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희태 선대위원장은 이명박 전 시장의 “온 세상이 미쳤다”는 발언에 대해 최근의 검증 국면으로 인해 자신도 화가 많이 났다며 옹호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명박 캠프의 박희태 선대위원장도 요즘 정신없는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경부대운하 보고서’ 조작논란에 대응하기 위해 그는 ‘한반도대운하 보고서 변조·공작 흐름도’까지 작성해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박근혜 캠프에서 “검증에 대한 관심을 피하기 위해 대운하 보고서 조작 논란을 키우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또다른 일각에서는 “본질은 보고서 조작 논란이 아니라 보고서에 담긴 대운하의 문제점”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박 위원장은 이 모든 것이 ‘이명박 죽이기’의 연장선상에 있는 전략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배후에 청와대가 있다”며 노 대통령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21일 저녁 박 위원장을 만나 이명박 캠프의 이모저모와 검증공방, 대운하 보고서 조작 논란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지지율 1위 자리를 한 번도 내주지 않으며 비교적 여유롭게 페이스를 유지해왔던 이 전 시장은 요즘 단단히 화가 났다. 박근혜 전 대표뿐 아니라 여권 및 노무현 대통령까지 나서 자신에 대한 검증 논란에 가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치권 일각에서는 ‘킴·노·박(김정일 노무현 박근혜)’의 ‘이명박 죽이기’ 전략이 가동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이 전 시장은 “온 세상이 미쳐 날뛰고 있다”는 극한 표현까지 쓰며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과연 이 전 시장의 의심대로 ‘이명박 죽이기’ 플랜의 배후엔 청와대와 노무현 대통령이 있는 걸까. 박희태 위원장은 비교적 차분히 문제들을 짚어 나갔다.
―오늘 경찰조사 결과 37쪽 분량의 문건이 수자원 공사의 작성 문건과 흡사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그리고 수자원 공사에서는 98년부터 경부운하와 관련된 문건을 만들어 수시로 업데이트를 했다고 한다.
▲9쪽짜리는 정부에서 자기들이 만든 것이라고 인정을 한 거고 37쪽짜리는 장관도 모르는 거고 형식도 국가 공공기관에서 하는 형식이 아니다, 그래서 그것을 누가 무슨 목적으로 작성한 건지 모르기 때문에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다고 하지 않았나. 장관이 금방 얘기한 것도 아니고 하루 동안이나 조사해 보고 자신들 것이 아니라고 얘기하지 않았나. 만약 그 발표대로 37쪽 짜리와 수자원공사에서 98년부터 만들어온 문건과 비슷하다면 당연히 산하기관을 체크해보고 이런 문서가 있는지를 알아보고 국민들 앞에 발표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얘기를 들으니 난 더 의심스럽다. 그 문서는 누가 어떤 목적으로 작성했고 어떤 경로를 통해 언론에까지 도달했는지 그 과정이 소상히 밝혀져야 할 것이다.
―대운하 보고서 조작의 배후에 노 대통령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는데 그 근거는 무엇인가.
▲지난 2월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과의 만찬 자리에서 한반도 대운하가 타당성이 있는지 의문을 표시했고 그 이후 4일인가 뒤에 건교부에서 TF팀을 구성했다. 그리고 TF팀에서 4월에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거다. 그렇다면 그 보고서가 하나여야지 왜 여러 개가 나오나. 이 보고서의 작성 경위가 바로 대통령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대통령이 그 정점에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전 시장 측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 측이 유출과정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는데.
▲난 박 전 대표를 꼬집어 말한 적은 없다. 유출된 자료를 갖고 우리를 공격한 정치세력들과 범여권 등을 총칭해 표현한 것뿐이다. 단지 박 캠프에 있는 의원들이 언론에 보도되기 5일 전에 그런 문서가 존재한다고 얘기하면서 그 중 일부 내용을 이야기한 적이 있기 때문에 우리 대변인이 그것을 지적한 적이 있다.
