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6일 성북을 보궐선거 당선이 확정된 조순형 민주당 의원이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축하받고 있다. | ||
“저는 이제 민주당의 열두 번째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열두 척의 전선으로 삼백여 척의 왜군을 무찔러 나라를 구해냈습니다. 저는 나라를 구하는 열두 번째 전선이 되겠습니다.”
“왕조시대에 임금에게 직언을 했다가 유배된 뒤 해제되어 돌아온 선비의 심정입니다.”
지난 2004년 민주당 대표 시절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소추에 앞장서 엄청난 역풍을 맞고 이어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에서 출마했다가 낙선한 바 있는 그이기에 가슴 속에는 온갖 소회가 회오리쳤을 것이 분명하다.
과연 향후 조순형 의원의 행보는 어떻게 흘러갈까. ‘탄핵주역’이라는 타이틀에 이어 자신의 정치인생에 또 다른 획을 긋게 된 조순형 의원. 정국의 또 다른 핵으로 부상한 ‘미스터 쓴소리’ 조순형 의원을 만나 1시간 반여 동안 인터뷰를 나누었다.
7월 28일 오후 조순형 의원은 약속시간을 정확히 맞추어 나타났다. 빠듯한 유세일정을 거친 이후 다시 당선되자마자 연일 이어지는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내내 강행군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곁에 있던 보좌관과 다음 날 스케줄을 상의하던 조순형 의원은 보좌관에게 먼저 돌아가라고 ‘배려’한 뒤에야 기자에게 말문을 열었다.
“선거 하루 전 유세현장에 느꼈던 분위기로는 당선에 대해 낙관적인 입장이었던 것 같았다”는 말을 건네자 조 의원은 “잘 보신 거다.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고 당시 당내 분위기도 그러했다”고 전했다.
―선거 2~3주 전까지만 해도 지지율이 상대후보에 비해 한참 낮았는데 좋은 결과를 예상했나.
▲당보다는 후보자에 대한 평가가 앞섰던 것이라고 본다. 또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심판의 결과일 것이다. 또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터진 한나라당의 수해골프 파문, 호남비하 발언 등도 유권자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본다.
조순형 의원의 승리에 대해선 여러 가지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 그 중에서도 조 의원과 민주당이 꼽는 가장 큰 ‘성과’는 ‘탄핵의 중심’에 서 있던 그가 다시 ‘정개개편의 핵’으로 등장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조 의원은 지난 2004년 자신이 앞장서 벌였던 노무현 대통령 탄핵운동에 대해 현재 어떤 소회를 갖고 있을까.
―당시 노 대통령 탄핵에 대해 후회가 든 적은 없나. 국민 역풍도 심해 괴로움도 많았을 것 같다.
▲물론 괴로운 순간도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사람이 아니겠지…. 다만 내가 마음의 정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국회활동을 하면서 아무런 미련 없이 최선을 다했다는 것에 있다. 다섯 번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내가 이대로 정계에서 은퇴한다고 해도 충분히 할 일을 했다는 생각이었다. 다만 한 가지, 당시 탄핵에 참여했던 동지들 모두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지만 이후에 그 젊은 친구들이 탄핵역풍으로 인해 국회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 괴로웠다.
―이번 당선으로 탄핵의 정당성을 인정받았다는 평가에 대해 열린우리당 측에서는 부정하고 있다.
▲그에 대해선 아무렇지도 않다. 어떤 현상에 대해 각자가 자기 입장에서 해석하는 것 아닌가.
―현 정부에 대한 국민여론이 좋지 않다. 앞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변화가 있으리라고 보는가.
▲물론 이제라도 반성하고 변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김병준 교육부총리 청문회만 봐도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감싸는 데 급급한 것을 봐라. 노 대통령 앞에서 용기 있게 직언하는 이들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과 만날 기회가 생긴다면 어떤 얘기를 건네고 싶나.
