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 한 자리에서 만난 윤종용 삼성 부회장과. | ||
진 전 장관의 측근은 ‘벤처투자회사 경영에 매진하기 위해 하이닉스행을 거절한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나 얼마전 까지만 해도 진 전 장관은 하이닉스행을 희망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까닭에서 ‘뭔가 다른 배경이 있을 것’이란 시선이 늘고 있다.
재계 일각엔 진 전 장관과 하이닉스 측의 사전 접촉설이 퍼져있었다. 세계적인 반도체 전문가인 진 전 장관에 대한 하이닉스의 공식 제안이 진 전 장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이닉스 노조를 중심으로 “외부인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하이닉스 내부 정서 또한 진 전 장관의 속을 불편하게 한 대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퇴 배경을 하이닉스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진 전 장관의 행보를 불투명하게 만든 요인은 아직도 진 전 장관을 향해 뜨거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외부세력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선을 앞두고 야권에 대적할 대통령 후보를 찾는데 애를 먹고 있는 범 여권 통합신당 추진 세력은 여전히 진 전 장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신화를 일군 전력에 장관직 경험까지 갖춘 진 전 장관의 상품성은 이미 야당 인사들과의 여론조사 경쟁에서 번번이 눌려온 여권 내 기존 잠룡들보다 앞선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이런 까닭에서 진 전 장관의 이번 하이닉스 사장 후보 사퇴 배경을 정치권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진 전 장관은 그동안 언론 인터뷰와 측근을 통해 ‘정치에 관심 없다’는 뜻을 밝혀왔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진 전 장관은 지난해 지방선거에도 나서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결국 설득돼 선거에 나섰다’며 미련의 끈을 놓지 않는다.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진 전 장관은 여권의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이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면서 진 전 장관은 경기도지사 후보가 됐다. 일각에선 ‘당초 기대했던 서울시장보다 무게감이 다소 떨어져 보일 수 있는 경기도지사직에도 나선 바 있다’며 ‘얼마나 집요하게 진 전 장관을 설득하는가에 따라서 정치권행 여부가 갈릴 것’이라 기대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진 전 장관에 대한 관심은 비단 여권의 일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는 지난 1월 29일 KBS라디오 <안녕하십니까 이몽룡입니다>에 출연해 ‘훌륭한 여권 인사 영입론’을 주장하며 강봉균 의원과 더불어 진 전 장관을 거론하기도 했다. 진 전 장관 측의 의도와는 무관한 것이었겠지만 야권에서도 진 전 장관의 영향력을 인정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던 셈이다.
재계에선 아무래도 삼성이 진 전 장관의 향후 행보를 제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지난 1월 삼성의 정기임원 인사가 당초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재계 일각엔 ‘삼성이 진 전 장관 영입 협상을 벌이느라 인사를 지연시키고 있다’는 관측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 같은 시각은 삼성그룹 후계자인 이재용 전무 시대를 열 조타수로 삼성 측이 진 전 장관을 지목했다는 가정하에 나온 것이다. 기존의 이학수 부회장이나 윤종용 부회장이 모두 이건희 회장 시대 인물이란 점에서 이재용 전무 시대엔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까닭에서였다. 진 전 장관에 대한 이건희 회장의 총애가 두터웠고 이재용 전무와도 각별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져 진 전 장관 재영입설이 거론된 것이다. 이 전무가 정보통신 사업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져 진 전 장관 중용설이 힘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 정기인사가 행해지면서 이 같은 관측은 일단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쳤다. 진 전 장관의 삼성행 관측이 불발로 끝나자 업계 호사가들은 ‘이재용 시대’의 조타수로 진 전 장관 대신 최지성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사장을 주목하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의 진 전 장관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 반도체 신화 주역인 진 전 장관이 다른 기업으로 갈 경우 삼성 측은 좌불안석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삼성은 임원급 인사가 퇴직할 경우 현직일 때와 같은 처우를 일정기간 제공한다. 삼성만의 핵심기술이나 사내 주요 정보의 외부유출을 막는 일종의 보험인 셈이다.
일각에선 ‘삼성이 진 전 장관의 정치권행도 반기지 않을 것’이라 보기도 한다. 삼성 내부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진 전 장관이 정치무대에 만연한 반 삼성 정서에 휩쓸려갈 경우를 상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시각 때문에 업계 인사들은 삼성의 진 전 장관 재영입 가능성을 간과하지 않는다.
업계 인사들 사이에선 진 전 장관이 한때 몸담았던 IBM을 비롯한 유수의 외국업체들이 진 전 장관에게 추파를 던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정통부 장관을 지낸 인물의 외국 기업 진출은 국내 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로 여겨진다.
한편 KT KTF SK텔레콤 LG텔레콤 등 정보통신 업체들도 진 전 장관의 행보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업계 인사들 사이에선 ‘정보통신 업계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진 전 장관의 행보에 따라 업체들도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진 전 장관에 대해 지난해부터 꾸준히 제기된 정치권 진출설, 삼성의 재영입설, 그리고 타 기업행 가능성 등은 정보통신 업계 정보수집 담당자들이 항상 안테나를 기울여야 하는 사안으로 전해진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