박 위원장은 한반도 대운하 조작논란과 관련해 박 전 대표를 직접 ‘언급’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하는 듯했다. 이는 이명박 전 시장이나 캠프의 공식입장과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특정 캠프가 여당과 공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 전 시장의 말과는 달리 정두언, 진수희 의원은 더 나아가 박 전 대표 캠프의 한반도 보고서 변조·유출의혹을 제기하며 구체적인 이름까지 오르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양 진영의 싸움으로 인해 대운하 조작 논란으로 온통 관심이 쏠렸고 이 전 시장 측에서 박 캠프의 변조, 유출 의혹까지 더해 관심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 측에서는 이 전 시장이 BBK 주가조작, 위장전입 의혹 등 검증 현안을 피해가기 위해 대운하 보고서 조작논란을 키우고 여기에 박 전 대표까지 끌어들이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갖고 있다.
▲조작논란을 키우는 것은 바로 건교부 장관이다. 그 자신이 ‘언론에 공개된 보고서는 정부보고서가 아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보고서는 TF팀에서 만든 보고서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라고 주장하지 않았나. 거기에서 논란이 시작된 것이다.
―논란의 시발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현 상황은 대운하 조작 논란으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전 시장 입장에선 유리한 국면 아닌가.
▲우리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은 절대 아니다.
―이 전 시장 측 주장대로 노 대통령이 현 시점에서 이 전 시장을 공격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대통령은 이명박을 죽여야 정권을 연장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이명박 죽이기’에 나선 것이다. 이명박을 경선에서 꺾지 않으면 본선에선 도저히 못 꺾는다는 판단 때문에 검증 국면에 같이 합세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외의 다른 후보를 상대로 싸우기가 쉽다는 전략회의 끝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선거법 위반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난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선거법이 전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 극히 당연한 법이라고 생각한다. 그 법을 내가 만들었기 때문에 더 강조하고 싶다(웃음). 그 법은 대통령 뿐 아니라 시·도 지사 시장 군수 등에 대해 모두 적용되는 것이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마치 대통령 하나만 선거운동을 못하게 한 줄로 알고 헌법소원을 제기한 모양이다. 한 신문사 보도를 보니까 대통령이 선거운동을 안 하는 것이 관례라고 했던데 그건 틀린 것이다. 관례가 아니라 법에 못 하도록 돼있다. YS도 대통령 시절 국회의원 선거운동을 하려고 했다가 법으로 금지돼 있는 걸 알고 ‘왜 그 법으로 나까지 묶었느냐’며 짜증낸 일이 있었다. 어쨌거나 그래서 YS도 당시 (선거운동을) 하지 못했다. 대통령이 이 법에서 풀린다면 서울시장도 풀려야 되고 시장, 군수들도 다 풀어줘야 한다.
▲ ‘대운하 보고서 변조공작 흐름도’를 설명하는 박희태 위원장. | ||
▲나도 화가 많이 난다. 본인도 격해서 그런 말을 했을 거다. 다른 캠프에서도 공격을 하는 데다가 여당 의원들이 하루에도 몇 사람씩 동원돼서 사방에서 들고 일어나 죽이기에 나서지 않았나. 이 전 시장도 검증을 예상은 했지만 대통령까지 가세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건 당내 경선이다. 당 검증위원회에서 알아서 할 일 아닌가.
―최근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의 지지율 격차가 좁혀지고 있는 것에 대해 박 위원장은 이탈된 지지층이 유보층으로 돌아서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는데.
▲여론조사 결과가 그것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이명박이 2% 떨어지면 박근혜가 2% 올라서야 하는데 이명박이 떨어진다고 박근혜가 오르는 것이 아니다. 대개 동반 하락한 수치가 많다. 그래서 이 전 시장에 대한 지지자가 유보 상태로 가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검증국면이 끝나면 다시 이 시장에게 넘어올 것이다.
