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청와대 내부의 쇄신 작업도 주도면밀하게 진행하고 있다. 임기말 자칫 해이해질 수 있는 근무기강을 바로잡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이는 참여정부의 최대 장점 중 하나인 ‘깨끗하고 투명한 청와대’ 이미지를 끝까지 유지해 달라는 노 대통령의 강한 의지도 투영돼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문 실장이 노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는 점에 비춰볼 때 문 실장이 주도하고 있는 비서실 쇄신 작업은 정부 부처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임기말 레임덕 현상이 없는 국정운영을 구상하고 있는 노 대통령과 문 실장이 권력을 지탱하는 원동력인 공직사회를 단단히 틀어 쥘 작업에 적극 나설 것으로 관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 실장이 주도하고 있는 분위기 쇄신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문 실장 자신이 ‘부산파 대부’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만큼 청와대 내 비토세력의 저항 또한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여기에 실질적 여당으로 정치적 버팀목 역할을 해주고 있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추가 탈당 움직임이 감지되는 등 범여권 정개계편 문제가 여전히 짙은 안개속에 묻혀 있다는 현실도 부담일 수밖에 없다.
어쨌든 문 실장은 친구이자 동지로서 노 대통령과 정치적 운명을 함께할 수밖에 없는 참여정부의 ‘마지막 비서실장’이라는 어려운 일을 떠맡게 됐다. 노 대통령은 왜 청와대 마지막 구원투수로 문 실장을 선택했을까. 더불어 노 대통령이 구상하고 있는 임기말 국정운영 밑그림과 맞물린 문 실장의 임기말 청와대 운영 청사진을 살펴봤다.
문 실장은 현 정부 출범 이후 ‘노의 남자’로 불리며 참여정부 핵심 실세로 자리매김했다. 민정수석-시민사회수석-민정수석-비서실장에 이르기까지 그는 한시도 떠나지 않고 늘 노 대통령 지근거리에 있었다. 건강 등을 이유로 두 차례 청와대를 떠나긴 했지만 노 대통령은 그를 오래 쉬도록 놔두지 않았다. 청와대 주변에선 오래전부터 ‘마지막 비서실장은 문재인’이라는 말이 나돌았고 결국 현실화됐다. 노 대통령이 문 실장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고 또 필요로 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처럼 노 대통령의 절대적 신뢰를 받고 있는 문 실장이지만 그는 그동안 조용한 보좌역할에 충실했다.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라는 세간의 이목이 부담스럽기도 했겠지만 원래 그는 외유내강형이다. 드러내놓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업무에 열중하는 스타일이다. 과거 정권 실세들과는 달리 지금까지 문 실장이 크고 작은 구설수에 오르내리지 않았던 배경에는 온화함과 겸손함을 지향하는 그의 성격이 자리잡고 있다.
문 실장의 또다른 장점은 권력을 좇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사석에서 “노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결코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비정치적 성향 인사로 평가받고 있다. 문 실장은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으로 청와대에 입성할 당시 “1년 정도만 일하고 변호사 길을 걷겠다”고 말한 바 있다. 문 실장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노 대통령의 간청 등으로 당초 계획은 지키지 못했지만 정치에 뜻이 없는 그의 사심을 반영하고 있다. 문 실장이 지난 2004년 2월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민정수석에서 물러난 배경을 유심을 들여다보면 그의 비정치적 성향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게 한다.
당시 여권이었던 열린우리당은 불리한 총선 판세를 극복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에게 총선 출마를 요구했다. 문 실장도 그 대상에 포함됐지만 그는 불출마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다급한 여권 강경파 의원들을 문 실장을 강하게 성토했고 급기야 노 대통령의 측근인 염동연 의원은 “‘왕수석’ 노릇하니까 계속 하고 싶은 것인가”라며 문 실장에 대한 인신공격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문 실장은 건강과 업무적 중압감을 이유로 사퇴를 했지만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반영된 선택으로 해석됐다.
▲ 지난 14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를 예방한 문재인 비서실장. | ||
이처럼 노 대통령은 사심 없이 자신의 국정운영을 보좌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측근으로 문 실장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문 실장과의 관계에 대해 서슴없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말할 정도로 문 실장을 극찬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두 차례 청와대를 떠난 문 실장을 설득해 다시 청와대에 복귀시키고 임기말은 물론 자신의 퇴임후 거취 문제까지 챙겨야 하는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문 실장을 선택한 사실에서 문 실장에 대한 노 대통령의 변함없는 신뢰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이심전심이었을까. 문 실장도 노 대통령의 이러한 믿음에 보답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조용하고 차분한 국정보좌 역할에 만족하지 않고 노 대통령을 대신해 비서실은 물론 공직사회 기강잡기에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는 분위기다.
