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병직 건교부 장관 | ||
청와대는 10일 청와대브리핑에 올린 ‘정부, 양질의 값싼 주택 대량 공급’이란 제목의 글에서 “지금 집을 살까 말까 고민하는 서민들은 조금 기다렸다가 정부의 정책을 평가하고 나서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며 “비싼 값에 지금 집을 샀다가는 낭패를 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당장 네티즌의 댓글들이 이 내용을 전하는 기사 뒤에 마구 나붙었다. ‘30번도 더 속았다’ ‘정부를 믿은 내가 바보’ ‘제발 말이나 하지 말라’ ‘청와대가 복덕방이냐’ ‘이젠 안 속지롱’ 등 정부를 조롱하는 글들이 주류다. 이제 국민들은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조금의 신뢰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또 부동산 대책을 내놓는다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이 같은 실패한 부동산 정책의 한가운데 서있는 사람이 바로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57)이다. 추 장관은 지난해 4월 장관직에 오른 뒤 1년 6개월의 재임기간을 자랑하는 ‘장수’ 장관이다. 그러나 그의 행동과 말은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80점 이상은 된다”며 스스로 점수를 매기고 있으나 야당의원으로부터 ‘1000점 만점에 80점’이라는 비아냥거리는 소리만 들었을 뿐이다.
그의 부동산 정책을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은 지난달 23일 기자실에서 있었던 신도시 발표인지도 모른다. 기자들은 물론 동료 장관들, 국무총리와 청와대까지 놀라게 했다. 그리고 신도시 예정지로 점찍힌 인천 검단 지역에서는 일대 난장판이 벌어졌다. 땅값이 연일 오르고 하루 아침에 미분양 아파트가 수십대 일의 경쟁률을 자랑하는 아파트로 바뀌고 이미 매매가 계약된 부동산도 엄청난 돈이 붙여져 해약사태를 이루기도 했다.
부동산 문제 해결이 어렵긴 하겠지만 추 장관의 언행은 국민들의 한숨이 더 깊게 만들고 있다고 야당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무거운 짐이 얹어진 어깨가 수그러지기보다는 뾰족이 곧추 세워지고 있는 듯이도 보이는 추병직 장관을 탐구한다.
지난달 23일 추병직 장관의 신도시 발표는 ‘깜짝쇼’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그야말로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날 추 장관은 예고도 없이 기자실에 나타나 마치 농담하듯 신도시 건설 얘기를 불쑥 내던졌다. 방송화면을 통해 전해진 당시 상황을 보더라도 추 장관의 언행은 신뢰감을 주기는커녕 흡사 개그쇼의 한 장면과도 같았다. 곁에 있던 한 기자가 “이렇게 중요한 걸 발표하시려면 나가서 하셔야지요”라는 말을 건네자 추 장관은 “발표하려고 온 것은 아니고 오다보니 이렇게 된 거지”라며 실없는 웃음을 날렸다.
이날 발표 아닌 발표는 관련부처와의 사전 협의도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추 장관은 기자실로 가기 직전 정문수 경제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어 주택공급 일반과 관련된 얘기만을 하겠다는 정도로만 언급했다고 한다. 신중을 기해야 할 민감한 정부정책 발표를 대수롭지 않은 일인 듯 내뱉은 것이었다.
추 장관은 “주무장관으로서 정부의 주택공급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실수요자에게 안정감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한명숙 총리가 추 장관을 질책하고 국감장에서도 여야 의원을 막론하며 성토를 벌였으나 그들의 ‘말잔치’로 아파트값 폭등의 피해가 감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추 장관의 ‘한 마디’ 발언 이후 일주일 새 서울 아파트값은 무려 7조 원 가까이 급등했다. 부동산정보업체인 부동산뱅크의 조사결과 서울의 전체 아파트값은 추 장관의 신도시 계획 발표 이전 541조 4059억에서 548조 3369억 원으로 오른 것.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서는 27.9%나 높아진 금액이었다. 10월의 주택가격은 4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더구나 추 장관은 구체적인 내용도 없이 ‘신도시입지 발표계획’만을 언급해 더 감당하기 힘든 결과를 가져왔다. 신도시개발 계획은 철저한 보안 속에 투기방지 대책과 함께 발표됐던 것이 전례. 추 장관은 “이달 중 신도시 입지를 발표하겠다”고만 말해 수도권의 신도시 개발 후보지 주변 땅값과 집값이 모두 오르는 상황이 벌어지고 만 것.
결국 정부는 지난 9일 노무현 대통령 주재 부동산 관계장관 회의를 통해 ‘부동산시장 안정종합대책’을 내놓고 그간의 규제중심에서 주택공급 확대와 규제를 완화하는 쪽으로 부동산정책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송파와 인천 검단, 파주, 김포 등 수도권 3기 신도시의 공급시기도 1년 정도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도 사후 약방문이 아니냐는 것이 부동산 업자들의 이야기다.
