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2일 아시아 성매매 조직에 연루된 용의자가 캐나다 연방경찰에 체포되는 장면. CTV 방송 화면 캡쳐
그런데 유사한 사건이 지금 캐나다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최근 멕시코 법원으로부터 검찰의 구속기소가 법적 효력이 없다는 판결이 내려진 멕시코 양 씨와는 달리 그는 1년 6개월째 단 한 차례의 정식 재판도 없이 수감돼 있다는 것이다. 차후 재판을 통해서도 그가 무혐의로 풀려날 수 있을지, 무혐의로 풀려난다고 해도 1년 6개월간의 수감 생활로 인한 피해는 누가 보상해줄 수 있는지 어느 것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더욱이 그와 함께 동일한 혐의로 체포됐던 다른 피의자들은 전부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그는 보석 신청도 두 차례에 걸쳐 기각됐다. 캐나다 전역에서 활동한 국제 성매매 범죄조직의 리더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지난해 4월 2일, 캐나다 토론토 북부 지역에서 15년 동안 사설학원을 운영해 온 목사 전 아무개 씨(46)는 캐나다 연방경찰(RCMP·Royal Canadian Mounted Police)에 체포돼 헬기를 통해 몬트리올로 이송됐다. 당시 전 씨는 자신이 무슨 혐의로 체포되는 것인지, 함께 체포되는 다른 이들이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RCMP의 공식 보고에 따르면 전 씨는 캐나다 전역에 이르는 불법 성매매 조직을 운영한 혐의로 다른 혐의자들과 함께 긴급 체포됐다. 전 씨가 운영한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성매매 조직은 아시아 여성들을 캐나다로 밀입국시킨 뒤 핼리팩스, 몬트리올, 토론토, 밴쿠버 등 8개 도시에서 성매매를 일삼아 왔다는 것이 RCMP의 설명이다. 당시 전 씨 외에도 토론토와 몬트리올에서 중국인 6명과 한국인 1명이 같은 혐의로 함께 체포됐다. 현지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이들의 혐의는 ▲성매매로 인한 이익 취득 ▲성매매 알선 ▲미성년자(18세 미만)의 성매매 알선 ▲성매매 광고 등이다.
이 가운데 경찰 등 수사기관이 전 씨를 성매매조직의 리더로 판단하면서, 함께 체포된 다른 7명이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지만 그의 보석 신청은 두 차례나 기각됐다. 전 씨가 살았던 토론토 내에 명확한 주거지가 확인되지 않았고, 그가 유학생들의 비자를 이용해 성매매를 알선했다는 혐의가 아직 풀리지 않은 만큼 보석 신청을 허가할 수 없다는 것이 몬트리올 법원의 입장이었다. 사설 학원을 운영하고 토론토 한 교회의 목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전 씨는 유학생들의 비자와 콘도 등 거주지 마련 업무를 담당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을 전 씨가 성매매를 위해 입국하는 아시아 여성들에게 비자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하고, 성매매 업장을 제공했다는 것이 캐나다 경찰의 입장으로 알려졌다.
수사 과정에서 경찰은 이들의 컴퓨터와 휴대전화, 차량 2대, 금품 등을 압수해 수색했으나 혐의 입증은 하지 못했다. 이처럼 혐의 입증조차 이뤄지지 않은 수사 단계에서 담당 검사가 교체됐고, 새로운 검사는 추가 조사를 위해 전 씨의 구금 기간을 연장할 것을 요청했다. 재판부가 이를 계속 받아들이면서 전 씨는 4차례나 재판이 연기됐고, 결국 1년 6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정식 재판을 받지 못한 채 몬트리올 구치소에 수감돼야 했다.
그러나 이 사건도 몬트리올 총영사관 측에서 적극적인 대처나 사태 파악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낳고 있다. 국내에서 전 씨의 사안을 최초 보도한 <강원도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전 씨는 체포 이후 몬트리올 총영사관 측 관계자가 전 씨의 사건에 대해 “협조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선을 그은 사실을 밝혔다. 정식 재판 이전에 수사 결과를 확인하고 재판 진행을 결정하는 속행 재판을 방청하는 등 사건을 ‘주시’는 하고 있으나, 전 씨에 대한 대책이나 지원 방안을 수립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 실제로 이 사건은 현지에서조차 체포 이후 상황이 거의 보도되지 않았고, 대사관 차원의 해결 등 큰 이슈도 없었기 때문에 교민사회에서도 잊혀 가고 있던 상황이었다.