문 실장의 강한 의지는 그의 취임 일성에서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는 12일 취임사에서 “참여정부에 하산(下山)은 없다. 끝없이 위를 향해 오르다가 임기 마지막 날 마침내 멈춰 선 정상이 우리가 가야 할 코스다”고 말했다. 그는 또 “참여정부의 성공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을 분명히 갖자”며 “말년의 해이를 각별히 경계하면서 도덕성을 끝까지 지켜나가자”고 강조했다.
비서실 직원들에게 분발을 독려하는 동시에 노 대통령의 개혁정책을 끝까지 적극적으로 보좌하겠다는 각오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비서실의 도덕성에 흠집이 날 경우 임기말 레임덕 현상이 가속화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분위기 쇄신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게 하는 발언이다.
실제로 문재인 체제로 돌입한 청와대 비서실은 내부 기강확립 차원의 처방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소식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청와대가 조만간 출퇴근시간 엄수, 골프 금지, 유흥업소 출입금지, 대선후보 줄서기 차단 등 강도 높은 지침서를 내놓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또 이러한 지침서는 비단 청와대 내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정부 부처로 확산될 가능성에 무게감이 실리고 있다.
실제로 문 실장의 시선은 비서실 분위기 쇄신 등 청와대 내부 문제에만 머물지 않고 있다. 검찰을 질타한 노 대통령의 바통을 이어받아 검찰 군기잡기에도 주력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것도 취임 후 첫 국무회의 자리에서였다. 13일 국무회의에 참석한 문 실장은 제이유 사건 수사 과정에서 허위 진술을 강요했던 수사검사 인사조치와 관련한 김성호 법무장관의 보고를 경청한 후 갑자기 마이크를 잡았다. 문 실장은 이날 잘못을 저지른 검사들에 대해 검찰이 강력한 인사조치로 일벌백계의 교훈을 주지 못하고 지방 전출이라는 미온적 조치에 그쳤다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전 부처를 상대로 징계 차원의 지방 전출을 재고해 줄 것을 주문했다.
비서실장이 장관급이긴 하나 국무회의 배석자가 발언을 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경우일 뿐더러 취임 후 첫 국무회의 자리에서 강경 발언을 쏟아낸 문 실장에 대해 “역시 실세 비서실장이라 다르구나”라는 일부 참석자의 놀라움과 비아냥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 지난 2003년 인수위 시절의 문 실장. | ||
김 장관과 검찰은 맞대응을 자제하면서도 내심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검찰 주변에선 노 대통령과 핵심 측근들이 이구동성으로 검찰 압박에 나서고 있는 배경에는 겉으로 드러난 것 외에 또다른 노림수가 내포돼 있을 것이란 의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제이유그룹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던 이재순 전 청와대 사정비서관이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검찰이 이 사건 수사과정에서 이 전 비서관을 엮어 넣기 위해 허위진술을 강요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검찰의 강압수사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노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들은 참여정부 전현직 실세들이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권력형 비리 및 게이트 사건과 관련해 일부 사건은 아직도 검찰 수사가 진행 중에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 일각에서는 참여정부 도덕성에 결정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권력형 비리 사건이 언제 터져 나올지 모른다는 관점에서 ‘검찰 길들이기’에 본격적으로 나선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최근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열린우리당 A 의원이 한국전력 검침사업과 관련해 수억 원대의 금품을 수수한 정황을 잡고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검찰은 이달 초 국가청렴위로부터 A 의원의 금품수수 의혹에 대한 수사의뢰를 받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로비 대상으로 거론된 인물은 한 둘이 아니며 A 의원도 그 중 한 명에 불과하다”고 말해 향후 검찰 수사가 정·관계 로비의혹으로 확전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특히 노 대통령 측근인 A 의원 등 권력 실세들이 연루된 사실이 확인될 경우 권력형 비리사건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이 경우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고 급격한 레임덕에 직면할 수도 있다. 노 대통령과 핵심 실세들이 전방위적으로 검찰을 압박하고 배경에는 바로 이러한 우려감이 묻어 있을 것이란 게 검찰 일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검찰 관계자들은 또 노 대통령의 검찰개혁 의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문 실장이 청와대를 장악한 만큼 범정부 차원의 사법개혁에도 강 드라이브가 걸릴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사법개혁 법안이 사립학교법 개정안 처리와 연계돼 통과되지 못한데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과 핵심 실세들이 한 목소리로 검찰을 압박하고 있는 배경에는 사법개혁의 필요성을 각인시키는 동시에 법안 통과를 위한 여론 환기 포석도 어느 정도 투영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 실장이 단순한 보좌진이라기보다는 임기말 정국의 주요한 포스트를 맡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