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 광주은행장
[일요신문] 오는 11월 취임 2년을 맞는 김한 광주은행장의 경영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48년간 유치해온 ‘광주시금고’를 수성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올해 계약이 만료되는 4조 원대 ‘광주시금고’를 지켜내느냐에 따라 그의 경영능력이 갈림길에 설 것으로 보인다. 김 행장의 시 금고 유치의지는 확고하다. 하지만 그러나 이러한 의지가 결실을 맺을지는 미지수다. JB금융지주로 합병된 이후 향토은행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등 상황은 녹록지 않다. 김 행장이 민심이반이라는 거친 파고를 넘고 시금고 ‘터줏대감’ 자리를 지켜낼지 주목된다.
광주시는 시금고 계약이 올해 말로 끝남에 따라 최근 광주시금고 지정 절차를 본격화했다. 지난 18일 시청에서 열린 ‘시금고 지정 신청 설명회’에는 광주은행과 국민은행, 농협, 신한은행, 하나은행 등 5개 금융권이 참여하는 뜨거운 열기 속에 진행됐다. 시는 11월 4일 단 하루 금융권의 제안신청서를 받고 내달 30일까지 지정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광주은행은 1969년부터 일반회계, 특별회계, 기금 등을 독식하다가 2012년 복수체제로 전환됐다. 현재 일반회계와 특별회계 일부를 관리하는 제1금고는 광주은행이, 특별회계 일부를 맡는 제2금고는 KB국민은행이 맡고 있다. 광주시가 내년부터 4년간은 재정 규모의 80%가량을 ‘제1 금고’에 맡기기로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제1금고의 재정 규모는 올해보다 줄어들 것으로 관측되지만, ‘제1금고 매력’은 여전하다. 무엇보다 광주시금고 유치는 ‘향토은행장’임을 자처하는 김 행장에 대한 경영능력 평가와도 직결된다는 해석도 나온다.
김한 광주은행장은 줄곧 경영능력에 대한 의문에 시달렸다. 김 행장은 지난 2010년 전북은행장에 취임하면서 JB금융과 첫 인연을 맺었다. 그는 1989년부터 1997년까지는 대신증권 본부장을, 2004년부터는 메리츠증권 대표이사 부회장을 역임한 증권맨이다. 은행권 경력은 2008년부터 2년간 KB금융그룹의 사외이사를 역임한 것이 전부다. 특히 그는 JB금융의 대주주인 삼양그룹 창업자인 김연수 씨의 손자이자 5공 당시 국무총리를 지낸 김상협 전 총리의 장남으로, 호남 명문가 출신이라는 점에서 선임 때마다 낙하산 의혹을 받기도 했다.
김 행장은 2014년 11월 12대 광주은행장으로 취임했다. JB금융으로의 인수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JB금융지주 회장의 행장 취임이 가장 적절하다는 판단에서다. 광주은행장에 취임하면부터는 자산건전성 개선 작업으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던 실적과 ‘새우가 고래를 삼킨 격’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광주 인근 지역민의 상한 민심을 달래는 일 등이 선결과제로 꼽혔다. 하지만 당초 우려와는 달리 흡수통합의 조건으로 자행 출신 행장 선임을 강력히 내건 광주은행 노조의 반발을 행장 내정 한 달 만에 잠재우며 경영 수완을 보여주기도 했다.
김 행장은 또한 실적 개선으로 안정적인 취임가도를 이어왔다. 광주은행은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이익이 721억 9000만 원으로 전년보다 127.4% 늘었다. 매출액과 당기순이익은 7714억 8000만 원과 578억 6000만 원으로 각각 27.5%와 189.8% 증가했다. 올 2분기 연결재무제표 기준 영업이익도 전년동기 대비 58.8% 증가한 533억 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9.2% 늘어난 2101억 원, 당기순이익은 44.1% 증가한 327억 원을 달성했다.
