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4년 <얼굴없는 미녀> 개봉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김혜수가 특유의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이 영화로 김혜수는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 ||
게다가 20여 년 동안 연예인으로 지내오면서 그는 사생활이나 말 실수 등으로 구설수에 오른 경우도 거의 없었다. 굳이 찾자면 파격적인 노출 의상이 가끔 화제가 된 것인데 이 역시 그만의 색다른 매력 발산법 정도로 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20여 년 동안 배우로서 활동해온 그의 발자취는 필모그래피에 빼곡히 기록돼 있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땀과 노력으로 써내려간 필모그래피를 통해 배우 김혜수의 진정한 모습을 들여다본다.
혜성처럼 등장한 데뷔 시절
영화 <깜보>를 통해 박중훈과 함께 혜성처럼 스크린에 데뷔한 김혜수는 당시 최고의 신인 배우로 충무로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지금의 뇌쇄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모습과 달리 당시 영화 속의 김혜수는 열 다섯 살 중학생의 풋풋함이 느껴진다.
영화 <깜보>로 그해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차지한 김혜수는 다음해 브라운관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 89년 KBS 연기대상 신인상까지 독차지하며 한국 연예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신성의 존재를 만천하에 알렸다. 영화와 드라마로 연이어 신인상을 수상했다는 얘기는 곧 그가 스타덤에 오르는 동시에 배우의 가능성까지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된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한 이후 김혜수는 좀 더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펼치기 시작한다. 이어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 <첫사랑> <잃어버린 너>, 드라마 <순심이> <한지붕 세가족> 등에 출연했는데 93년엔 영화 <첫사랑>으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더 이상 혜성이 아닌 어엿한 행성으로 거듭났음을 스스로 입증시켰다.
건강미로 새로운 이미지
김혜수가 배우로서 뚜렷한 연기 색깔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은 지난 95년부터였다. 풋풋한 여고생에서 상큼한 여대생 시절을 거쳐 20대 중반의 나이에 접어들며 ‘건강 미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그가 연기에서도 건강미 넘치는 활발한 여성상을 선보이기 시작한 것.
그 계기는 영화 <닥터 봉>과 드라마 <짝>으로 이 두 작품에 출연한 95년이 그의 필모그래피에 커다란 분수령이 됐다. 10년 가까운 연기 경력을 가진 그이지만 당시만 해도 김혜수에게는 배우라는 이름보다는 연예인이라는 호칭이 더 어울렸던 게 사실이다. 그 시절 연예계에선 인기 절정의 여자 배우라면 당연히 청순한 이미지로 멜로물에 출연하는 게 하나의 법칙처럼 받아들여졌는데 이는 한계가 분명하다. 이런 법칙에 충실한 여배우 대부분이 20대 중반에서 30대로 넘어가는 사이에 하나 둘 연예계에서 멀어져갔기 때문. 어찌 보면 위기의 순간이지만 김혜수는 자신만의 건강한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연기로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냈다. 김혜수 본인도 “15세에 데뷔해 연기를 시작했지만 배우로서의 자의식을 갖게 된 것은 20대 중반부터”라고 회상한다.
다행히 <닥터 봉>과 <짝>은 모두 흥행에서도 좋은 성적을 올렸으며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 MBC 연기대상 대상을 잇달아 수상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음을 과시했다. 다시 시작된 상승세는 영화 <미스터 콘돔> <찜>, 드라마 <복수혈전> <미스&미스터> 등으로 이어졌다.
▲ 위에서부터 박중훈과 함께한 데뷔작 <깜보>, 통통 튀는 모습을 선보인 드라마 <짝>, 진중한 연기에 도전한 드라마 <국희>, 과감한 노출연기로 화제를 모은 영화 <얼굴없는 미녀>. | ||
자신만의 뚜렷한 연기 색깔로 터닝 포인트를 만든 김혜수는 99년 또 한 단계 진보하며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건강 미인으로 업그레이드됐다. 계기가 된 작품은 두 편의 MBC 드라마인데 우선 그에게 MBC 연기대상 최우수상의 영예를 안긴 드라마 <국희>에서 타이를 롤을 맡은 김혜수는 탄탄한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그가 진정한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은 계기는 비록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마니아 팬들의 절대 지지를 받은 드라마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를 통해서였다. 2002년에는 KBS 대하사극 <장희빈>에서 또 다시 타이틀 롤을 맡은 김혜수는 탄탄한 연기력을 선보이며 그해 KBS 연기대상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2001년 영화 <신라의 달밤>을 통해 스크린에서도 흥행성을 인정받은 김혜수는 <쓰리>
이 시기에 대해 김혜수는 “방송과 영화의 트렌드에 부응하던 연기자였을 뿐이던 내가 이즈음부터 배우로 거듭나기 시작했다”며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찾아낸 감독들과 배우로서 지속적인 도전을 거듭한 내 노력이 좋은 조화를 이뤄냈다”고 얘기한다.
