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임 6개월을 맞은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도정을 수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는 경기도에는 집 지을 땅이 무궁무진하다며 아파트 문제 해결책으로 ‘대수도론’을 주장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할 일 많은 경기도, 일 잘하는 김문수’를 도민들에게 약속한 그로서는 그런 바쁜 일정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지난 12월 1일 경기도청 집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김 지사는 무엇보다도 국회의원 시절 느끼지 못했던 점들을 도정을 통해 절감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국회의원들에게 집권타령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국민을 위해) 자기 일을 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쓴소리를 던지는가 하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선 “대통령은 고독한 자리고 도지사 또한 혼자 결정할 사항이 많은 외로운 자리”라며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고 동병상련도 느낀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지사는 당적 문제 등 최근 노 대통령의 일련의 발언과 관련해 “대통령은 정당 부분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말고 외교·안보·경제에 대해 좀 더 신경 써야 한다”며 “그게 대권의 고유영역이며 대통령의 본분”이라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여권의 신당 창당 움직임에 대해서도 그는 “정당은 오랫 동안 지속성과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면서 “신장개업 하듯 간판만 바꿔 단다고 잘 되는 것은 아니다”고 비판했다.
국회의원 시절의 다소 날카로워 보이던 이미지를 기억하고 있어서였을까. 가까이서 만나본 김문수 지사는 화면에서보다 훨씬 선한 인상이었다. 김 지사는 인터뷰에 앞서 “이 책은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라며 책장에 꽂혀 있는 커다란 책을 가져와 펼쳐 보였다. 경기도지사직에 취임한 뒤 도내의 모든 하천에 대한 정보를 지도와 함께 정리한 책자라고 한다. 집 앞에 흐르고 있는 자그마한 하천의 이름도 모르고 있던 기자는 김 지사의 친절한 설명으로 ‘내가 사는 마을’에 대한 작은 정보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김 지사는 인터뷰 초반 기자의 짧은 질문 하나에도 경기도에 관한 얘기들을 술술 풀어냈다.
─도지사에 취임한 지 5개월여가 지났다. 소회가 남다를 듯한데.
▲한마디로 얘기하면 ‘할 일은 많고 경기도는 넓다’이다(웃음). 경기도는 넓고 다양하고 그 안에서 할 일은 너무도 많다. 규제철폐, 신도시, 뉴타운정책, 팔당상수원, 도로교통 등 내가 핵심적으로 내세웠던 몇 가지 과제가 있다. 하지만 그밖에도 경기도 지역 곳곳을 다녀보면 할 일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국회의원 시절 스포트라이트를 자주 받았다면 경기도지사로서는 언론의 관심권에서 다소 멀어진 느낌이다. 경기도지사로서 느끼는 바도 여러 가지 면에서 과거와 다를 것 같은데.
▲‘경기도의 눈물’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서울시청에 잔디를 깔 때하고 경기도에 신도시를 만든다고 할 때 더 주목을 받는 것은 서울시청에 잔디를 깔 때다. 이곳은 그야말로 ‘지방’이다. 대통령 주재 회의에 들어가면 서울시장, 부산시장, 대구시장 등에 이어 울산시장 옆에 내가 앉는다. 일곱 번째 자리다. 그런데 행정에 있어서는 ‘조용한’ 것이 잘하는 것이다. 스포트라이트는 사고가 터져야 받게 되는 법 아닌가. 그런 면에서는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본다(웃음).
─이제 국회 밖에서 국회를 들여다보는 입장인데 어떤 생각이 드나.
▲국회는 아주 높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회의원들은 법을 만들고 다루기 때문에 그만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내가 국회의원들을 만나면 ‘어유, 높으신 분들’이라며 고개를 숙인다. 국회의원이 그렇게 높고 중요한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웃음). 국회의원들 하는 소리를 들으면 ‘우리가 뭐 할 일이 있나. 집권이나 해야지’ 그런다. 그러면 내가 ‘집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금 자기 할 일을 해야지 집권한다고 달라질 줄 아나. 집권 타령이나 해서 무슨 일이 되겠나. 대통령이 요즘 힘이 빠졌다고 하는데 바로 그런 국회의원들 때문이다. 대통령도 ‘못 해먹겠다’는 말이 나오도록 하는 게 바로 대한민국 국회의원들 아닌가.
─얘기가 나온 김에 묻겠는데 요즘 노무현 대통령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청와대 회의에 가서 대통령을 보면… 이분이 자기 독백을 많이 한다. 한번은 시도지사·장관들 모두 배석한 회의 자리에서 이런 말씀을 했다. ‘일자리를 만들려면 예산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세법을 바꾸어야지. 내 임기가 1년밖에 안 남았고 레임덕 얘기도 나오는데 이게 국회 통과가 되겠나. 그러니까 시도지사님들이 좀 도와달라’고 말이다. 이 분이 독백처럼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면 참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고독한 자리다. 도시자 또한 혼자 결정할 사항이 많은 만큼 외로운 자리다.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고 처지가 비슷하니 동병상련도 느낀다. 공무원들도 내 앞에서는 말을 잘 안 한다. 뒤에서 쑥덕쑥덕하지(웃음).
