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현실정치와 조금 떨어져 민생행보에 주력하고 있는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만났다. 하지만 대권을 향한 그의 굳은 의지만은 변함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던진 일성이다. 고건 전 총리가 낙마한 후 범여권 대권주자로서는 지지도 1위지만 그 지지율이란 것이 한자리수로 미미하다. 바람직한 범여권 대권후보를 묻는 질문에는 한나라당 손학규 전 경기지사에게도 뒤진다. 더구나 민주당에게는 ‘분당 원흉’처럼 취급받으며 외면당하고 친노그룹과도 다른 행보를 보이며 ‘언젠가는 탈당할 제1 후보’로 꼽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정 전 의장은 오히려 현실 정치에서 한 발 떨어진 채 묵묵히 민생 행보에 주력하고 있다. 당 주변에선 여전히 정 전 의장을 겨냥한 기득권 포기 압박과 호남 필패론이 나돌고 있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독자적인 대권행보를 걷겠다는 자세다. 대어를 낚기 위해 기다림을 즐기는 강태공처럼 조급함을 버리고 차분히 대권 낚기에 나서고 있는 분위기다.
정 전 의장은 5일 <일요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품고 있는 대망론의 실체를 드러냈다. 어떤 경우에도 대권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엿볼 수 있었다. 한나라당 내 후보 검증 논란 와중에도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 대해서는 도덕성 흠결을 이유로 “후보 자격이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고 열린우리당이 바닥권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개혁 모험주의와 낡은 정치 철학 때문이라며 노무현 대통령과 친노개혁파를 겨냥하기도 했다.
―‘탈 여의도 정치’를 표방하면서 민생행보에 주력하고 있는 배경은.
▲열린우리당이 국민으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실생활·현장중심 정치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2004년 초대 당 의장 시절부터 ‘몽골기병론’과 함께 민생현장 정치를 주창해 왔다. 부동산 정책 같은 탁상공론식의 정책은 이제 국민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정치인이나 공무원 모두 현장형 리더십을 터득해야 한다.
―현장에서 피부로 느낀 민심 기류는 어떤가. 또 국민들이 차세대 정치지도자에게 가장 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더불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해 있는 것 같았다.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하지만 희망과 비전도 보았다. 탁상논리가 아닌 현장 중심의 좋은 정책을 입안하고 중소기업과 서민·중산층이 잘 사는 경제 강국을 만들 수 있는 정치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다.
―“정동영의 정치를 하겠다”고 천명했는데 정 전 의장이 지향하고 있는 정치 비전 및 미래구상은 무엇인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공간적 개념으로서의 평화체제 구축이고, 또 하나는 민생경제 중심의 경제 대국을 이루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국가적 미래 과제로 교육의 일대 혁신을 일궈내는 것이다. 정동영이 지금까지 정치를 하고 있는 이유이자 미래의 정치 지향점이기도 하다.
―열린우리당이 지난달 28일 대통합신당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통합신당 활동에 들어갔는데 열린우리당 중심의 범여권 통합신당이 성공할 것으로 보나.
▲앞장서고 있는 분들이 합리적으로 잘 추진하리라고 생각한다. 현재 백의종군하고 있는 입장에서 신당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다만 통합신당의 정체성과 노선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은 현장 속에서 직접 몸으로 일깨우고 있다.
―최근 정 전 의장계로 분류되고 있는 의원들이 새 지도부의 노선이나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어 통합신당 작업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은데.
▲나는 지금까지 계보정치를 한 적이 없다. 친정동영계로 분류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정동영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열린우리당은 현재 정치적 과도기에 돌입했다. 노선과 정책면에서 각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본다. 다만 통합신당을 추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쪽으로 잘 협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탈당사태와 관련해 창당 주역이자 전직 당 의장이었던 정 전 의장의 책임론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데.
▲당 의장을 두 번이나 역임한 사람으로서 무한책임을 느낀다. 통합신당을 주도하지 않고 있는 것도 일종의 기득권 포기다. 또한 신당이 잘 되도록 지원하는 것도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정 전 의장도 결국 탈당을 선택할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은데 이에 대한 솔직한 의중은 무엇인가.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 범여권 통합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선택하고 결정할 것이다.
