 오 후보는 연수원 수료 이후 곧바로 변호사 개업을 했다. 많은 이들은 이 부분에서 “왜 판·검사의 길을 택하지 않고 변호사를 바로 선택했는가” 궁금해 한다.
이에 대해 오 후보는 이런 비화를 밝힌 바 있다. 대학시절부터 소문난 캠퍼스 커플로 일찌감치 결혼했던 오 후보는 연수원 시절 동갑내기 부인 송현옥 씨가 도시락으로 싸준 콩비지찌개를 먹고 그만 탈이 나 버렸다는 것. 때마침 그날은 전반기 시험 기간이었다. 결국 병원 신세를 지게 된 그는 결시 처리가 되어 버렸고 1년 유급을 당해야 했다고 한다. 이후부터 그는 콩을 먹지 않게 됐다고 한다.
결국 오 후보는 군 복무 후 91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그야말로 ‘초짜 변호사’였던 시절 오 전 의원의 인생 항로를 뒤바꿀 만한 큰 소송 사건을 맡게 된다. 바로 인천 부평 아파트 일조권 재판이었다.
이 재판으로 오 후보는 일약 유명세를 탔고 환경전문변호사로 자신의 입지를 굳히게 됐다. 이후 그는 대한변협 환경문제연구위원, 환경운동연합 법률위원장, 민변 환경위원 등을 맡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오늘날 오 후보의 대중적 이미지가 형성된 것은 방송 출연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그의 핸섬한 외모와 차분하고 설득력 있는 언변이 큰 역할을 했다. 오 후보가 일조권 승소로 당시 MBC 뉴스에 출연해 손석희 앵커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한 PD가 눈여겨보고 그에게 방송 출연을 제의한 것.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 94년 ‘오 변호사, 배 변호사’였다. 이후 96년 SBS ‘뉴스 따라잡기’, ‘그것이 알고싶다’, 98년 ‘갑론을박 동서남북’, 99년 ‘오늘과 내일’ 등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대중적 스타로서의 이미지를 굳혔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