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 마지막 왕조의 왕궁. 만달레이 시내에 있다.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사람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흰 비둘기는 얼마나 드넓은 바다를 건너야/모래밭에서 편히 잠들 수 있을까
최근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수 밥 딜런. 그의 노래 ‘바람만이 아는 대답’의 첫 귀절입니다. 1962년 단 10분 만에 썼다는 노래. 그의 수상은 언어로 쓴 순수문학에 주어지던 노벨문학상이 그 영역을 어디까지 확대할지 모를 의문을 남겼습니다. 노래와 가사는 서로 엇갈리면서도 그 무엇을 주고받으며 감동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독립적으로 따로 떼놓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만달레이로 가는 길에서 노벨문학상과 관련되어 크게 비교되는 두 작가를 생각합니다. 두 작가 모두 미얀마 만달레이를 무대로 작품을 썼습니다. <정글북>의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Rudyard Kipling). 그는 1907년 영어권 작가로는 처음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1890년 이곳 미얀마로 여행하며 ‘만달레이’란 시를 썼습니다. 키플링은 인도에서 지내다 영국으로 귀국하며 잠시 미얀마 몰레먀인에 머물렀습니다. 이 항구도시의 언덕에서 아리따운 버마 처녀를 보았고 그 시의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그 시의 제목인 만달레이는 가보지 못했습니다. 양곤과 만달레이는 700km가 넘는 거리입니다. 당시 영국 군인들은 이라와디강을 따라 증기선으로 오르내렸습니다. 당시의 사진들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식민지 시절 영국정부 관저였던 거버너 하우스 내부에 붙은 당시 사진들.
버마의 옛 수도 만달레이. 우리나라로 치자면 경주같이 역사가 숨쉬는 곳입니다. 마지막 왕조의 왕궁도 여기 있습니다. 경주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 도시가 지리적으로 미얀마 중앙에 있다는 것입니다. 영국 식민지 시절, <동물농장>의 소설가 조지 오웰은 이곳 만달레이에서 13개월을 살았습니다. 그의 작품 <1984>는 아직도 미국 대학생들의 구독도서 1위로 꼽히지만 노벨문학상을 받진 못했습니다. 조지 오웰은 1922년 영국 리버풀을 떠나 양곤에 도착해 증기선을 타고 만달레이까지 왔습니다. 이곳에서 식민지 경찰훈련을 받고 5년간을 보내게 됩니다. 임무를 끝내고 돌아가 필명으로 처녀작을 썼습니다. 1934년작 <버마에서의 나날들, Burmese Days>. 그의 본명은 에릭 블레어였지만 그 필명이 현재의 조지 오웰이 되었습니다. 이 소설의 배경은 이라와디강 상류의 작은 마을 카사입니다. 지금도 그가 묘사한 것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영국 제국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만달레이 생활상도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또한 키플링을 ‘제국주의의 시인’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거버너 하우스는 현재 미얀마에서 가장 비싼 숙소 중 하나다.
낯설지만 정을 붙여야 할 도시 만달레이. 저는 이곳에 중부와 북부지역의 청년들을 위한 교육센터를 세우기 위해 왔습니다. 그 옛날 이렇게 먼 나라 구석까지 왔던 키플링과 조지 오웰. 그러나 이 도시를 한번도 구경하지 못한 양곤의 공동체 학생들. 그래서 이별을 위한 선물을 준비합니다. 며칠 후면 정든 학생들이 대절한 버스로 이곳에 옵니다. 같이 자고 먹고 이 도시와 주변 명소를 같이 여행을 합니다. 첫사랑 양곤은 저만치 두고 저는 왜 이리 멀리 왔을까요? 로비 윌리엄스가 부른 ‘만달레이 가는 길’ 가사처럼.
내가 만졌던 모든 것은 금빛으로 변했고/사랑했던 모든 것은 사라져버렸어/세상에서 가장 슬픈 곳/만달레이로 가는 길에…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