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정배 의원이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공개적으로 자인하고 통합신당론을 주창하고 나섰다. 그의 앞으로의 행보에 정가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일요신문>은 22일 통합신당 선언 후 강연 등을 통해 정계개편에 대한 입장과 여당의 진로에 대해 역설하고 있는 천 의원을 만났다. 천 의원은 “지지율이 매우 낮은 정권이 자꾸 ‘지금은 지지율은 낮지만 역사가 평가해 줄 것이다’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역사로의 도피”라며 현 정권의 태도를 비판했다. 천 의원은 정계개편의 구체적인 방법과 시기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것을 밝힐 만한 단계가 되지 못한다”고 말을 흐리고 고건 전 국무총리에 대해서는 범여권 후보라는 점은 인정했지만 “좀 더 따져 볼 필요가 있다”고 일단 평가를 유보했다.
천 의원은 1주일 중 절반 정도를 지방 행사에 참여하며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서인지 조금 피곤해 보였다. 인사말 삼아 최근 화제가 된 장녀 지성 씨(29)의 결혼에 관해 물었다. 지성 씨는 내년 1월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의 조카 재만 씨(32)와 결혼한다. 두 사람은 사법연수원에서 만나 인연을 맺은 것으로 전해진다. 천 의원은 “글쎄… 뭐 놀라지는 않았다. 본인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내가 사람을 볼 때 제일 먼저 진실한 사람인가를 보는데 예비사위는 진실한 사람이다”고 말문을 열었다.
─창당 주역으로서는 가장 먼저 통합신당론을 주장했는데 3년 전 창당 당시와 지금 열린우리당의 상황이 어떻게 다른가.
▲당시 열린우리당은 국민들의 정치개혁 열망에 부응해 안팎의 개혁정치세력을 총집결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다 포용하지 못한 것 같다. 열린우리당이 현재 처한 위기상황은 단순히 열린우리당 정치인들만의 위기가 아니라 한국의 ‘민생 화합 개혁 세력’의 위기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생개혁세력 정당의 비전과 정책을 새롭게 정비하고 이것을 공유하는 세력, 인사들을 대통합해야만이 국민들, 특히 지지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고 본다. 3년 전하고 지금하고 정치상황은 좀 다르지만 노선을 공유하는 사람끼리 다 뭉쳐보자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열린우리당의 지난 3년을 평가해 달라.
▲열린우리당의 창당은 시대정신의 소산이다. 국민의 정치개혁 열망에 부응하는 것이었다. 총선에서 국민들이 열린우리당에 과반수를 만들어줌으로써 그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이런 지지를 바탕으로 삼아 한발 더 나가 생산적 정치를 만들어 가야 했는데 이에 실패했다. 또한 당·정·청 협력에 있어서도 매우 부진했다. 여당이 최소한 정부, 청와대와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고 나아가서는 정부, 청와대를 비판하고, 견제하고 나아가서는 견인도 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부진했고 오히려 청와대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는 모습만을 보여 왔다.
─창당주역으로서는 가장 먼저 ‘통합신당론’을 주장했는데 당내에서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법무장관직을 마치고 당에 와 보니 당이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있었고 미래에 대해 준비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의 진로문제에 대해서 확고하게 문제의식을 던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정계개편, 통합신당도 재집권을 위한 것인데 결국 대선용 이벤트 정당을 또 만드는 것이 아닌가. 야당에서는 여당에서 논의되고 있는 정계개편에 대해 ‘사기극’이라는 말까지 한다.
▲정계개편이라고 하든 신당창당이라고 하든 그것이 대선을 앞두고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은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자신의 단순한 욕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경우에는 기득권 구조가 온존, 강화될 것이다. 또한 중산층의 민생이 더 피폐해질 가능성이 높고 또한 남북 교류 협력도 어려워 질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개혁세력의 입장에서 정권재창출은 시대적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파울플레이를 할 생각은 전혀 없다. 새롭게 생산적 정치로 심기일전해서 국민의 마음을 다시 얻어 보자는 것이고 그 방법 중 하나가 통합신당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신당이라는 것이 여당 내에서도 ‘도로 열린우리당’이 되는 게 아니냐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그렇게 돼서는 안 된다. ‘도로 열린우리당’이 되면 희망 없다. 그래서 미래비전을 제시하는 신당으로 가는 것도 중요하다. 그 전제로서 우리당을 포함한 여권 전체의 획기적인 변화, 환골탈태, 근본적인 변화를 이룩하는 것이 극히 중요하다. 변화 없이는 신당이든 당을 고수하든 희망이 없다.
