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6 타이어뱅크 KBO 리그’ 준플레이오프 4차전 LG트윈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경기에서 치어리더들이 화려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일요신문DB
지난달 29일 국내 프로야구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졌다.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로 800만 관중을 돌파한 것이다. 하지만 ‘잔칫날’이 얼마 지나지 않아 불미스러운 일이 야구계를 강타했다. 그것은 바로 지난 1일 잠실야구장에서 발생한 ‘치어리더 성추행’ 사건이다. 프로야구 구장에 치어리더가 등장한 지 어느덧 30여 년이 흘렀고, 800만 관중 시대를 맞이했지만 이들의 근무 환경은 여전히 열악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 10월 1일 서울 잠실구장에선 LG 트윈스와 SK 와이번스의 경기가 열렸다. 결과는 SK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사건은 경기가 종료된 후 터졌다. 3루 응원석을 지나 여자화장실로 이어지는 통로에서 갑자기 여성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얼마 후 신고를 받고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고, 구장 밖으로 나가려던 관중들은 여성의 비명을 듣고 주위로 몰려들었다. 비명을 지른 이는 SK 와이번스 치어리더 A 씨. 그녀는 경기 종료 후 의상을 갈아입기 위해 화장실로 이동하던 중 한 남성으로부터 기습 성추행을 당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남성은 A 씨의 신체 일부를 만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 남성은 경찰조사 과정에서 “충동적으로 그랬다”며 성추행 혐의를 시인했다. SK 구단 관계자에 따르면 사고를 당한 치어리더는 피의자에 대해 강한 처벌을 원하고 있고, 현재까지도 상당히 괴로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내년 시즌부터는 치어리더의 원정 응원시 이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구단 차원의 배려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경기장에서 상황을 지켜본 가판대 직원 김 아무개 양은 “비명은 듣지 못했지만 사람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어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봤는데 치어리더가 눈물을 흘리고 있더라”며 “(사건이 일어난) 화장실은 원정팀 응원스탠드와 가까워 평소 치어리더도 자주 이용한다. 언젠가 이런 불미스런 일이 터지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 이 화장실은 3루 응원석과 연결된 통로에 자리 잡고 있었다. 경기가 끝나면 사람들이 몰려나오는데 치어리더도 이 무리에 섞여 화장실로 향하다 화를 당한 것이다. 국내 야구 경기장에는 대부분 홈팀 치어리더의 경우 대기실이 마련돼 있지만 원정팀 치어리더를 위한 공간은 전무한 실정이다. 그나마 얼마 전 고척돔에 원정팀 치어리더를 위한 대기실이 마련됐지만 아직까지 치어리더들은 원정경기 시 차에서 대기하고 의상은 화장실에서 갈아입는다.
SK 와이번스 치어리더 오지연 씨는 “홈팀 치어리더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으면 홈팀 대기실을 같이 쓰기도 한다. 하지만 보통 경기 시작 4시간 전에 경기장에 도착해 식사를 해결할 때를 빼고는 차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낸다. 서로 대화를 하며 안무 동선을 맞춰본다거나 헤어나 메이크업을 봐주면서 시간을 보내는 편”이라고 말했다.
프로야구의 꽃으로 불리며 경기장에서는 연예인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는 치어리더지만 사람들의 과도한 관심 때문에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전직 치어리더 이 아무개 씨는 “열정적으로 함께 응원해주는 팬들이 있어 보람을 느끼지만 단상 위에 오르면 마음이 불안한 것은 사실”이라며 “일부 팬들은 몰래 밑에서 은밀한 부위를 찍거나 함께 사진 찍을 때 과도한 스킨십을 요구하기도 한다. 갑자기 다리 밑으로 들어와 목마를 태우려 했던 사람도 있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내 사진을 보고 성적인 댓글이 달렸을 때 그걸 보고 운 적도 많다”고 말했다.
팬들의 과도한 관심은 개인 사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 SK구단 치어리더 차영현 씨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개인 SNS로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거나 심지어는 페이스북으로 전화를 걸어오는 팬들도 있었다. 지금은 ‘거절’ 기능이 있어 다행이지만 과거에는 그 기능이 없어 전화 건 사람이 그만둘 때까지 계속 듣고만 있어야 했다”고 털어놨다. 모 구단 치어리더 김 아무개 씨는 “누군가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나와 연애 중이라고 띄워놓은 적도 있다. 팀 언니들이 우연히 그 사실을 알고 얘기해 줬는데 그렇지 않았으면 다른 팬들은 진짜 그 사람과 사귀는 사이라고 오해할 뻔했다”고 전했다.
