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 총장 후보로 최종 선출된 이장무 공대 교수. 지난 5월 11일 결선투표 당시 서울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모습이다. 이 교수는 공대학장 시절 ‘이공계 살리기’를 이끄는 등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최근 조부 이병도 박사의 친일논란이 불거지면서 부담을 주고 있다. 연 | ||
이 후보가 친일 사학자로 알려진 고 이병도 박사의 손자라는 점이 불거지면서 서울대 총장 임명을 둘러싼 격렬한 논란이 빚어지고 있지만 서울대와 교육부는 일견 흔들림 없이 이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서울대 교내 선거에서 1위를 차지했고, 교육부에서도 그의 임명제청안을 청와대에 올리는 등 사실상 총장이 확실시되고 있다.
정운찬 총장 역시 “이미 서울대 구성원이 이 후보 조부의 친일 행적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선거를 치렀음을 감안할 때 이를 문제삼아 임명을 반대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며 지지 의사를 분명히하고 있다. 이처럼 조부의 친일 행각으로 인한 외풍이 거세지만 서울대 내부에서는 이 후보가 총장으로서의 자질을 갖췄다는 평을 받고 있는 분위기다.
치열한 선거전은 의외의 부분에서 승패가 판가름났다. 지난 5월 11일에 진행된 서울대 총장후보 선거 결선투표에서 524.7표를 얻은 이장무 후보가 490.4표를 획득한 조동성 경영대 교수를 제치며 최다득표자가 됐다. 박빙의 승부 끝에 이 후보가 34.3표 차이로 최다득표자가 된 결정적 원인은 교직원들의 몰표였다. 그동안 교수들만 총장 선거에 참여해온 서울대는 이번 선거를 앞두고 학칙을 개정해 행정직 직원에게 1인당 0.1표의 투표권을 줬다. 그 결과 교수를 대상으로 한 선거에서 단 4표만을 앞선 이 후보는 교직원 대상 선거에서 30.4표(304명 지지)를 얻어 최다득표자가 됐다.
이번 선거는 서울대의 반 정부 성향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 총장 체제에서 서울대는 현 정부와 눈에 띄는 대립각을 세웠다. 공교롭게도 두 명의 후보 가운데 이 후보는 정 총장의 지지를 받았고, 조 교수는 친여 성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 총장 선거에 어느 때보다 관심이 집중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직원들이 안정지향적 성향으로 분류되는 이 후보와 개혁적인 성향의 조 교수 가운데 이 후보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또한 정부와의 대화를 통한 교직원 승진기회 확대, 교직원 아파트 500가구 추가 건립, 교직원 휴양소 활성화 및 신설 등의 공약도 승리의 원동력이 됐다.
이 후보가 서울대 내부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서울대 공대학장으로 지내며 선보인 뛰어난 행정능력에 있다. 이 후보는 서울대 공대학장 재임 당시 산학연 체제를 도입해 현장교육을 강화하고 대학원 중심대학으로 키우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고교생의 이공계 기피현상, 졸업생 취업 문제 등으로 위기에 처한 이공계를 살리기 위한 적극적인 행보를 선보이기도 했다. 서울대 공대 출신 교수와 기업 CEO들을 대상으로 한 장학금 모금운동과 동시에 ‘동문 1인당 1계좌 갖기’ 캠페인을 벌인 것. 당시 이 후보는 “이공계 진학률이 매년 떨어지는 상황에서 우수 학생을 유치하자는 뜻에서 구상한 것”이라 밝힌 바 있다.
▲ 이장무 교수의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지난 2000년 산학연 협력 협약 조인식 사진. 맨 왼쪽이 이 교수로 공대학장 시절 그는 뛰어난 행정능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 ||
공대학장 시절 위기에 처한 이공계를 살리기 위해 장학금 모금 운동을 펼쳤듯이 이 후보는 총장으로 임명되면 발전기금 3000억 원을 모금하겠다는 공약을 밝혔다. “총장이나 보직교수가 모금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동창회 네트워크를 활용한 조직적인 모금활동에 나설 생각”이라는 이 후보는 “기업과 연계해 기술개발과 지적 교류를 확대해 기업기부금을 대폭 확충할 계획”이라 밝혔다.
이 후보가 산학연 체제를 도입, 서울대 공대 출신 CEO들을 대상으로 하는 장학금 모금운동, 기업 연계 기술개발 및 지적 교류 확대 등을 강조하고, 또 상당한 성과를 얻어낸 데에는 그의 기업체에 뻗어있는 탄탄한 인맥에 기인한 바가 크다.
삼성종합기술원장을 지낸 손욱 삼성SDI 상담역, 김유채 전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정영근 휴먼텍코리아 사장 등이 이 후보의 서울대 기계공학과 63학번 동기들이다. 또한 윤종용 삼성전자 대표이사부회장(서울대 전자공학과 62학번), 여종기 LG화학 사장(서울대 화학공학과 65학번) 등과도 친분이 두터운 편으로 알려졌다.
특히 삼성그룹과 인연이 남다르다. 이 후보는 현재 ‘삼성 이건희 장학재단’에서 이사직을 맡고 있다. 지난 2002년 재단 설립 당시 6명의 초대 이사진 가운데 한 명으로 참여해 지금까지 이사직을 유지하고 있다.
이 후보가 서울대 총장으로 임명될 경우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정부와 어떤 관계를 유지할지다. 전임자인 정운찬 총장이 재임 당시 정부와 상당한 마찰음을 빚어낸 바 있기 때문이다. 이 후보의 기본적인 입장은 “정 총장이 잘한 부분을 모두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정 부분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까닭에 깜짝 인사를 즐기는 노무현 대통령이 총장 선거 최다득표자가 총장으로 임명되는 관례를 뒤엎고 차점자인 조동성 교수를 낙점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됐다. 서울대 주변에서는 “이 후보 조부의 친일행각 논란을 일부러 부추기는 세력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런 추측은 거의 신빙성이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소문과 달리 현 정부가 이 후보에 상당히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 왔기 때문. 우선 이 후보는 현 정부 출범 당시 첫 내각에 과학기술부 장관으로 기용될 뻔했던 인연이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의 인사추천위에서 부처 장관별로 압축한 5배수 후보군에 이 후보도 이름을 올렸던 것.
또한 지난 2004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산하에 과학기술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기술혁신특별위원회를 구성할 당시 이 후보는 민간위원으로 참여한 바 있다.
서울대 내부에서도 이 후보가 무색무취한 정치색을 갖고 있어 정 총장 만큼 극단적인 대결양상을 보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또한 총장 선거 과정에서 이 후보는 ‘설득’과 ‘협의’를 강조하며 우회적이나마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곤 했다.
따라서 총장 임명 과정에도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를 임명제청한 교육부 역시 “인사위원회 심의 결과 이 교수 조부의 행적이 총장 임명의 큰 결격사유가 되지 않고 총장직 수행에도 문제가 없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여 임명을 제청하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