─여권의 재집권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아직은 기회가 있다고 본다. 몇 가지 전제가 있다. 첫째는 비록 지난 시간 국민을 실망시켰지만 앞으로 1년의 시간이 있고 두번째 그 시간 동안에 생산적 정치, 특히 중산층·서민을 잘 대변하는 강력한 집권당의 모습, 당·정·청간의 협력을 잘 이끌어가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서 민생문제를 비롯한 국정현안을 잘 처리함으로써 변화를 이루어낸다면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지난 10월 천 의원이 노 대통령과 만났을 때 대통령은 “통합신당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럼에도 천 의원이 통합신당을 주장하는 것은 노 대통령과 사실상 결별로 봐야 하나.
▲지난 대선 과정에서 내가 제일 먼저 노 대통령을 지지하고 열심히 선거운동을 한 것이 사실이다. 대통령을 잘 돕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에서 대통령과 생각이 똑같을 수는 없다. 의견이 다를 수 있고 내가 대통령의 의견을 무조건 추종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치인으로서 내 나름대로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서 행동하겠다.
─정확한 답변을 듣고 싶다. 결별로 봐야 하나.
▲그렇지 않다. 결별할 이유가 뭐 있나.
─아직도 정치적 동지라는 말인가.
▲그렇다.
▲가만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주도권은 당이 쥐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노 대통령의 치세에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지만 우리당의 진로문제는 대통령 임기 이후와 관련된 문제 아닌가. 그 후에도 계속 정치를 해야 될 당에 있는 사람들이 주도해야 한다.
─노 대통령과 함께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노 대통령과의 개인적 의리 때문인가. 정치적 명분이 있나.
▲열린우리당은 노 대통령을 비롯한 참여정부와 한몸이다. 여권 전체로 볼 때 국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할 주체다. 그동안 잘못된 것에 대해서 모른 척하고 새롭게 신당이나 만들어서 출발해보자는 것이 아니다. 열린우리당의 잘못은 노 대통령의 잘못과 똑같다. 대통령과 분리된다고 하는 것은 여당으로서 무책임한 것이다.
─사실상 노 대통령의 역할은 없다고 보는 것 아닌가.
▲있다 없다 얘기할 것 있겠나. 대통령도 당원이니까 당원으로서의 역할까지 배제할 필요는 없다. 다만 대통령이 당의 주도권을 인정해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스타일로 봤을 때 정계개편에서 당의 주도권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본인도 역할을 하려고 할 것이다. 현실적인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가만있겠는가.
▲그런 측면도 있겠지만 당정분리라는 것도 있다. 대통령은 그동안에도 대체로 당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간여하지 않고 당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그런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해왔다.
─친노 세력은 재창당을 주장하고 있다. 친노 세력도 통합의 대상인가.
▲그렇다. 노선과 비전을 공유하는 세력이 크게 뭉칠수록 지지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재창당 또는 당 고수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현재 상태로는 안되겠다’고. ‘우리 자신이 획기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가운데 재창당이든 당 고수든 주장한다면 좋다. 그런데 변화를 전제하지 않은 상태로 재창당이나 당 고수는 ‘절망’이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재창당, 당 고수를 주장하는 사람 중 일부는 변화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변화 없이는 희망도 없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과 천 의원의 각별한 인연을 고려했을 때 통합신당 논의는 위장이혼이라는 말도 있다.
▲처음 듣는 말이다. 사실과 전혀 다르다.
─노 대통령에 대해 평가해 달라.