▲ 지난해 4월 6일 임명장을 준 뒤 노무현 대통령이 추병직 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 ||
이어 8월 23일 국회예산결산특위에서는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과 막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정두언 의원이 이명박 서울 시장 아래에서 정무부시장을 지낸 점을 의식해 “의원님은 서울시장 대변자입니까?”라고 되물었던 것. 이에 정 의원이 “당신 지금 무슨 얘기하는 거냐”고 따지자 추 장관은 다시 “당신이라니”라고 응수했다. 당시 정두언 의원은 회의장 밖에서 추 장관에게 사과를 요구했으나 추 장관은 이를 거부했고 결국 이틀이 지난 뒤 공개사과를 하는 사태에 이르기까지 했다. 지난 2005년 4월 13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는 유전개발 의혹과 관련한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의 질문에 “자료를 못 봤다. 잘 모르겠다. 보고받지 못했다”며 스무 차례 이상이나 ‘모르쇠’ 답변으로 일관한 바 있다.
지난 4월에도 추 장관은 공개석상에서 물의를 빚는 행동으로 도마 위에 올랐었다. 충북 지역 주민들과의 간담회 도중 서류를 집어던지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행동을 보였던 것. 이날 간담회는 열린우리당의 충남 공주역 신설 공약에 반발해 충북 지역 민심이 좋지 않자 여당 의원들이 주선했던 자리였다. 추 장관은 지역주민 대표가 “국책사업이 일관성이 없다”고 지적하자 “뭐가 일관성이 없습니까. 에이”라고 내뱉고 자리를 떠났다.
한때 유망한 관료라는 평가를 받았던 추 장관의 이 같은 변신에 놀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관료로서의 추 장관과 정치인으로서의 추 장관이 달라졌다고 평한다.
추 장관은 경북대 사회교육학과 출신으로 교사 생활을 하다 행정고시에 합격, 관료로서 건교부(당시 건설부)에 발을 디뎠다. 이후 주택도시국장, 공보관, 차관 등 주요보직을 거치는 등 정통 관료의 길을 걸어 왔다.
추 장관은 당시 꼼꼼한 업무처리 능력으로 주변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분당 일산 등 신도시 건설 당시 실무를 맡았고 인천국제공항 건설 등 주요 국책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전문가로 인정받기도 했다. 관료로서 탄탄대로를 걸어온 그는 지난 17대 총선에서 현직 관료로는 처음으로 출마 선언을 하고 정치인으로의 변신을 꿈꾸었다. 당시 차관직을 던지고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북 구미 을에 출마한 그는 지역 구도를 깨지 못하고 낙선했다.
그는 장관 취임 이후 사석에서 당시 출마결심을 굳힌 이유에 대해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을 뿐 다른 사심은 없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마도 낙선이 거의 확실한 지역에 출마하기에는 상당한 결심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평이다. 아무튼 그는 총선을 계기로 관료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비록 낙선은 했지만 노 대통령은 그를 잊지 않았다. 17대 총선 낙마 이후 보은 인사 논란 속에 지난해 4월 건교부 장관에 임명된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추 장관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다고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들은 말한다. 그리고 임명 당시부터 보은 인사 구설수에 올랐던 그로서는 노 대통령과의 ‘코드 맞추기’ 면에서도 자유롭지 못할 운명이었을지 모른다.
추 장관의 무리한 언행에 대해 그의 올곧은 성격 탓으로 돌리는 이들도 있다. 경상도 출신인 그는 진솔한 성격을 갖고 있으나 겉으로 표현하는 것에는 능숙하지 못한 편이다. 국회의원들과 자주 말싸움을 벌이는 것도 이 때문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 야망도 그리 크지는 않다는 평이다. 지난 5·31 지방선거 때는 열린우리당으로부터 경북도지사 후보 권유를 받았으나 부인의 위암투병을 이유로 출마를 포기하기도 했다. 소탈한 성격이어서인지 재산에도 관심이 없다는 평가다. 실제로 집값 흐름을 매일 관찰하는 건교부 수장이지만 현재 사당동에 중소형 아파트를 가지고 있다. 마포에 오피스텔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것도 재산가치는 떨어진다고 한다. 2005년 11월 오포아파트 비리로 구속된 한현규 전 경기개발원장에게 빌린 돈 5000만 원이 한때 문제가 되자 “아내의 암 투병 비용과 소송비용이 필요해 빌렸다”고 해명했지만 실제로는 주식투자로 날린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추병직 장관이 건교부 장관으로서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는 집값 안정이지만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지도 모른다. 지난해 야심차게 발표되었던 8·31 부동산 대책에 이어 올해의 3·30 대책, 11·3 대책 등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연이어 쏟아지고 있지만 집값은 반대 방향으로만 튀고 있다. 야당에서는 오히려 “더 이상 어설픈 대책 내놓지 말고 사퇴하라”고 공격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추병직 씨가 부동산정책에 의사결정권을 가진 장관에 있는 한 치솟는 집값을 잡기는 불가능하고 그의 사퇴만이 최선의 부동산대책”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야당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일단 11월 1일의 개각에서 교체되지 않고 살아남아 노 대통령의 신임을 확인한 추 장관이 과연 어떤 모습을 보일지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