─노 대통령이 한때 당적 포기를 시사해서 문제가 되었는데 탈당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대통령께서는 정당 부분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말고 외교·안보·경제에 대해 좀 더 신경 써야 한다. 그게 대권의 고유영역이며 대통령의 본분이라고 본다. 정당 이야기를 하게 되면 어차피 반대세력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본인이야 당연히 자신이 만든 당을 나가고 싶진 않을 것이다. 그것을 주된 이슈로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 정당은 상당히 도구화되어 있는데 정당은 오랫 동안 지속성과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신장개업 하듯 간판만 바꾸어 단다고 잘 되는 것이 아니다.
─홍준표 의원의 ‘반값아파트’ 정책에 대한 의견은.
▲ 김문수 지사는 노무현 대통령에 동병상련을 느낀다고 말하면서도 “대통령은 정당문제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외교, 안보, 경제에 더 신경 써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위는 인터뷰하는 모습. 아래는 8월 국정현안 시도지사 토론회. | ||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도지사 역시 이 문제에 관해 목소리를 높여왔는데.
▲핵은 불용해야 한다. 북한이 같은 민족이므로 핵을 보유하는 것이 어떠냐는 주장은 잘못된 민족주의다. 우리가 핵을 가지려고 하면 일본이 더 많은 핵을 가지려고 할 테고 대만도 가지려고 할 것이다. 그럼 한반도 주변이 모두 핵으로 무장될 것이고 더 이상 무기로서의 의미를 잃을 것이다. 그런 싸움을 계속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핵에 대해서는 확고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부가 유엔인권결의안을 찬성한 일은 아주 잘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김 지사는 탈북자 지원 혐의로 체포돼 징역 5년형을 받고 중국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최영훈 씨로부터 전해들은 북한의 처참한 인권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김 지사는 의원 시절이던 2005년 1월 최 씨를 면회하기 위해 중국 산둥성 웨이팡 교도소를 방문하기도 했다. 최 씨는 수감생활 3년 만인 지난 11월 29일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현재의 한나라당, 열린우리당을 둘러싼 정치현안에 대한 의견도 들어보았다. 한나라당 ‘빅3’에 대한 개인적 선호도를 묻는 질문에 김 지사는 “개인적으로야 손학규 전 지사와 가장 친하지만 누가 되더라도 잘하실 거라고 본다”고 대답했다. 그는 “(손 전 지사의 지지율이 낮은 것에 대해) 답답하지. 하지만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까”라며 말을 아끼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박근혜 전 대표가 내놓은 ‘한·중 열차 페리’ 구상은 앞서 김문수 지사가 발표한 바 있어 화제에 올랐다.
─김 지사 또한 이미 평택항과 중국을 연결하는 구상을 밝힌 바 있지 않나. 박근혜 전 대표의 ‘열차 페리’ 계획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인데.
▲일맥상통이 아니라 (내가) 원조지(웃음). 그 아이디어는 리빈 전 주한 중국대사가 산둥성 위해시의 부시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찾아와 제안한 것이었다. 위해와 평택을 연결하는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는데 문제는 평택역에서 평택항까지 이어지는 철도가 없다는 점이다. 이 부분을 건교부와 논의하고 있다.
─박 전 대표가 대선공약으로 ‘선진화 전략’을 내세우고 있는데 김 지사 또한 이 부분을 여러 차례 얘기한 바 있다.
▲그것은 역사적 시대적 국가적 과제다. 다만 난 지사가 된 이후에 ‘선진화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박 전 대표 또한 그 생각에 공감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선진화보다 통일이 중요하다고 주장하지만 그건 아니다. 선진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통일도 뒤따를 수 있다.
─얼마 전 박정희 전 대통령의 피살 당시 만세를 불렀던 일을 후회한다고 밝혔는데.
▲나는 누구보다도 박 전 대통령에 의한 피해자다. 고3 때 박 전 대통령의 삼선개헌을 반대해 무기정학을 당했고 대학 때는 부정부패를 비판하다가 제적당했다. 그래서 당시 만세를 불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대한민국을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대한민국의 기틀을 만든 인물이다. 다만 독재, 군사쿠데타, 삼선개헌, 유신은 잘못된 것이다. 민주화의 측면에서 보면 내게 적이었지만 경제발전, 근대화의 측면에서는 어떤 경제학자보다 앞선 것이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최근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병적기록부’의 청력 기재란이 지워진 것이 공개됐는데 원본을 공개할 의향은 없나(KBS 시사프로그램 <쌈>은 지난 11월 27일 방송분 ‘파워엘리트, 병역을 말하다’에서 김 지사 병역 의혹을 재점검했다. 김 지사는 ‘중이근치술 후유증’으로 인한 군 면제로 논란에 시달린 바 있다).
▲그 프로그램은 보지 못했다. 정말 삭제가 되어 있었나. 그 기록을 개인이 볼 수도 없고 모르고 있었다. 공문서를 삭제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내용을 보고 검토해 보겠다.
끝으로 김 지사에게 ‘경기도지사로서 꼭 이루고 싶은 일’에 대해 질문을 던지자 그는 조용히 벽에 걸린 슬로건을 가리켰다. 액자 안에는 ‘경기도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엽니다’라는 문구가 씌어 있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