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여권 후보 중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손학규 전 지사가 빡빡한 2차 민심 대장정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대선이 있는 올해 손학규 지사와의 세 번째 만남이었다. 13일 포항의 한 식당에서 녹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손학규 전 지사의 바쁜 시간을 잠시 빌렸다. 작업복에 등산화 차림을 한 손학규 전 지사는 기자와 마주앉자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턱을 어루만지며 너털웃음부터 지었다. 바쁜 일정 속에 다소 지쳐 보이는 기색이었지만 여유가 묻어났다.
7월 1일부터 2차 민심대장정을 계속하고 있는 그는 이날도 공식, 비공식 일정들을 소화해내며 빡빡한 하루일과를 보내야 했다. 범여권 대통합이다, 검찰 수사다 해서 서울의 정계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1년 만에 다시 돌아간 민심의 현장에서 그는 오롯이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자신의 정책을 설명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손 전 지사는 “1차 대장정 때는 같이 일하고 먹고 자고 이런 것을 통해 국민들의 실생활 안으로 들어가 보았고 이번에는 정책과 관련해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점심 식사도 포항 지역 인사들과 만나 지역 문제를 논의하고 자신의 비전과 정책을 알리는 것에 시간을 쪼개 활용할 정도로 그는 열심이었다. 그는 “현장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것은 하루종일이라도 하겠는데 사람들 만나 얘기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라며 웃음을 보인다.
손학규 전 지사가 민심 현장을 다시 찾고 여의도와 거리를 두고 있는 사이 범여권에서는 ‘손학규 대세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만년 5%’라고 불릴 만큼 지지율 상승에 고전을 겪었던 그가 10% 지지율을 눈앞에 두고 있다. 7월 9일 한길리서치 발표결과는 9.8%. 손 전 지사의 입장에선 고무적인 현상이다. 어지러운 범여권 진영이 그를 중심으로 재편될지 여전히 많은 변수들이 남아있지만 타 대선주자들의 견제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도 ‘손학규의 위력’이 더 커지는 데 대한 우려 때문일 것이다.
―여론 조사 결과 지지율이 10% 가까이 올라섰는데.
▲고마운 얘기다.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호의적으로 도와주시는 것은 우리 정치가 가야할 길과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여망이 그만큼 높아졌고 선거를 앞두고 그러한 여망이 피부로 와 닿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또 한편으로는 일자리를 만들고, 첨단기업도 만들고, 기업에 대한 투자도 유치해 선진화의 길을 나아가야 하는데 손학규가 우리 경제 살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하시는 것으로 생각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남북 평화가 가까워 오는데 남북관계에 있어서 좀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 여러 가지 면에서 하나씩 따지다 보니까 손학규가 좋겠다는 판단을 하시는 것이라 생각한다.
―‘손학규 대세론’이라는 말이 조금씩 언급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대세론이라기보다… 대세론이라는 게 꼭 좋은 게 아니니까. 손학규에 대한 인식과 인지도가 높아지고 손학규의 실상, 손학규의 자질과 역량 이런 것이 합치된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범여권 오픈 프라이머리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는데 통합민주당에서도 러브콜을 받았다.
▲러브콜이라기보다는 박상천, 김한길 대표를 만났을 때 큰 틀에서 국민 대통합의 길로 가야한다는 것을 역설 했고 대통합의 길에 대해서는 그분들도 다 동의를 했다. 조그마한 틀에 얽매이지 말고 기득권에 얽매이지 말고 크게 합치고 화합해 나간다는 원칙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정말로 큰 틀로 가느냐에 대해선 협의가 잘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논의란 게 어차피 우여곡절이 있는 것이고 시간도 필요한 것 아닌가. 그러다가 어느날 전격적으로 이뤄질 수도 있는 거니까.
손학규 전 지사는 ‘범여권 대통합’에 대해 각 세력들이 모두 공감하고 있다고 에둘러 말했으나 각 세력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일은 쉽지 않다. 말로는 할 수 있되 행동으로 보여주긴 어려운 일이다. 통합민주당 김한길 대표도 “기득권을 버리겠다”고 말했지만 열린우리당과의 ‘당 대 당 통합’에 대해선 강력히 반대의사를 밝혀왔다. 최근 입장 변화가 보이기는 하지만 통합이 안 될 경우 독자후보를 내기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해 손 전 지사에게 ‘후보가 되어 달라’고 구애를 보내는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통합민주당이 가진 호남지지기반은 손 전 지사에게도 매력있는 힘이다. 더구나 손 전 지사는 근래 호남 지역에서 정동영 전 의장의 지지율을 빠르게 추격하거나 앞서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통합민주당 얘기를 연이어 묻자 그는 “왜 자꾸 통합민주당 얘길 하나. 통합민주당으로부터 특별한 러브콜이란 게 없었다”고 조금은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4일 대선주자 연석회의 직후 김한길, 박상천 대표와의 만남에서도 대통합의 의미에 대해 양측은 한 뼘 이상의 거리감을 보였던 바 있다.
