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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내정자가 지명됐을 때만하더라도 교육계와 정치권, 시민단체에서는 “무난하다” “환영한다”라는 입장이었다. 모처럼 코드 인사를 벗어나 전문성을 갖춘 인사를 발탁했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김 내정자의 교육철학과 교육관이 알려지고 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의 평소 소신과는 다른 뉘앙스의 말들이 나오면서 김 내정자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학계와 언론에서는 “취임 전부터 정권과 코드 맞춘다” “학자적 소신을 지키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김 내정자는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의 정책기조와 나의 교육정책적 생각은 기본방향에서 일치한다”며 “학자가 자유로운 상태에서 조건 없이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과 구체적 정책으로 발전시키는 것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김 내정자의 소신과 정책 기조의 사이의 거리를 재본다.
김 내정자는 교육사회학의 원로이자 대가로서 평소 평생교육과 학교의 자율성·다양성을 강조해 왔다. 내용적인 면에서는 김 내정자는 교육의 수월성(영재 교육)과 교육의 품질관리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서부터 한국 교육 현실에 대한 그의 입장이 정리된다.
김 내정자는 각종 기고와 논문을 통해 자립형 사립고 등 학교 다양화 정책, 대학 특히 사립대학의 자율성 보장, 교육의 수월성 확보와 교육의 품질관리를 역설해왔다. 학교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그의 평소 교육관은 평등주의 교육관을 견지하고 있는 참여정부의 정책과 상충되는 면을 많이 보였다.
그는 2002년 3월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자립형 사립학교의 경우도 여건과 능력이 되는 사립학교들이 전환하고 싶다면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자립형 사립고에 미온적인 정부의 정책과 상당히 다른 시각이다. 또한 94년 3월 <한국논단>에 실린 글에서 하급학년 과정을 충분히 이수하지 못한 학생도 상급학년에 진급하는 현실에 대해 “교육의 품질관리(수월성) 유지를 위한 노력이 전무하다”며 “교육 품질관리를 철저히 하기 위해 초·중·고에 유급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에 대해서도 그의 저서 <교육생각>에서 “대학의 학생 선발권을 보장하고 대학 정원 제한을 대폭 완화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사립대학에 대해 “제도적으로 사립학교와 대학의 자율성과 특성을 인정하지 않고 국공립 학교의 연장선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진정한 사학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또한 2008년부터 적용되는 교육부의 수능성적 비중을 대폭 낮추고 내신성적 위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대학입시제도 개혁안에 우려를 나타냈다. 지난해 3월 <교수신문>에 쓴 칼럼에서 김 내정자는 고교의 내신성적에 대해 불신을 드러내며 ‘고교학력고사’ 도입을 제안하기도 했다. 지금의 고교 내신성적은 믿을 수 없으니 정확한 학력을 평가하기 위해 전국 단위의 또 다른 시험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것 역시 내신 비중을 높이려는 참여정부의 교육정책과 배치되는 점이다.
그러나 그는 상아탑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았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현실 교육정책에 적극 관여해 왔다. 교육계에서는 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업적으로 평생교육법 제정과 학교 운영위원회 도입을 꼽는다.
평생교육법은 김영삼 정부 시절에 김 내정자가 교육혁신위원으로 있으면서 평생교육법 제정을 위한 연구팀의 연구책임자로서 법 제정의 산파역할을 했다. 평생교육법은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평생학습의 기회를 부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취지로 만들어 진 법이다.
학교운영위원회란 예전의 ‘학교교육비’ 모금만 해온 육성회와 기성회가 해체되고 탄생한 말 그대로의 운영위원회다. 학교의 교원위원과 학부모위원, 지역위원이 참여해 학교의 투명한 운영이 이루어지도록 고안된 제도이다. 운영위원회가 하는 일이란 학교 급식업체 선정, 보충수업 교재 선정, 학교장 추천 대학 특별전형 등 학교 운영에 대한 제안과 건의를 하는 기구다. 이 운영위원회 역시 김 내정자의 교육철학에 따라 교육 수요자의 요구가 교육현장에 잘 반영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이 운영위원회의 도입으로 인해 학교 운영의 투명성과 민주성이 제고됐다는 평을 듣고 있다.
김 내정자의 제자인 한나라당 임해규 의원은 “두 정책 모두 국가 수준에서 이루어진 정책이고 김 내정자가 주도적으로 관여했다”며 “김 내정자가 행정경험이 없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최근 그가 보여준 행동은 일부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는 교육부총리로 내정되기 전 교육혁신위원회 학술대회에 발표하기 위해 작성한 13쪽에 이르는 ‘한국의 미래비전과 전략’이라는 글에서 “한국의 학교들은 획일성 때문에 수월성도 평등성도 모두 죽었다. 학교의 다양화, 교육과정의 유연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또한 “고교 평준화가 평등정책의 하나로 지적되기도 하지만 평준화는 적극적인 평등정책이 되지 못하고 고교의 획일화를 조장하는 면이 강하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지명 후 <중앙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공개적으로 말할 위치가 아니어서 학술회의 발표를 취소했다. 원고에 실린 내용은 없던 걸로 해달라. 그 내용에 대해 뭐라고 말할 위치가 아니다”고 한 발 물러섰다. 자신이 쓴 논문마저 부인하는 등 소신에 이상 신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그의 글과 말이 다르자 교육계 안팎에서 “권력에 순응하기 위해 소신을 버리고 코드를 택한 것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이 늘고 있다. 그러나 김 내정자는 해명하기보다는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14일로 예정된 인사청문회에서 모든 논란에 대해 해명할 것이라고 전해진다. 지난 7일 기자와 마주친 김 내정자는 ‘말 바꾸기’ 논란에 대한 질문에 “미안하다. 말할 입장이 아니다”는 말만 되풀이한 채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러나 김 내정자가 이처럼 자신의 소신을 언제까지 드러내지 않고 자리를 피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지금 산적한 교육 현안이 교육부총리를 그를 기다리고 있다. 교원평가제 도입을 반대하며 성과급 반납 투쟁을 벌이고 있는 전교조와 교장공모제에 반발하는 교총, 국립대학의 법인화 문제, 2008년도 대학 입시안 확정 등 모두 교육부의 ‘뜨거운 감자’로 통하는 현안들이다. 과연 김 내정자가 이 뜨거운 현안들 속에서 소신을 지킬지, 코드를 맞출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김지훈 기자 rapi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