비슷한 시기에 김혜수는 과감한 노출 패션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2000년 한국패션사진기자협회 포토제닉상을 수상하며 패션 리더로 인정받기 시작한 김혜수는 2002년에 열린 23회 청룡영화제에서 사회를 맡아 과감한 노출 패션을 선보여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후 김혜수는 5년 연속 청룡영화제 사회를 맡고 있는 데 매해 그가 입고 나오는 노출 패션이 화제가 되고 있다.
워낙 볼륨감 넘치는 몸매의 소유자인 까닭에 대한민국을 대표할 만한 수준의 섹시 스타가 될 요건을 충분히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김혜수는 다소 노출을 기피하는 여배우로 분류돼 왔다. 그러나 청룡영화제 사회를 맡으며 선보이기 시작한 노출 패션으로 인해 비로소 진정한 섹시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 지난 2003년 청룡영화제 MC로 등장하던 모습. 역시 ‘파격’이란 말이 어울린다. | ||
연예계에 누드 광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세간의 이목이 김혜수에게 집중됐다. 연예계 최고의 섹시 아이콘으로 부각된 그가 언제쯤 누드 대열에 동참할지에 관심이 집중된 것. 소문으로는 김혜수에게 10억 원을 베팅하며 누드 촬영을 제안한 업체가 있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어쩌면 노출 역시 김혜수에게는 뛰어 넘어야 할 장벽이었는지도 모른다. 김혜수는 “90년대 후반부터 내가 배우로서 자질이 부족하단 걸 절감했다”고 얘기한다. 심지어 배우의 길을 그만 둘까 고민했을 정도라고. 건강 미인을 앞세운 연기 색깔에도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해 폭넓은 연기 변신을 위해선 노출이 불가피했다. 출연 제안이 로맨틱 코미디로 제한될 수밖에 없는 데다 캐릭터도 비슷해 자칫 잘못하면 보는 이들을 질리게 만들 수 있기 때문.
그리고 2004년 영화 <얼굴없는 미녀>를 통해 최초의 노출이 이뤄졌다. 철저히 상업성을 배제한 노출이었다. 실제 누드를 촬영했다면 대박이 가능했고 충분히 영화 흥행을 위한 눈요깃감으로 노출을 시도할 수도 있었지만 김혜수는 작품성에 더 큰 의미를 둔 작품에서 처음으로 감춰진 속살을 드러냈다. 다소 어려운 내용의 영화인 탓에 흥행엔 실패했지만 작품성에선 좋은 점수를 받았고 특히 김혜수의 연기 변신도 돋보인 작품이었다. 이 영화로 김혜수는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드라마 <한강수타령>, 공포영화 <분홍신> 등을 통해 상승세를 이어간 김혜수는 지난해 최대 흥행작인 <타짜>에서 팜므파탈 역을 훌륭히 소화하며 통산 세 번째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또 한 번의 노출로 화제를 모은 <타짜>를 통해 김혜수는 <뉴욕타임스>로부터 ‘에바 가드너’의 몸매를 가진 ‘리 마빈’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할리우드에서 에바 가드너는 미모의 여배우를, 리 마빈은 최고의 성격파 배우를 의미한다.
올 초 그가 출연한 영화 <바람피기 좋은 날> <좋지 아니한가>가 연이어 개봉되고 요즘엔 영화 <열한번째 엄마>에서 창녀 역할을 소화하고 있는 등 현재 김혜수는 충무로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여배우이기도 하다.
20여 년 동안 걸어온 연기자의 길에 대해 김혜수는 “재능에 대한 의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고 얘기한다. 겸손의 표시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그가 끊임없는 자기 개발과 변신으로 지금의 자리에 섰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앞으로 또 20년, 다시 20년 끊임없이 좋은 연기를 선보일 수 있길 바란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