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게이트를 비롯한 성인 오락실 문제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그러나 이 문제가 정식으로 사회 정치 문제로 부각되고 수사의 대상으로 불거진 계기는 역시 노무현 대통령의 친조카 노지원 씨(43)와 우전시스텍, 지코프라임의 관계 때문이었다.
현재 시점에서는 바다게이트와 관련 노 씨의 이름은 거론되고 있지 않다. 청와대 측도 바다이야기와의 관련설을 일체 부인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노 대통령의 친척이라는 점에서 세인들의 눈길은 따갑기만 하다.
현재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각종 의문점에 대해 노 씨 및 주변인들은 해명에 적극적이다. 노 씨는 “검찰이 조사를 한다면 이에 응하고 철저히 밝히겠다”며 모든 의혹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과연 노 씨는 본인의 말대로 ‘대통령의 조카’라는 이유로 오히려 역차별을 받고 있는 것일까.
노지원 씨는 노무현 대통령의 형 영현 씨의 둘째아들이다. 1973년 부친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작은아버지인 건평 씨 집에서 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지원 씨는 2003년 10월 우전시스텍에 입사해 약 2년 9개월간 근무했다. 지난 5월 우전시스텍이 바다이야기 납품업체인 지코프라임에 인수되자 그로부터 2개월여 뒤인 지난 7월 5일 지코프라임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것이 그가 바다이야기와 연관된 부분의 전부다. 그러나 야당과 언론에서는 여기서부터 시작해 몇 가지 의문점을 제기하고 있다.
야당 측이 당초 의문을 가지고 덤벼든 첫 번째 의문점은 노 씨가 사직서를 낸 바로 다음 날인 7월 6일 검찰이 바다이야기 비리에 대한 전격수사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노 씨는 “사행성 오락업체에 재직하는 사실이 삼촌인 노무현 대통령에게 부담으로 작용할까 싶어 그만두게 됐다”며 “지코프라임의 인수계약이 체결되고 나서야 인수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만두기까지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 7월 초에서야 사표를 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연의 일치라는 것이다.
두 번째 의문은 노 씨는 우전시스텍에서 상당한 역할을 하지 않았느냐는 부분이다. 이 이야기를 다루기 위해서는 앞서 노 씨의 그 이전 행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 씨는 지난 1990년 9월 KT에 6급 공채로 입사해 2003년 10월 1일 희망퇴직 했다. 당시 그의 직급은 대리급인 4급이었다. 노 씨는 KT 부산 가야지점에서 일하다가 2003년 초 KT 본사로 옮겨왔으며 본사에서 통신선 집중화관리센터인 OMC에 근무하면서 각 지사의 대형 컴퓨터인 전자교환기 관리나 수리 업무를 담당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노 씨는 대통령 조카라는 특혜를 받기는커녕 동기들에 비해 오히려 승진이 늦은 편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2003년 10월 KT가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희망퇴직을 받았는데 노 씨는 이때 퇴직 신청을 하게 된다. 이때 노 씨가 우전시스텍으로 자리를 옮기는데 몇 가지 점에서 서로 의혹이 갈 만한 부분이 나온다. 노 씨와 우전시스텍 사이에 ‘다리’를 놓아준 인물은 김 아무개 변호사(44)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2001년 한 술자리에서 김 씨의 친구이기도 한 노 씨의 금오공대 동창 소개로 처음 알게 됐다고 한다. 그러던 2003년 노 씨가 KT 퇴사를 앞두고 김 씨에게 일자리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
김 씨는 당시 우전시스텍과 ‘연결’해 준 경위에 대해 “우전시스텍 대표는 2003년 후배 펀드매니저를 통해 알게 됐고 노 씨가 다닐 회사를 알아봐 달라고 해서 소개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노 씨가 퇴사 전 우전시스텍 측으로부터 영입제의를 받았다고 전하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한 김 변호사의 ‘설명’과 차이를 보인다. 이미 노 씨는 두 달여 전(2003년 8월) 우전시스텍으로부터 사장 자리와 함께 거액의 스톡옵션을 ‘제안’ 받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노 씨가 우전시스텍으로부터 ‘사장’ 자리를 제안 받았으나 이 사실을 안 청와대의 ‘경고’로 ‘이사’ 자리로 옮기게 된 것은 청와대의 설명에도 나오는 부분이다.