지난 1일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여성전용 화장실 앞. 이 화장실은 3루 응원석과 연결되는 통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일요신문DB
그렇다면 치어리더의 수입은 어느 정도일까. 국내 프로야구에 박기량, 김연정 등 스타 치어리더들은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치어리더의 전반적인 수입은 높지 않은 편이다. 치어 리더들의 월수입은 평균 150만 원, 많을 때 200만 원 정도다. 연봉으로 환산하면 1800만~2400만 원 정도 되지만 어디까지나 베테랑에 국한된 얘기다. 신입 때는 전혀 돈벌이가 안 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전직 치어리더 이 씨는 “신입 때는 한 경기 하면 6만 원 정도 받았던 것 같다. 봉급으로 환산하면 월 50만 원, 많으면 70만 원 정도 됐던 것 같다”며 “연습까지 하루 10시간 정도 일하는 노동강도를 생각하면 절대 많이 버는 게 아니다”고 하소연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외 활동도 많은 편이다. 국내 치어리더는 시즌 중엔 경기장에서 치어리딩을 펼치고 비시즌이나 경기가 없는 날엔 행사에 초청된다. 주로 대학 축제와 기업행사가 많은 봄, 가을에 주로 행사를 나간다. 행사를 위해서는 ‘고객 맞춤’ 곡들을 선정해 또 연습에 들어간다. 모 구단 한 치어리더는 “기업행사의 경우, 나이 많은 분들이 많다보니 올드한 곡들 위주로 퍼포먼스를 준비한다. 마라톤 행사 때는 준비체조까지 시켜주는 배테랑 언니들도 있다. 반면 대학축제의 경우는 유행하는 곡에 맞춰 안무와 의상도 좀 더 파격적으로 선보인다”고 말했다.
박한 수입에 비해 노동강도는 살인적이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평균 10시간 이상 춤을 추고 자정이 넘어서야 집에 돌아오는 게 일상이다. 이벤트가 있으면 더 바빠진다. 경기 시작 전 출입구에 나가 관중들에게 경품을 나눠주기도 하고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한다. 시즌 중에는 한 달에 15일 정도 이런 생활이 반복된다. 경기가 없는 날에는 연습실에 모여 6시간 이상 연습한다. 또 새로운 유행곡이 나오면 이에 안무를 다시 짜고 새로 연습해야 한다. 치어리더 이미래 씨는 “유행하는 곡이 있으면 빠른 시간 안에 그에 맞는 안무를 짜고 2~3일 안에는 익혀야 한다”며 “즐기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낮은 수입과 심한 노동강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치어리더를 계속하는 이유는 뭘까. 짓궂은 팬들 때문에 속상하기도 하지만 팬들이야말로 치어리더의 존재 이유라고 그들은 입을 모은다. 치어리더 이소연 씨는 “간혹 짓궂은 팬들이 있으면 다른 팬들이 나서서 제지해주기도 한다. 우리가 단상에 올라서서 열심히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그런 팬들 덕분”이라며 “팀이 지고 있을 때도 포기하지 않고 우리를 따라 열정적으로 응원해주는 팬들을 보면 큰 보람이 느낀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
외야수보다 많이 뛰어 ‘강한 체력 필수’…그라운드 안의 꽃 ‘배트걸’ 야구장 스탠드에 치어리더가 있다면 경기장 안에는 배트걸(혹은 배트보이)로 불리는 경기진행요원이 있다. 경기장에 들어설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한국프로야구 규정집 3조17항에 따르면 ‘경기 중에는 선수, 교체선수, 감독, 코치, 트레이너, 배트 보이(걸) 이외는 어떠한 사람도 더그아웃(선수대기구역)에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배트걸이 하는 일은 다양하다. 타자들이 1루까지 달려 나가며 내팽개친 배트를 수습하는 일과 주심에게 공을 전달하는 일을 한다. 또 홈런을 날린 선수가 있다면 인형과 축하도 전하기도 하며 담장을 넘지 못한 파울볼을 정리하기도 한다. 야구 경기가 치러지는 동안 그들의 노동강도는 여느 치어리더 못지않다. 배트걸은 평균 10km 안팎의 거리를 달리는데 그것은 선수들 중 가장 먼 거리를 움직이는 외야수들보다 많게는 3배 이상 긴 거리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강인한 체력은 필수다. 또 배트걸은 야구 지식과 경기 흐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경기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찾아다니며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 주 임무이기 때문이다. 한 프로야구단 관계자는 “타격 연습을 하는 선수 사이를 뛰어다녀야 하고 파울볼이 갑자기 떨어지기도 해 위험하다”며 “이 때문에 외적으로 보여지는 면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야구 지식과 경기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센스를 갖춘 사람을 뽑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