▲지난 연말 독일에서 귀국한 직후 통합신당 문제와 관련해 노 대통령의 불개입·불간섭을 처음 주장했다. 노 대통령도 결국 신당에 도움을 주고자 탈당을 선택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현재 열린우리당은 암초에 걸려 표류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탈당 이후 열린우리당 일각에서는 민주당과의 선통합론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범여권 통합신당으로 가는 기술적인 문제라고 본다. 우리 정치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 지역주의 문제도 점증적으로 완화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패권적 지역주의와 저항적 지역주의는 엄연히 다르다. 누구를 위한 통합이고 무엇을 위한 신당인지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추진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권노갑 전 고문 등 과거 민주당 실세들과 관계가 좋지 않아 호남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하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이란 시각이 적지 않은데.
▲참여정부 출범 후 대북송금 특검법을 막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을 가지고 있고 몇몇 관계자들에게는 사과 표시도 했다. 권 전 고문이 옥고를 치를 때 면회도 갔고 사면된 후에 만나기도 했다. 인간적으로 미안함을 표시했다. 박지원 전 장관에게도 전화로 위로의 뜻을 전했다.
정풍운동은 사감이 아닌 정치 발전 차원에서 전개했던 것이다. 권 전 고문도 이러한 나의 뜻을 잘 이해하고 있다. 권 전 고문은 특히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노선을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 대안은 정동영이라며 내가 대선에 출마하면 적극 돕겠다는 말도 했다.
―정 전 의장을 비롯한 범여권 대권주자들의 지지율이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근본적인 이유와 해법을 제시한다면.
▲솔직히 표현하자면 우리가 못나서 그런 것이다. 창당 초심을 잃어버리고 민생과 현장정치 노선을 놓친 게 결정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실용 대 개혁 갈등이 증폭됐던 것도 문제다. 끊임없이 적을 양산한 개혁 모험주의와 낡은 정치 철학도 민심을 떠나보내는 주 요인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등 범여권 제3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인사들에 대한 영입 경쟁이 치열한데 이들 제3후보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나.
▲정 전 총장은 국민적 신망도 두텁고 여러모로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참신하고 새로운 인물이 함께하면 신당의 시너지 효과도 클 것이다. 다만 정 전 총장은 새로운 배를 만드는 데 주체적으로 참여해 통합신당의 한 축을 이뤄야 한다고 본다.
―제3후보가 통합신당에 합류할 경우 정 전 의장과는 경쟁자 관계가 되는 것이 불가피할 텐데.
▲지금은 경쟁 관계를 논할 때가 아니라고 본다. 우선은 통합세력이 똘똘 뭉쳐 ‘통합신당’이란 배를 건조하는 게 급선무이고 누가 선장이 될지는 배가 진수된 이후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나라당 내 검증 논란 와중에도 이명박 전 시장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비정상적인 쏠림현상에 불과하다. 검증의 잣대는 상식의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 선진국 같으면 돈 선거 혐의 등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한 사람이 대권후보가 될 수 있겠는가.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도덕성을 대표하기도 한다. 이회창 전 총재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언론도 엄격한 도덕적 잣대로 대선후보들의 검증 작업에 적극 나서야 한다.
―범여권 통합세력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호남후보 필패론’에 대한 견해는.
▲지독한 지역주의 변형이자 과거 회귀적 사고다. 어느 지역 후보는 되고 특정 지역의 후보는 안 된다는 주장은 언어도단이다. 호남에서 태어난 사람은 대권을 꿈꾸면 안 된다는 것인가. 호남지역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 넣지는 못할망정 좌절감을 안겨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차기 대선후보가 갖춰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또 자신은 그 덕목을 갖췄다고 보나.
▲나는 전후 세대이면서 증오와 대립이 아닌 포용과 화합을 지향하는 정치인이다. 차기 대선은 과거행 열차를 타느냐 아니면 미래형 고속열차에 탑승하느냐를 선택하는 매우 중요한 선거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평화체제 구축과 양극화 해소, 그리고 교육문제를 혁신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또 차세대 정치지도자는 포용과 통합시대를 이끌어 갈 21세기형 정치철학을 겸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청장년 시절 기자 생활을 하면서 현장에서 서민 눈높이로 열린 사고를 키워왔다. 또 통일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중장기 구상도 마련해 놓고 있다. 여타 주자들과 분명한 차별점이 있고 국민들의 행복지수를 끌어 올릴 수 있는 자신감도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