노 씨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KT 과장이라는 직함이 어느 정도인지 일반 샐러리맨은 다 알 것이다. 원래 KT 과장급 정도의 출신이면 나중에 중소기업에 들어갈 때 이사나 상무급으로 들어갈 정도로 인정받는 자리다”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한가지 미심쩍은 부분이 또 나온다. 노 씨가 KT를 퇴직할 때 직급이 과장이 아니라 대리급이었다는 것이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도 김대중 대통령의 처남을 영입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진 우전시스텍은 노 씨의 ‘영입’에 대해 어느 정도 기대감을 가졌던 것은 사실인 듯하다. 김 변호사는 “당시 우전시스텍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 것도 노 씨 영입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실제로 노 씨 영입 이후 우전시스텍은 정부 및 산하기관으로부터 총 65억 원가량의 국고지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2월엔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은행이나 신용보증기금을 통해 보증서를 받아 대출해주는 까다로운 ‘일반적’ 과정이 아닌 공장담보만으로 16억 원을 빌려주기도 했다. 이후 12월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 지원 대상 기업을 선정할 때 역시 10:1가량의 경쟁률을 뚫고 선정됐다. 이런 부분들은 ‘특혜 의혹’ 시비를 부를 수 있는 대목이어서 앞으로의 조사 결과가 주목된다. 이에 대해 우전시스텍 측은 “정상적인 과정에 의해 이루어졌고 몇 번 이상 신청해 겨우 받은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노 씨의 우전시스텍 근무 당시 ‘직함’에 대해서도 아리송한 구석이 있다. 청와대 측에서 ‘기술이사’로 거론했던 것과 달리 노 씨는 실제 ‘영업이사’로 활동해 온 것으로 알려져 궁금증을 낳고 있다. 우전시스텍이 금융감독원에 낸 2006년도 상반기 보고서에도 노 씨의 담당업무가 영업이사로 기재돼 있다. 또 노 씨를 영입한 우전시스텍의 안효민 전 이사 역시 한 인터뷰에서 “노지원 씨는 VDSL 장비를 중국 내에 판매하는 영업을 담당했었다”고 밝혔다. 반면 노 씨는 “대통령 친척이라서 구설에 오를까봐 영업 같은 대외적인 일은 거의 하지 않고 정보통신 전문 분야만 맡았다”고 얘기하고 있다. 왜 이처럼 직함에 대한 설명이 다른 것도 숨길만한 무엇이 있지 않느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대통령 친인척관리’ 과정에서 “서류를 깨알 같이 들여다봤다”는 청와대 측이 노 씨의 직함을 잘못 거론했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 야당의 지적이다.
무한투자㈜와 노 씨의 관계도 아리송한 구석이 있다. 지난해 11월 무한투자가 우전시스텍의 최대주주가 돼 사실상 우전을 인수한 뒤 다른 임원들은 다 그만뒀지만 노 씨만 유일하게 이사직을 유지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무한투자가 우전을 인수한 후부터 노 씨에게 회사 성격이 바뀐 만큼 그만둘 것을 권유했지만 노 씨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편 지코프라임이 왜 인수대상 업체로 우전시스텍을 택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해야 할 부분이 많다. 지코프라임 측도 오히려 노 씨에게 사퇴를 종용했다고 말한다. 지코프라임과 사실상 같은 회사이며 바다이야기의 제조사인 아이원비즈의 한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우전이 하던 초고속디지털가입자회선(VDSL) 사업을 잘 몰라 VDSL 담당 개발, 영업 이사만 남기고 나머지는 내보내려 했다”면서 “우전 이사 중 대통령 조카가 있는 줄은 처음에는 몰랐고 이사들의 경력을 확인하다가 청와대 얘기가 처음 나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에이원비즈 이 아무개 상무가 노 씨에게 ‘우리는 사행성 사업을 하는 곳이니 나중에 대통령한테 누가 될 수 있으니 사임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얘기하자 노 씨가 수긍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 씨 자신은 계약기간을 남겨두고 회사를 그만두었던 것에 대해 “숙부인 대통령에게 부담을 줄 것 같아 스스로 그만두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 측은 노 씨의 바다이야기 관련설을 일체 부인하며 무분별한 정치공세 및 왜곡보도에 대해 민 형사상 법률적 대응을 포함한 모든 조치를 계속 취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는 등 강경 자세다.
일부에서는 청와대의 말처럼 바다이야기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으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노 씨가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라는 입장에서 보다 명쾌한 처신을 했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