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순형 의원은 인터뷰에서 전·현직 대통령과 대선주자들을 향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이미 오래 전부터 수차례 주변으로부터 대선출마 권유를 받아왔으나 “난 대통령감이 못 된다”는 것이 그의 한결같은 답변이었다. 1년 전 재보궐 선거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도 그는 기자에게 “훌륭한 국회의원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대선 출마 가능성에 대해 일축했다. 그랬던 그가 이젠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조 의원은 대선출마 선언과 동시에 범여권 후보 지지도 2~3위에 오르며 대선 판도에 적지 않은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지금 조 의원의 마음속에서는 무슨 생각이 오갈까.
지난 2일 국회도서관에서 조순형 의원을 만나 출마의 변과 함께 정치 현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조순형 의원은 인터뷰 약속 장소인 국회도서관 의원열람실 한쪽 구석 자리에 앉아 공부에 몰두하고 있었다. 의원 열람실에는 조순형 의원 외에는 직원들밖에 보이지 않아 한산했다. 근래 조 의원은 이곳 열람실에서 자주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무슨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시느냐”고 물었더니 “이것저것 챙겨볼 자료들도 많고 한적해서 방해받지 않고 생각하기에 좋다”고 답한다. 주위에 아무도 없었지만 장소가 열람실이었던 탓인지 그는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답변을 시작했다.
―대선 출마를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
▲정치에 입문한 지 25년이 되었고 국회의원은 6선에 한 20년을 해왔는데 평소에 대통령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대통령이 되어서 나라를 이끌 만한 능력이나 역량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저 좋은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다. 지난 4년 반 동안 국가의 근본이 흔들리고 대통령의 리더십 부재, 통치공백의 국가적 위기 상황이 계속되는 것을 보며 느낀 바가 많았다. 민주당은 통합 국면에서 원칙 없는 통합에 내몰리고 있다. 그동안 당 내외의 뜻있는 여러 분들로부터 ‘나서달라’는 요청이나 권고를 많이 들었다. 적어도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려면 여러 가지 인적, 물적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은 많이 부족하다. 민주당에서도 대선 주자가 서너 분이 계시고 다들 훌륭한 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민주당의 당세가 약해진 까닭이다. 내 일신상의 생각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선친(고 조병옥 박사)께서 ‘개인보다 당이고 당보다는 국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말이 그렇지 사실 쉽지 않다. 지금까지 잘 실천해오지도 못했는데… 그런 좌우명도 생각하면서 출마 결심을 하게 됐다(웃음).
‘장황’하게 첫 답변을 내놓았지만 조 의원은 그동안 정말 많은 고민을 해온 듯했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하기야 정치인들이 으레 안한다, 생각 없다 그러다가 바꾸고는 하는데 나도 결과적으로는 그동안 해왔던 말을 바꾼 게 돼버렸다. 그래서 국민들께서 혹시 좀 그렇게 생각하진 않을까 염려가 된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조 의원의 출마가 적지 않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민주당에 힘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으로 보나.
▲민주당이 대통합 국면에서 많이 흔들렸던 게 사실이다. 박상천 대표가 소신과 원칙을 지켜 나가려고는 하지만 쉽지 않다. 직간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은 주목받는 대선후보가 없다는 점이다. 과연 민주당이 대선후보를 뽑을 수 있겠느냐는 회의도 있었다. 협상 과정에서 마땅한 대선후보도 제대로 없으면서 왜 그렇게 통합에 응하지 않고 독자의 길을 가려고 하느냐는 비판도 있었다. 민주당도 자존심과 자부심을 가진 하나의 정당인데 참 뼈아픈 점이었다. 내가 얼마나 힘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통합 국면에서 민주당이 적어도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는 데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전국 당원들의 사기도 올라갔고 많은 지지를 보내주고 있다.
―부인 김금지 씨도 그동안 대선 출마를 반대해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동안 나와 똑같은 생각으로 반대해왔던 게 사실이다. 최근에 당 형편도 어렵다 보니 차차 이해를 하더라. 집사람이 ‘이제 출발을 하는데 잘 될 것 같지 않으니까 너무 심각하고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즐기면서 하라’고 얘기해줬다(웃음).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이 ‘제대로 자격을 갖춘 후보가 나왔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 말 하니까 또 열린우리당에서 내 대선출마가 한나라당 도와주는 것 아니냐고들 비판하더라(웃음).
―이번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상당하다. ‘훈수정치’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인데.
―5일 출범하는 ‘대통합민주신당’이 민주당의 불참으로 반쪽자리 신당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앞으로 통합과정이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나.
▲범여 신당이 일단 창당이 된 뒤엔 민주당도 당론을 정해야 할 것이다. 현재로선 독자의 길을 가게 될 것으로 보고 우리도 경선을 준비해야 한다. 마지막에 단일화 과정은 거쳐야 할 것이다. 그래야 한나라당과 1 대 1 대결구도로 경쟁할 수 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양당제 복원이 된다는 큰 의미가 있다.
―범여권의 후보단일화가 무난하게 진행되겠는가.
▲어떻게 보면 통합보다는 후보단일화가 더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통합을 못하게 된 것도 현실이니 받아들여야 한다. 단일화 과정이 물론 어렵겠지만 못할 것도 없다. 결국은 국민지지도가 관건이 될 것이다. 지지도가 양 정당 간에 격차가 생긴다면 결국은 단일화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친노 주자’들도 신당 경선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들을 바라보는 입장은 무엇인가.