▲할 말이 많다.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까 잘못을 인정하고 국정운영을 제대로 하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금 아집과 독선에 빠져 누구의 얘기도 듣지 않으려고 한다. 그건 남들과 대립하는 리더십이다. 관용의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현재로선 역사에 실패한 대통령으로 남게 되는 것 아닌가. 내가 탄핵 1주년 되었을 때 성명서를 낸 바 있다. 남은 임기 동안이라도 제대로 해달라는 주문이었다. 선거를 앞두고는 누구나 조마조마해 하면서 ‘내가 당선만 되면 세비도 안 받고 일 하겠다’는 각오를 한다. 하지만 정작 당선되고 나면 작심삼일이 되고 만다. 내가 될 만하니까 됐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조 의원은 유세 중에 한 식당에서 만난 주민에게 건넨 ‘말실수’가 기억에 남는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는 그 주민은 조 의원에게 “살기가 너무 힘들다. 이 상황이 언제쯤 바뀌겠느냐”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조 의원은 “노무현 정권 끝나야 됩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돌아 나오면서 후회가 컸다는 것. 그는 “그분들께는 하루하루가 고달픈데 1년 반이 지나야 한다고 얘기했으니 얼마나 낙담했겠느냐”고 털어놓기도 했다.
▲ 지난 28일 <일요신문>과의 인터뷰.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나는 당권에는 아무런 관심도 욕심이 없다. 어쨌든 다음 전당대회까지는 한화갑 대표를 도와 일할 것이다. 민주당이 이제 12석이 되었다. 한나라당은 관광버스 몇 대를 동원해야겠지만 민주당은 봉고차 한 대에도 다 탈 수 있을 정도 아닌가. 그 조그만 정당 내에서 당권 싸움을 벌인다면 국민들이 어떻게 보겠는가. 그래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동안 민주당이 침체되어 있었는데 이제서야 열린우리당, 한나라당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가 되었다. 신문 보도에도 같은 비중으로 다루더라. 그 전까지는 한쪽 귀퉁이에도 나올까 말까 하게 소개를 하던데(웃음). 오늘 점심에 지구당 의원들이 모두 모여 식사를 했는데 어떤 분들은 ‘축하한다’는 휴대폰 메시지를 200통 받았다고 하더라. 나로 인해 이런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 다행스럽다. 작지만 강한 야당을 만들어 가겠다. 지금의 한나라당에겐 투지가 없다.
―여당 탈당 세력이 생긴다면 그들과의 통합은 가능하다고 보는가.
▲개인이 당을 나와 들어오겠다고 해서 그냥 받아줄 수는 없는 일이다. 예를 들어 기본적으로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데 민주당은 반대 입장이다. 그 외 대북 정책이나 외교 안보문제, 교육정책, 경제정책 등 모든 부분에 대해 합치가 이루어진 다음에야 정개개편을 논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선거 때문에 분당, 탈당을 한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부도덕한 행동이다.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노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탈당하는 것이 도리라고 본다. 자신이야 대통령직을 떠나 고향으로 내려가면 그만이지만 남은 의원들은 무슨 잘못인가. 자신을 따라주었던 이들의 미래를 생각해서 놔주어야 한다고 본다. 나라면 그렇게 할 것이다.
원내 의석이 12석에 불과한 민주당 당세로 볼 때 대선국면에선 연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독자 대선후보를 내지 못하더라도 일정한 역할은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권 주자 중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는 고건 전 총리와의 ‘연대’ 가능성도 주목되는 부분.
조순형 의원 측의 한 인사는 “한동안 국회를 떠나 있었기 때문에 지금 당장 무언가를 얘기하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곁에서 지켜보기에 조 의원의 마음 속엔 무언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 인사의 말을 들어보면 고건 전 총리가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선다면 상황은 급진전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고건 전 총리와의 향후 관계는 어떻게 되리라고 보나.