양 씨의 멕시코 판 ‘집으로 가는 길’ 사건과 전 씨의 사건의 공통점은 모두 피해자가 대사관으로부터 만족할 수 있는 지원을 받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두 사건 모두 혐의가 완벽하게 입증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각 국가는 피해자들을 ‘범죄자’로 낙인 찍었는데, 이는 대사관의 소극적인 대처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됐다. 혐의를 벗지 못한 상태에서는 대사관이 사건에 관여하기 어렵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영사는 조력 범위 내에 ‘우리 국민이 범죄피해 및 가해 사건 연루 시 현지 국민에 비해 차별적이거나 불합리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현지 당국에 요청’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 씨의 경우는 도리어 경찰 영사가 허위 진술서에 서명하도록 하는 등 강압‧조작 수사에 공조한 격이 됐고, 전 씨는 당국 검찰의 무리한 수사로 장기간 재판 없이 수감 중임에도 이에 대한 대사관의 지원이 전무하다시피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낳고 있는 것.
실제로 해외 수감된 국민을 방치하거나 정작 필요할 때 지원조차 이뤄지지 않는 등 재외공관의 부실은 지난 3월부터 지적돼 왔던 문제다. 3월 감사원이 공개한 ‘재외국민 보호 등 영사업무 운영실태’에 따르면 2013년 10월 주태국대사관은 마약소지 혐의로 억울하게 교도소에 수감된 재외국민의 사건을 재판 종결 이전에 ‘완전히 종결됐다’고 재외공관 영사민원시스템에 입력했다. 이 때문에 주태국대사관은 재판 진행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결국 이 재외국민은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지만 1년 11개월 동안 영사 면담 없이 그대로 방치되는 상황에 놓여야만 했다.
2012~2015년 10월까지 151개 재외공관의 재외국민 면회 현황을 조사한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다. 재외공관이 재외국민의 체포‧구금 사실을 인지한 2968건 가운데 영사 면회가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은 사건은 42.9%에 해당하는 1275건에 달한다.
재외국민을 상대로 발생하는 살인, 강도 등 강력 범죄에 대해서도 미흡한 대처를 한 재외공관이 다수 있었다. 2012~2014년 재외국민이 피해를 본 강력 사건 685건 가운데 재외공관이 수사진행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사건은 약 44%인 303건에 불과했다. 이 중에서도 주스페인대사관 등 4개 공관이 수사진행 상황조차 파악하지 않고 종결처리한 사건은 73건에 이른다. 그나마도 외교부에 제때 보고하지 않아 외교부의 재외공관 관리 감독의 허술함이 여실히 드러났다.
멕시코 양 씨 사건은 다행히 언론 보도를 통해 국내에 널리 알려졌고, 정치권이 가세하면서 초창기보다 신속하게 사태가 마무리될 수 있었다. 당초 외교부는 경찰 영사의 보고만을 믿고 주멕시코대사관 감싸기에 급급했다가, 사태가 점점 커지자 돌연 태도를 바꿔 장관이 직접 재외동포영사대사를 현지에 방문해 상황을 파악하도록 했다. 이는 재외국민과 재외동포를 보호하는 것이 외교부와 관련기관의 당연한 업무 수행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건이 ‘핫 이슈’로 급부상했기 때문에 급한 불을 끄고자 한 것이라는 지적도 일고 있다.
이에 대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심재권(위원장),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7일 LA 총영사관에서 열린 북미주 서부지역 재외공관 국정감사에서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정부와 영사관이 왜 존재하는지 묻게 된다. 재외국민 수감자가 부당한 인권침해를 당하지 않도록 영사제도에 빈틈이 없게 해야 할 것”이라며 영사 조력 관련 법률 발의를 예고했다. 지난 7월 김정훈 새누리당 의원도 ‘재외국민 생명·재산 보호법’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재외국민 보호법이 17대 국회에서부터 20차례나 발의됐지만 결국 임기만료로 폐기됐기 때문에 이번 국회에서 입법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다. 더욱이 영사 조력을 증강시키기에는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다는 점을 선행 해결해야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뾰족한 대안이 나오지 않아 결국 또 한 번 ‘공염불’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가 교민사회에 퍼지고 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