▲집권당인 열린우리당도 국정실패에 책임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만 책임이 있는 게 아니다.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지지도가 떨어지다 보니 죄다 탈당하는 것 아닌가. 배가 항해하다가 폭풍우를 만나니까 선장이 잘못한 것이라고 기관장이니 선원이니 전부 배에서 내린 것과 마찬가지다. 선장이 잘했든 못했든 다 같이 잘못이 있는 것이다. 함께 힘을 합쳐 폭풍우를 뚫어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인데 자기만 살겠다고 그러고 있다. 대선 주자 중에 총리 출신, 장관 출신이 여럿인데 그들 모두에게 공동책임이 있다. 열린우리당을 지켰어야 한다. 대단히 불리하더라도 끝까지 해야 한다. 실패하면 또 어떤가. 대선은 5년 뒤에 또 있다. 총선도 있지 않나. 야당이 되면 어떤가. 그것이 정치의 본연인 것이다. 정동영 전 의장도 열린우리당 당의장을 두 번이나 한 분이다. 그래서 내가 정치 그만두라는 소리는 좀 심한 것 같고 이번에는 좀 쉬라고 말했다. 내가 얘기해서 그런 건 아니겠지만 김근태 전 의장도 그만두지 않았나.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경쟁자적 입장이라서 그런 것 아니냐고들 하겠지만 내가 그분들보다 조금 더 살고 조금 더 정치를 한 입장에서 충정으로 하는 소리다. 정치도 길게 보고 해야 한다. 인생도 그렇지 않나. 당장 눈앞은 힘들지만 언젠가 또 기회가 오는 법이다.
―손학규 전 지사에게도 이번에는 쉬고 다음 대선에 나오라고 얘기했는데.
▲이유는 다르지만 그렇게 말했었다. 그분도 자질과 능력을 갖춘 훌륭한 분이지만 정치는 명분이 중요한 것이다. 당장의 현실이 어렵다고 회피한다면 그건 정치 윤리와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오늘날 정치인들이 왜 여론조사에서 신뢰도 최하위를 받는 것이겠나. 정치도리와 윤리가 없어서 그런 것이다.
▲ 지난 7월 26일 대선출마선언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그건 여론조사 결과가 보여주지 않는가. 여론조사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지지율이 그렇게 오르지 않는데 무슨 경쟁력이 있겠나.
―한나라당 상황에 대해서도 좀 물어야 할 것 같다. 두 후보 간 검증 공방을 어떻게 바라보나.
▲대통령 후보에 대한 도덕성이나 기타 허물에 대해 검증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검증과정을 보면 한계를 지나쳤다. 상대방 후보와의 경선도 아니고 당내 동지와의 경선은 분명히 한계가 있어야 하는데 경선의 본래 취지를 잊은 듯하다. 내가 더 낫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순전히 상대방의 허물만 찾고 있다. 그 허물에 대해 명쾌하게 규명이 된다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제대로 될 수가 없다. 아주 좋지 않은 경선이 되었다. 한국 정치를 위해서도 안 좋은 결과를 낳았다.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이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을 좋은 관행으로 정착시켜야 할 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승자와 패자는 나오겠지만 이래서야 두 사람 간에 손을 잡을 수 있겠는가. 마음으로 승복하지 못할 것이다.
―조 의원도 대선 주자로서 검증과정을 거쳐야 할 텐데. 예전 인터뷰에서 대선 후보로서의 검증과정이 너무 혹독해서 감내할 자신이 없다고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얘기 한 적이 있다. 난 그렇게 큰 허물은 없다고 생각한다(웃음). 그래도 어느 정도 준비를 해야겠다. 각오는 하고 있다.
―조 의원도 대선후보로서 대표적인 정책 공약을 알려야 할 텐데 준비해 둔 것이 있나.
▲출마 선언 때 기본적인 10개 공약을 제시했는데 그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생각해 둔 바를 정리해서 보완할 것이다.
―대선 후보로서 조순형 의원도 대외 언론 관리에 신경 써야 하지 않나. 또 각 분야별로 팀이 가동되고 있는 타 주자들의 캠프의 경우 후보들의 옷차림과 메이크업에까지 세심한 관리를 하고 있는데 그런 부분에는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나.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그렇게 할 만한 인적 준비도 없다. 물론 대선 후보로서 달라져야 할 부분이 있겠지만 갑자기 사람이 달라질 수가 있겠나. 내 나이가 일흔이 넘었는데 갑자기 바뀌지는 못할 것이다. 내 있는 그대로를 그냥 보여주겠다(웃음).
―일흔이 넘은 나이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젊어 보인다는 소리를 자주 듣지 않나.
▲그런 소리 좀 듣는다(웃음). 연설 할 때는 없는 힘도 좀 더 내고 그런다.
―끝으로 대선후보로서의 각오를 밝힌다면.
▲선거라는 것이 모두 다 승리를 목표로 하는 것이지만 그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과정 아니겠는가. 각 정당이나 후보가 서로의 주장과 주의를 내세우고 이해시키며 결국은 국가발전에 기여해야 하는 것이 승리만큼 중요한 것이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