▲고건 전 총리는 기본적으로 신뢰를 주는 인물이고 유력한 대권 주자 중 한 명이다. 고 전 총리와 손을 잡는 것도 하나의 아이디어일 수 있다. 하지만 몇 가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노무현 정권과의 관계나 현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등에 대한 명쾌한 입장정리가 먼저 필요하다. 그 이후에 논의할 문제다.
―고 전 총리 측에서 그에 관한 입장을 내부적으로 전해온 바는 없나.
▲민주당 의원 중에 고 전 총리와 친분이 있는 인사들과 논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와 같은 내 생각에 대한 답을 하진 않고 있다.
―현재 대권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이들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를 내린다면.
▲그것은 안 하는 게 좋겠다. 잘못 말하면 또…(웃음). 다들 일장일단이 있다.
마침 인터뷰를 가지기 직전 전해진 소식 한 가지에 대해서도 구체적 정황을 물어보았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이 당선에 대한 ‘축하전화’를 걸었는데 조순형 의원이 받지 않았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조순형 의원은 “그때 다른 곳에 통화 중이어서 나중에 전화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이후 연락이 없었다. 좀 전에 통화하려고 보니 자리에 없다더라. 연락하라고 메모를 남겼는데 내가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전해졌더라”며 혀를 끌끌 찼다.
조순형 의원과 가까이서 얘기를 나눠보니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명과는 달리 소탈하고 격의 없는 모습이 엿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딱딱한 질문에 이어 좀 더 편한 질문들도 던져 보았다.
―정치인 역시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이들인데 이미지 메이킹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인다.
▲그냥 난 뭐, 그런 데엔 별 관심도 없고…(웃음). 나는 성향 자체가 정치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다. 정치를 하려면 집념과 욕심이 있어야 하는데 난 그렇지 못하다. 국회의원 한번 하려고 해도 못하는 이들이 태반인데 이런 내가 국회의원을 여섯 번이나 했으니 난 참 행운아라는 생각도 든다. 하나님의 은총이라 여기고 있다.
―국회의원은 할 만큼 했으니 대통령에 대한 꿈은 없나.
▲대통령이 되기 위한 검증과정이 너무나 비정하다. 이회창 전 총재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때론 근거도 없는 비방을 들어야 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큰 잘못은 하지 않고 살았지만 그 비정한 과정을 감내할 자신이 없다. 우리 와이프도 언젠가 그런 질문을 받고 ‘우리 남편은 좋은 국회의원이란 소리를 들었는데 뭐가 아쉽다고 대통령을 하나’라고 답했다던데 내 생각도 마찬가지다.(웃음)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처음엔 좋았는데 하도 ‘쓴소리’ 한다고 하니까 너무 부정적으로 비춰지는 것 아닐까 염려되기도 한다(웃음). 지역의 한 주민께서 ‘쓴소리만 하시면 안 됩니다. 단소리도 하셔야 지역이 발전할 것 아닙니까’ 그런 말씀도 하시더라. 새겨들어야 할 얘기였다.
―사람을 잘 못 사귀는 성격이고 술도 잘 못한다는데 어떻게 정치판에서 버텨왔나.
▲한번 사귀면 오래는 가는데 쉽게 친해지는 성격이 못 된다. 이건 정치인으로서 매우 부적격 조건이다. 술은 한두 잔도 못하는데 이건 사회적으로 부적격 요인이다(웃음). 그래서 처음엔 거만하다는 오해도 많이 받았는데 차츰 알려지고 그러다 보니 나중엔 좀 편해지더라.
“떠나고 보니 국회의원이 잘못하고 있는 점들을 많이 알게 됐다”는 조순형 의원은 이제 다시 국회로 입성한다. 지난 2년 동안 느낀 서민들의 절박함을 교훈으로 삼겠다는 그가 남은 1년 반 임기 동안 ‘서민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조순형 의원은 아직까지는 말을 아끼고 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