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에서 물러나는 조범현 감독(왼쪽)과 새로운 사령탑으로 부임하는 김진욱 해설위원.
kt 위즈와 SK 와이번스는 올해를 끝으로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조범현(kt), 김용희(SK) 감독과 12일 이별을 발표했고, 14일 kt는 김진욱 해설위원을 새로운 사령탑에 선임했다고 밝혔다. 삼성 라이온즈는 류중일 감독과 재계약하기로 방향을 정했지만 한화 이글스의 김성근, 롯데 자이언츠의 조원우 감독의 거취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일요신문>에선 화제를 모으고 있는 감독 거취와 관련 야구계에서 나돌고 있는 뒷얘기를 취재했다.
성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감독이라면 구단은 교체 카드로 분위기 쇄신을 꾀할 수 있다. 그러나 kt가 초대 사령탑인 조범현 감독과 헤어지는 과정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조 감독은 지난 7월까지만 해도 재계약이 유력했다. 구단으로부터 재계약 관련해 구두 언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김준교 대표가 조 감독에게 “축하한다”는 인사도 건넸다고 한다. 조 감독도 안심하고 시즌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올 시즌 kt는 유독 불미스런 일들을 많이 겪었다. 지난가을 KBO리그를 충격에 빠트렸던 장성우 사건을 시작으로 시즌 초 오정복의 음주운전 사건, 김상현의 불미스런 일들이 계속되면서 구단 안팎으로 자성의 목소리가 크게 대두됐다. 구단은 특히 김상현 사건을 크게 받아들였고, 이로 인해 조 감독과의 재계약에 회의적인 시각이 대두되면서 재계약 발표를 차일피일 미룰 수밖에 없었다. 해설위원 A 씨의 설명이다.
“구단이 조 감독과의 재계약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으면서 조 감독이 신경이 예민해졌던 게 사실이다. 구단이 발표를 미룬다는 건 어떤 문제가 있다는 뜻이고, 그 문제라는 건 조 감독의 입지에 변화를 의미하는 게 아니겠나. 조 감독은 기자들이 재계약에 대해 물어올 때마다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는 상황을 답답해했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고 팀을 끝까지 잘 이끌어가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렇게 정리되는 걸 보니 안타깝기만 하다.”
감독이 성적에 최종적인 책임을 지는 자리인 건 맞지만 kt 구단 자체도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 얇은 선수층은 물론 구단 지원이 줄어든 상태에서 조 감독이 해볼 수 있는 카드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NC 다이노스가 이호준, 이종욱, 손시헌을 동시 영입하며 베테랑들의 저력을 발휘했던 것과 달리 kt는 박기혁, 박경수, 김사율을 택했고 올 시즌을 앞두고선 유한준만 보강했다.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면서도 100만 달러 이상을 쓴 사례가 없다. 이미 kt를 떠난 조 감독으로선 뭔가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팀을 떠난다는 아쉬움이 짙게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kt가 조범현 감독과의 이별을 공식화했을 때 SK 와이번스도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김용희 감독과 재계약 불가 방침을 발표했다. 김 감독은 2014년 이만수 전 감독의 후임으로 2년 계약을 맺고 SK의 지휘봉을 잡았다. ‘야구계의 신사’란 별명처럼 인자한 성품으로 야구계에서 신망이 두터웠던 그이지만 오히려 이런 성품이 승부사로서의 기질에 방해 요인이란 지적도 있었다.
SK를 떠나는 김용희 감독.
“SK는 소문이든 사실이든 관계없이 감독 교체설이 나돌았던 데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았다. 그런 부분이 김용희 감독에게 더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더욱이 SK가 관심을 두고 있는 감독이 염경엽 감독이란 소문이 크게 번지면서 염 감독도 자신을 흔들지 마라며 감정을 노출했고, 이런 부분을 김 감독은 조용히 지켜봐야만 했다. 자존심에 크게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령탑으로서 보여준 김 감독의 공과를 따지기 전에 구단이 김 감독에게 보인 행동은 비매너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KBO리그 두 감독이 동시에 현장을 떠난 상황에서 가장 발 빠르게 대처한 구단은 kt였다. kt는 14일, 김진욱 스카이스포츠 해설위원을 2대 감독으로 선임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김진욱 해설위원이 kt 사령탑에 내정됐다는 기사는 이틀 전에 이미 한 매체에 의해 단독 보도가 됐었다. 당시 kt는 김진욱 해설위원이 여러 감독 후보자들 중 한 사람인 것은 맞지만 아직 최종적으로 결정된 건 아니라며 일단 부인했었다. 복수의 후보를 검토한 뒤 후임 감독을 선택한다는 게 kt의 입장이었다.