광주은행 간판
김 행장과 광주은행의 시금고 수성 의지는 확고하다. 광주은행 광주시청 지점장의 “시금고 내 목숨”이라는 ‘카톡 대문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시금고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김한 광주은행장도 지난 7월 26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하고 “지역은행인 광주은행의 자존심을 걸고 광주시금고를 반드시 유치해야 한다”며 “시금고 재계약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최악의 금융환경인 저금리 기조에서 시금고 만으로 수익을 낼 수 없다. 하지만 그 손실 비용만큼 광주시에 세금을 낸다는 생각으로 시금고를 유치하겠다”고 말했다. 시금고 유치에 대한 의지가 한껏 묻어나는 대목이다. 또한 차별화된 지역사회 공헌활동을 위해 남자 배드민턴 실업팀 창단과 전국 최대규모의 수묵화 공모전 개최 방침도 내놓았다.
하지만 광주은행은 그동안의 행보가 도마에 오르면서 시금고 유치에 빨간불이 켜졌다. 광주은행은 2014년 JB금융지주에 합병돼 전북은행에 인수된 이후 지역사회 기여도가 점차 낮아지면서 향토은행으로서의 역할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광주은행이 전남 일부 기초자치단체(곡성군·구례군·진도군)에 영업점이 없고 해마다 사회공헌 지출을 줄이는 향토은행의 역할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여기에다 지난해 30년 역사의 역도부를 해체한 데 이어 시민구단인 광주FC 프로축구단 후원금을 2014년 이후 2년간 내지 않다가 올해 3억 원을 지원하면서 비난의 대상이 됐다. 또 최근 광주은행이 돌연 광주시체육회와 실업팀을 창단하겠다고 나선 것은 광주시금고 선정을 앞두고 지역여론을 일시적으로 잠재우기 위한 전략이 아니냐는 뒷말도 나오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광주은행은 현재 지점을 대폭 줄이고 365ATM기를 늘리고 있다. 또한 1층 지점을 2층으로 옮기기도 했다. 광주은행이 적자경영을 모면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여지기는 하지만 시민들의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광주전남 지역의 민심 잡기는 쉽지 않은 과제다. 광주은행이 1997년 IMF구제금융 시기에 주식이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현상이 발생, 인수합병 물망이 오르기도 했다. 당시 시민들은 광주은행 살리기 운동에 동참, 우리사주 사주기로 한주에 수배에 달하는 손해를 감수하고 5000원씩 매입해 광주은행 부활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광주은행이 전북은행에 인수된 뒤 지역의 배신자로 낙인찍힐 위기에 몰려있다.
이미 민심이반 전조는 나타났다. 광주은행은 지난해 전남 순천시금고 선정에서 지난 2006년부터 9년간 맡아온 2금고를 하나은행에 뺏겼다. 오랜 기간 광주와 전남 22개 지자체 전부를 담당하던 농협과 광주은행의 양강 체제가 깨진 셈이다. 윤장현 광주시장이 줄곧 JB금융이 일방적인 인수합병 논리를 편다면(지역민의 자존심이 상하게 돼) 광주은행의 시금고 선정을 재고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는 등 지역감정 악화 조짐도 계속되고 있다. JB금융 편입으로 광주은행이 향후 시금고 쟁탈전에서 우위를 뺏긴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금고 선정을 앞두고 최근 광주시청 지점장의 ‘돈봉투 논란’에다 광주시 김 아무개 전 자문관 수뢰 사건과 관련, 검찰 압수수색을 당하는 ‘불미스러운 일’까지 겹쳐 50년 가까이 이어진 ‘시금고 타이틀’에 생채기가 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광주은행이 다음 달 광주시금고 지정을 앞두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또 다른 까닭이다.
이에 광주은행은 지역여론을 끌어안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광주시금고’ 유치가 유리하지만은 않은 형국으로 전개되고 있다. 광주시금고 ‘48년 명맥’ 이어갈 수 있을지 김한 광주은행장의 경영능력이 갈림길에 서 있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