―최근 여권에서는 지금까지 제기된 이 전 시장의 검증 사안보다 훨씬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파일이 있으며 이것이 공개될 것이라는 얘기가 들린다. 그리고 이 내용은 사생활 문제나 스캔들에 관한 것이라는 소문이다. 결국 에리카 김 문제 등이 다시 거론될 가능성도 있는데.
▲그런 이야기에 대해선 본인이 가장 잘 알지 않겠나. 오늘도 이 시장에게 물어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새롭게 더 나올 것이 없다”고 얘기하더라. 에리카고 뭐고 간에 이제 새로운 얘기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큰 걱정은 안한다.
―범여권에서는 한나라당 경선에서 범여권 지지자가 선거인단에 포함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는 소문도 들린다. 박 전 대표를 지지함으로써 이 전 시장의 경선 탈락을 노린다는 것이다.
▲그 부분은 속수무책인데…. 시골에서는 사람들의 성향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지만 도시에선 어려운 일이다. 개개인의 당적 확인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민들의 양식을 믿는 수밖에 없지 않겠나. 사실 이 경선 제도가 상당히 복잡하고 위험 요소가 많이 포함돼 있다.
―전 현대건설 노조설립추진위원장 서정의 씨가 이 전 시장이 당시 노조 설립 포기를 요구하고 납치, 감금까지 했었다고 주장했는데.
▲이미 당시에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한 일이다. 이제 와서 왜 재탕, 삼탕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인지 그 이유를 나도 모르겠다.
―지지율 1위이다 보니 더 거센 공격을 받는 점에 대해선 억울한 면도 있겠다.
▲강자니까 어쩔 수 없다. 본선에 대비하라고 단련을 시키는 것 같다. 그런데 너무 단련을 시키다 보니 단련의 범위를 넘어서 고문에 가까운 것 같다(웃음).
―반면 박 전 대표에 관한 의혹 검증도 중요한 문제 아닌가.
▲우리는 한 번도 그 부분에 대해 요구한 적이 없다. 지금 한 식구끼리 편 갈라서 축구시합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합이 끝나면 같이 손잡고 정권교체를 위해서 투쟁해야 하는 동지다. 100% 확실한 자료가 아니라면 검증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정도의 자료가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 치명적인 내용이라면 공개하지 않을 계획이다.
―‘치명적’인 내용이라면 결국 박 전 대표가 지금껏 명쾌하게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은 최태민 목사와 관련된 내용이 아닌가. 이 부분은 어떻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보나.
▲난 최태민 씨와 관련된 내용은 모른다. 우리의 기본적 입장은 박 전 대표도 같이 손잡고 가야할 식구라는 것이다.
―만약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 후보가 되고 그때 가서 여권의 검증 공격을 받게 된다면 더 치명적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한나라당 입장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데.
▲앞으로 좋은 일만 있길 바란다(웃음). 누가 당의 후보가 되든 정권교체라는 눈물겨운 국민적 염원을 이뤄내야 한다.
―최근 정치권에서 일명 ‘박근혜 X파일’이 담긴 CD가 나돌았는데.
▲X파일인지 Y파일인지 모르겠지만 그 부분에 대해선 기사를 통해서만 알고 있다.
―박 전 대표의 사생활에 관한 검증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그 문제는 당 검증위원회에서 알아서 할 것이다.
민감한 질문이 이어지자 박희태 위원장은 “이제 어지간히 했으니 그만하자”며 손사래를 쳤다. “제대로 답변을 안 하셨다”는 기자의 질책(?)에 “싸움 붙이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며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선대위원장으로서 가장 힘든 때는 언제인가”라고 묻자 “지금이다. 오늘 정말 많이 당하고 있다. 검사마냥 너무 꼬치꼬치 묻는다. 내가 옛날에 검사시절에 그렇게 했다”며 기자를 ‘나무라기도’ 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