▲ 지난 4일 박상천·김한길 대표와의 3자 회동 모습. | ||
▲정치적인 얘기란 게 의견차가 있을 수도 있고 하는 건데 그날 얘기한 것은 대통합 원칙에 동의를 하고 통합민주당이 대통합에 참여해야한다는 얘기였다. 내가 통합민주당 후보가 된다 어쩐다는 논의와는 전혀 다른 얘기다.
―열린우리당 합류 여부를 두고도 난항을 겪고 있다.
▲그건 뭐… 김근태 의장이 살신성인의 결단을 가지고 불출마 선언하고 대통합을 위해 나섰으니까 그런 선에서 의논이 잘될 거라고 본다. 내가 감 내놔라 배 내놔라 식으로 일일이 간섭하는 것은 그렇게 현명하지 않다.
―친노세력과의 관계 설정도 중요한 변수다. 유시민 전 장관도 대권행보에 나섰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나는 뭐 친노, 반노, 비노 그런 거 잘 모른다. 허허. 자꾸 사람을 어떤 틀에다 끼워놓고 판단하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니라고 본다. 통합해 가자는 마당에 누구는 어디고 누구는 어디고 자꾸 가르고 틀에 넣고 이런 게 대통합의 정신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거다. 유시민 전 장관이라고 특별한 사람이겠는가. 통합을 하자는 것엔 누구나 다 동의를 하는 거니까 말이다. 분명히 통합 후보가 나올 거다.
―근래 범여권 주자들의 견제를 집중적으로 받고 있는 것 같다.
▲견제는 무슨 견제…(웃음). 다 관심이 있고 애정이 있으니까 그런 것 아니겠나. 관심이 없는 사람한테 그러겠나.
―최근 ‘내가 한나라당에 있었으면 우리나라가 일당 독재체제가 되었을 것’이라고 얘기했는데.
▲지지도 내지는 후보 적합도에서 1, 2, 3등이 한군데 한꺼번에 있으면 선거가 제대로 되겠느냐 이 얘기다. 실제로 내가 한나라당을 탈당하면서부터 비한나라당 쪽에서 통합 논의가 활발하게 된 것이 사실 아닌가. 그게 기폭제가 된 것이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민주주의가 양당제를 기본으로 하는데 한쪽에만 완전히 쏠려있으면 제대로 된 민주주의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양 날개가 튼튼히 가는 것이 건전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거다.
최근 한나라당 주자들의 검증공방은 범여권 진영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국가정보원이 2005년 당시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 대한 ‘X파일’을 만들어 여권 권력 실세에게 전달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박근혜 전 대표의 X파일 존재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는 상황. 이 와중에 범여권 사람들 사이에서 “이명박은 한방이면 간다”거나 “두 사람 중 하나가 한나라당 후보가 될 경우 승리할 자료가 있다”는 언급들도 나오고 있다. 손학규 전 지사는 “자료 이런 것보다도 우리 시대정신이 지금 한나라 후보로는 안 되겠다는 것”이라고 말을 아끼면서 “(자료유출 공방에 대해) 어디서 유출되었느니 누가 유출했으니 하면서 초점을 흐리는 것은 본질을 비켜가고 호도하고 왜곡하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청와대 인사들까지 손학규 캠프로 대거 몰리면서 관심이 쏠리고 있는 데 대해 손 전 지사는 “이런 분들은 개별적인 합류다. 그리고 그 분들이 어디에 있었던 앞으로 어떤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우리나라가 잘될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기 역할을 찾는 과정에서 합류를 한 것으로 본다”라며 노 대통령과의 연관성에 대해 일축했다. 노 대통령은 손학규 전 지사를 ‘범여권 후보에 넣지 말라’로 깎아내리다가 최근 언급을 자제했고 손 전 지사는 “단일후보가 되면 노 대통령을 포용하겠다”고 밝혔다.
―햇볕정책을 줄곧 지지해온 손 전 지사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지의사를 밝힌 적이 있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가 원로인데 그렇게 말씀을 가볍게 하시겠나. 지금 시기가 시기인 만큼 자칫 그분에게 누가되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 따로 연락도 드리지 않는다. 그저 나의 삶과 내가 해온 일, 내 정치적인 자세, 남북관계에 대한 자세를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시리라고 믿고 있다.
손 전 지사의 당면 과제는 지지율이 10%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고 이를 토대로 범여권 단일후보가 되는 일이다. 손 전 지사는 자신이 범여권 단일 후보를 넘어 대통령이 될 것임을 추호도 의심치 않고 있다고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손 전 지사는 자신이 단일후보가 될 가능성에 대해 “사람은 항상 자신을 가지고 낙관적인 자세를 가지고 일을 해야 한다”고 아직은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연 손 전 지사가 난마처럼 얽혀있는 범여권에서 단일후보로 우뚝 설 수 있을지 지금이 갈림길인지도 모른다.
포항=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