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 박사의 친일행적에 대한 본격적인 논란은 지난 2003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이 국립중앙박물관장(차관급으로 승격)에 이 박사의 손자인 이건무 씨(이장무 교수의 동생)를 임명하면서 시작됐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친일 잔재 청산에 강한 의욕을 보여왔던 현 정권에서 두 손자가 잇따라 나란히 중책을 맡게 되는 아이러니가 일어나고 있다. 현 정권의 무원칙과 무소신을 드러내고 있는 증거”라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2005년 8월 공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상 1차 명단 자료에 따르면 이 박사는 무려 13년(1925~1938) 동안 조선사편수회에 몸담은 전력이 드러났다. 이 박사가 국사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27년경 조선총독부 중추원 산하에 조직된 ‘조선사편수회’에서 식민사가 이마니시의 수사관보라는 직함을 맡게 되면서부터. 이마니시, 아나바 박사 그리고 편수회 고문으로 있었던 구로이타 박사 등과 인연을 맺으면서 그는 그들의 사학적 분석 방법과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게 됐다.
이 박사는 와세다대 유학 시절 사학과 교수였던 이케우치 박사의 추천을 받아 촉탁으로 근무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초기에 촉탁으로 근무하던 그가 이마니시의 수사관보로 승격한 것은 그의 지위와 영향력, 편수회에서의 기여도를 충분히 짐작케 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적잖은 논란이 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를 들어 일각에서는 “이 박사는 조선사편수회에서 수사관보로 근무하면서 익힌 식민사관에 근거해 단군조선의 역사를 부정했으며,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를 왜곡했다”며 “친일사학자의 손자인 이 후보를 서울대 총장으로 임명할 경우 친일 잔재청산을 위한 객관적 판단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 후보의 서울대 총장 임명 제청이 더욱 논란이 되는 이유는 그의 가족사와도 큰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 박사 자손들의 프로필을 살펴보면 유독 서울대 출신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박사의 5남 중 무려 3명이 서울대 교수로 재직했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그중 차남인 이춘녕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명예교수가 이 후보의 아버지다. 이 명예교수의 두 아들인 이 후보와 이건무 관장 역시 각각 기계공학과 고고인류학을 전공한 서울대 출신이다.
한국을 움직이는 대표적인 집단으로 꼽히는 서울대에서 이 후보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인맥파워 역시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후보가 총장으로 임명될 경우 그 파워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막강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조부의 행적 논란을 빌미로 그 후손의 책임까지 물을 수는 없다는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박한용 연구실장은 “이 박사가 조선총독부 산하에 직속으로 설치된 조선사편수회에서 수사관보로 근무했다는 것은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으로 식민사학에 입각해 역사를 왜곡한 점은 반드시 지적해야 할 부분”이라면서도 “하지만 조부 때의 친일행적 논란이 그 후손의 인사문제에까지 개입하게 되는 것은 현대판 연좌제나 다름없는 것으로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수향 기자 lsh@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