김진욱 감독은 11일 밤 kt의 김준교 사장으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12일 낮 김 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감독직 제안을 받았고, 그날 밤 다시 구단 관계자와 만나 최종 수락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임 감독과의 이별과 새로운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혼란스런 상황이 야기된 데 대해 해설위원 B 씨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kt는 내부적으로 조범현 감독과의 결별을 확정 지은 후 여러 후보군을 놓고 고심했었다. 그러다 김진욱 해설위원으로 가닥을 잡은 가운데 조심스럽게 접촉했던 것으로 안다. 이 부분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구단과 김진욱 해설위원이 난처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조범현 감독의 재계약 불가 방침이 공식 발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부분을 조 감독이 받아들였다. 이미 마음을 비우고 있었기 때문에 형식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김진욱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창단 후 3년 동안 팀을 잘 이끌어 주신 조범현 감독의 노고에 감사드린다”며 전임 감독에 대한 예우를 나타냈다.
김성근 한화 감독.
“한화는 전통적으로 감독 선임과 경질에 그룹 최고위층의 입김이 강하게 반영됐었다. 그런 점에서 그룹 최고위층은 김성근 감독을 여전히 신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즌 내내 선수들 혹사 논란과 선수 부상 관리 미흡, 외국인선수의 활용 실패 등 논란의 중심에 있었고, 팬들도 노골적으로 김 감독을 외면하고 있지만 그룹 최고위층에선 이런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김 감독에 대한 짝사랑을 거두지 않고 있다. 우리도 답답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만약 김성근 감독이 내년 시즌에도 한화를 이끌어 간다면 구단은 팬들의 거센 항의에 직면해야할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김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는 단체 행동이 벌어지고 있고 각종 온라인 게시판에도 김 감독의 지도력을 성토하는 내용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임으로 결정된다면 어떤 반응이 나타날지 불을 보듯 뻔하다. 기자와 얘기를 나눈 구단 관계자도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을 우려했다. 결정권이 없는 구단으로선 그룹 최고위층의 최종 결심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NC 다이노스 김경문 감독의 재계약 여부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신생팀 초대 감독으로 NC 사령탑에 부임 후 짧은 기간 안에 팀을 강팀으로 끌어 올렸지만 구단은 김 감독에게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대하고 있다.
김경문 NC 감독.
NC는 2014년 1월, 계약 기간이 1년 더 남은 김경문 감독과 이례적으로 3년 재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김 감독이 팀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도록 계약을 앞당겨 연장했다는 게 당시 구단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계약 기간 종료를 앞둔 상태에서도 재계약 여부를 확정짓지 않고 있다. 겉으론 포스트시즌 이후에 논의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올 시즌 잇단 악재가 터진 상황에서 김 감독도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대두되고 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해설위원 출신 감독 ‘TV에선 홈런…그라운드서도 부탁해요’ 오타니 쇼헤이가 소속된 니혼햄 파이터스의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은 1991년부터 2011년까지 야구 해설가와 스포츠 캐스터로 활동했다. TV아사히를 비롯해 스포츠닛폰의 전속 야구 평론가 외에도 모교인 도쿄학예대학에서 강의를 맡아 유소년 야구 보급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LG 양상문 감독과 kt 신임 감독으로 선임된 김진욱 감독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방송사 프로야구 해설위원 출신이란 사실이다. 양상문 감독은 해설위원 시절 팬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학구파’란 소문답게 경기 상황을 정확히 짚고 분석해내는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김진욱 감독은 약간의 사투리를 섞은 억양에다 선수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객관적인 시각의 해설로 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가 kt 감독에 선임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팬들은 관련 기사의 댓글에 ‘감독이 된 것은 축하할 일이지만 좋은 해설자를 잃었다는 사실은 매우 가슴 아프다’는 내용의 글들로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야구 해설위원들은 현장에서 구단 관계자와 대면할 기회가 많다. 해설위원 신분으로 야구에 대한 얘기를 나눌 수 있고, 구단의 상황과 분위기를 파악하는 과정이 자연스럽다. 무엇보다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자신의 감독 시절을 반추하고 현장에서 경험한 객관적인 시각을 자신만의 야구에 대입시키기 때문에 일반 선수 출신이나 코치들과는 깊이가 다른 해설이 가능하다. 감독에서 해설위원을 맡다가 코치로 복귀한 다음에 다시 해설위원으로 돌아온 이순철 SBS 해설위원이 야구팬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지도자로서 다양한 경험이 묻어나는 깊이 있는 해설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진욱 감독의 kt 사령탑 선임 소식이 알려진 날, 스카이스포츠의 캐스터이자 김 감독과 2년 동안 캐스터와 해설위원으로 찰떡궁합을 보인 임용수 캐스터가 자신의 SNS에다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해설을 통해 보여주신 지도자의 철학과 소신, 선수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들…. 지난 2년간의 방송을 통해 감독 김진욱이 앞으로 보여줄 야구를 미리 맛보았습니다. 승패도 중요하지만 존중과 배려의 야구를 보여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전 언제나 캐스터의 자리에서 감독님과 다시 함께 하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