▲내가 제일 먼저 노 대통령을 지지한 사람이고, 이 정부에서 장관까지 한 사람이다. 그리고 아직도 임기가 1년이나 남았는데 단지 관중처럼 평가한다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본다.
─좀 더 노골적으로 물어보겠다. 노 대통령은 성공한 대통령인가, 실패한 대통령인가.
▲그렇게 추상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현재로서는 국민의 지지가 낮은 대통령일 뿐이다.
─노 대통령이 임기가 끝나고 10년, 20년 후에도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 받을 수 있겠는가.
▲시민운동 같은 것은 당장의 국민 지지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정치도 마찬가지로 조변석개하는 여론에 따라다니는 것은 포퓰리즘이다. 그러나 역시 정치는 기본적으로 주권자인 국민의 요구를 잘 듣고 국민의 요구하는 바를 통해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실은 정권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높을 때는 당장의 지지에 연연하지 말고 장기적인 국가적 장래, 발전, 삶의 질 과제에 대해 더 충실히 추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지지율이 매우 낮은 정권이 자꾸 ‘지금은 지지율은 낮지만 역사가 평가해 줄 것이다’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자칫 역사로의 도피가 되기 쉽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변화하지 않겠다’는 그런 바람직하지 못한 자세의 표현일 가능성이라는 생각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역사로의 도피라고 말하고 싶다.
─천 의원이 생각하는 정계개편의 구체적인 방법과 시기에 대해 묻고 싶다. 일부에서는 제3지대에서 헤쳐모여식으로 해야 된다는 말도 들린다.
▲구체적인 것을 밝힐 만한 단계가 되지 못한다. 좀 더 토론이 이어지면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광범위한 세력이 원칙 있게 미래지향적으로 뭉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건 전 국무총리는 여권의 후보로 적합한가.
▲좀 더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참여정부가 가장 힘 있을 때 1년 이상 대통령 다음 가는 영향력 있는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다. 현재 한나라당을 제외한 후보 중 가장 높은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으니 그런 것을 고려할 때 범여권 후보로 봐야할 것이다.
─여권의 대선 후보는 어떤 자질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현재 거론되는 인사 중에 적합한 인물은 누구인가.
▲여권의 후보는 당의 정체성에 맞아야 하고 양극화된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여권에 개별적으로 훌륭한 분들이 많다.
─본인의 대권의지에 대해 묻고 싶다. 다음 대선에 출마할 것인가.
▲적극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화급한 문제는 열린우리당의 위기상황이다. 획기적인 변화를 통해서 위기상황을 돌파하는 것이 매우 화급하다. 이런 문제들에 우선적으로 힘쓰면서 내 개인문제에 대해서 때가 되면 밝히겠다.
─천 의원의 최근 행보를 보면 호남에 공들이고 있다. 지난 번 DJ의 목포방문에도 동행했다. 천 의원의 대선전략을 ‘호남적자론’ ‘DJ적자론’으로 이해하면 되나.
▲그렇지 않다. 난 DJ의 국민회의에 참여했던 사람이고, 또 한편으로는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찬동하며 앞장선 사람 아닌가. 그런 점에서 민생개혁세력에 뚜렷한 아이덴티티를 두고 있는 사람이다. 협소한 지역적 관점에 머물 생각은 없다. 본시 개혁이라는 것이 지역주의와는 공존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임채정 국회의장이 취임하자마자 ‘개헌론’을 꺼냈다. 또 얼마 전 김한길 원내대표도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개헌론’을 제기했다. 개헌에 대한 천 의원의 입장은 어떤가.
▲내용만 생각한다면 개헌에 대한 그분들의 생각이 옳다. 국회의원과 대통령의 임기 일치, 4년 중임제라든지 그 밖에도 고쳐야 할 부분이 많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관계를 뚜렷이 정리한다든가, 여러 가지 권리분야에 대한 것들을 보완해야 한다. 그러나 야당에서는 이것을 정략적이라고 보는 것 아닌가. 현재 우리 입장에서는 야당의 반대로 어려운 게 아닌가 생각한다.
김지훈 기자 rapi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