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구르미 그린 달빛>의 중요한 흥행 포인트가 하나 발생했다. 바로 ‘남장여자’. 한국 드라마에는 남장여자 캐릭터가 다수 등장했고, 대다수 드라마가 성공을 거뒀다는 공통분모를 안고 있다.
‘구르미 그린 달빛’의 김유정. 사진제공=KBS
# <커피 프린스 1호점>, 물꼬를 트다!
남장여자를 전면에 배치한 드라마의 첫 걸음은 2007년 방송된 MBC <커피프린스 1호점>이 내디뎠다. 당시 윤은혜는 남자로 신분을 속인 채 커피숍 직원으로 취직해 사장인 공유와 사랑에 빠지는 역할을 소화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 “네가 남자건 외계인이건 상관 안 해. 가보자. 갈 데까지”라는 공유의 대사는 폐부를 찌르며 여심을 흔들었다.
문근영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2008년 SBS <바람의 화원>에서 여성의 사회 활동을 인정받지 못하던 조선시대에 화가로 활동하기 위해 남장을 하는 신윤복 역을 맡아 그 해 연말 연기대상까지 수상했다.
2009년에는 일본 내 한류 열풍을 재점화시킨 SBS <미남이시네요>가 눈에 띈다. 이 드라마에서 배우 박신혜는 쌍둥이 오빠인 고미남을 대신해 꽃미남 밴드에 합류하는 고미녀 역을 맡아 1인2역을 소화했다. <미남이시네요> 등에 함께 출연했던 배우 장근석, 정용화 등도 이 드라마를 통해 한류스타로서 입지를 굳혔다.
박민영 역시 남장여자 캐릭터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동명의 원작 소설을 기반에 둔 2010년작 KBS 2TV <성균관 스캔들>에서 그는 성균관 유생으로 분했다. 함께 출연한 배우 박유천 송중기 유아인 등과 함께 ‘예쁜 유생’으로 등장해 묘한 애정 관계를 형성하며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윤은혜, 문근영, 박신혜, 박민영 등은 남장여자 캐릭터를 마친 후 전성기를 맞았다. 때문에 <구르미 그린 달빛>의 주역이었던 김유정이 이 드라마를 발판 삼아 기존 아역 이미지를 벗고 높이 비상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바람의 화원’의 문근영. 사진제공=SBS
남장여자라는 소재는 같지만, 풀어가는 방식은 다르다. 자칫 ‘아류’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제작진은 더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행을 위해 빠질 수 없는 몇 가지 공식은 있다. 남장여자 캐릭터를 배치할 때부터 이미 시청자들이 궁금해 하는 지점과 기대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남자 주인공의 갈등’이다. 상대가 여성이라는 것을 까맣게 모르는 남자 주인공은 자신이 동성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에 화들짝 놀란다. 그리고 처음에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괴로워한다. 시청자들은 여주인공이 사실 남장한 여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남자 주인공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묘한 쾌감을 느낀다.
두 번째로 ‘나는 너의 정체를 안다’는 인물이 꼭 배치된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100% 숨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정체를 알고 있지만 모른 체하며 여주인공의 비밀을 지켜주는 조력자가 등장한다. 드라마가 개연성을 얻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존재다.
세 번째는 ‘여주인공의 노출’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남성 같지만 이를 연기하는 이들은 내로라하는 여배우들이다. 그래서 실제로는 아름다운 이들이 남자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꼭 삽입된다.
<구르미 그린 달빛> 1회에서도 김유정이 가슴을 가리기 위해 천을 두르는 과정이 상세하게 그려졌다. 이는 <커피 프린스 1호점>, <성균관 스캔들>, <바람의 화원>에도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이다.
문제는 선정성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 역시 클로즈업과 슬로우 모션이 반복되며, 아직 미성년자인 김유정에게 이 같은 연기를 하게 했다는 질타를 받았다.
# 여장남자는 없나?
남장여자를 내세운 드라마가 잇따라 성공을 거둔 데 반해 여장남자를 다룬 드라마는 찾아보기 힘들다. 여장남자는 주로 ‘황마담’이나 ‘갸루상’과 같이 개그프로그램에서 희화화되는 소재로 자주 쓰인다.
한 드라마 제작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남장여자보다 여장남자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큰 편이다. 여성처럼 선이 가는 남자 배우를 찾기 어렵고, 여장에 대한 부담이 크기 때문에 드라마의 주연을 맡은 톱스타들이 꺼리는 편”이라며 “주로 개그의 소재로 쓰이며 희화화됐다는 점도 드라마 소재로 잘 쓰이는 않는 이유”라고 말했다.
반면 뮤지컬에서는 여장남자 캐릭터가 인기다. 조승우, 조정석, 오만석 등 뮤지컬계에서도 첫 손에 꼽는 이들이 <헤드윅>에서 여장남자 역할로 큰 성공을 거뒀고, 현재 공연 중인 <킹키 부츠>에도 여장남자 캐릭터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실제로 서울 이태원 등지에서는 ‘드래그 퀸’의 공연을 여는 클럽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현실성을 중시하는 드라마와 달리 무대 위라는 공간에서 표현이 자유로운 뮤지컬이나 연극에서는 드래그 퀸의 매력이 배가되는 편”이라며 “결국은 성공모델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드라마 속 여장남자를 꺼리는 편이다. 좋은 선례를 남긴다면 남장여자처럼 흥행을 일구는 소재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