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RS는 의료를 목적으로 한 중립자선 치료기 ‘HIMAC’를 세계 처음으로 만들었다. 메탄가스에서 얻은 탄소를 이온광선에 실어 선형가속기에 싣는다. 이때가 광속 10%. 이를 싱크로토론 원형 가속기에 넣어 빛의 70%까지 속도로 올린다. 중입자선을 암 조직에 쏘면 초당 10억 개의 원자핵 폭발이 일어나 암 조직과 DNA를 파괴한다. 방사선 치료이기 때문에 절개 수술과 항암 치료가 없다. 치료 기간도 짧고 후유증도 없으며, 아직 보고된 재발 사례도 없다. 그야말로 ‘꿈의 암 치료법’인 셈이다.
의료용 중입자가속기 치료센터(지하 2층, 지상 2층, 총면적 1만 2879㎡)가 지난 6월 부산 기장군 동남권원자력의학원 뒤편에 들어섰지만 가속기와 치료시설이 없어 텅 비어 있는 상태다. 사진=연합뉴스
현재 NIRS의 기술력은 세계 제일이며, 국가 단위로도 일본이 가장 앞서나가고 있다. 중입자가속기는 일본에 3기(치바·효고·군마현), 독일에 2기, 전세계에 5기만 가동 중이다. NIRS는 연간 700명의 환자를 소화할 수 있고, 효고·군마현 시설은 각각 200~300명의 환자 수용이 가능하다. 이 중 NIRS는 지난 10여 년간 8000여 명을 치료하는 등 임상 경험이 가장 풍부하다. 독일에서는 2014년까지만 해도 현재 연간 3~4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뇌 치료에만 써왔고, 암 환자로 분야를 넓힌 것은 1~2년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 2010~2011년 중입자선암치료 기술이 한국에 전해졌을 때 병원·제약회사 등 국내 의료업계 종사자들은 의아하다는 반응이었다. 탄소입자를 빛의 속도로 돌려 암조직에 정확히 맞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물론 이 같은 반응은 국내 의료 시장에서 적지 않은 규모를 차지하고 있는 암 시장을 뺏길 수 있는 위기감의 발로일 수도 있었다. 국립암센터가 양성자치료를 이제 막 도입한다고 밝혔던 터라 중입자치료는 더더욱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탄소이온(중입자)은 헬륨이온(양성자)보다 무게와 파괴력이 12배나 되기 때문에 기술을 실현하는 것이 더 어렵다. 분자가 무거울수록 전이 밀도가 높아져 세포 치사효과가 커진다. 그러나 그만큼 정상조직에도 악영향을 줄 가능성도 높다. 정확도와 속도·파괴력 조절이 안 된다면 애초에 의료기술로 쓸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2013년께부터 미국·이탈리아·중국·오스트리아 등이 중입자선치료기 도입을 추진한다고 하자 국내에서도 덜컥 중입자선치료기를 들여오겠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의료산업단지를 가진 충청·부산 등 일부 지역자치단체가 주축이 됐다. 지자체는 해외의 기술을 이전받으면 어렵지 않게 중입자치료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러나 중입자 기술은 가속기와 방사선·입자·레이저 정밀 기술이 총아다. 그만큼 구현이 어려운 기술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일단 예산을 배정해 사업을 밀어붙였다. 토지보상금을 포함해 1950억 원의 사업비를 책정했다. 양성자 기술도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는데 중입자 가속기를 도입한다고 하자 불가능하다는 국내외 전문가들의 지적이 적지 않았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 고기부터 씹으라는 셈이었다. 결국 사업방향은 원천기술 개발보다는 해외로부터 장비를 수입해 와 의료용으로 쓰자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해외의 중입자 치료기 도입에 정부가 돈을 대겠다고 하자 서남권 등 전국 지자체가 손을 들고 정부에 중입자치료기 설치를 확대해 줄 것을 요구했다. 명분은 지역균형 발전과 의료복합 헬스케어 관광타운 조성이었다.
그렇게 무리하게 추진하던 중입자선치료기 사업은 이번 국감에서 그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국감에서 지난 6월 중입자가속기치료센터가 완공됐다고 밝혔으나, 중입자가속기 개발은 표류 중이었다. 원자력의학원이 분담금을 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유라고 한다. 핵심 설비인 가속기는 없고 차폐 외벽을 줄이는 바람에 방사능 유출 우려까지 제기됐다. 중입자가속기사업단은 5년간 17억 원의 성과급도 챙겼다.
이보다 앞서 중입자치료기를 운용할 인력과 연구개발 계획도 내놓지 못했다. 중입자치료기를 의료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선 병원의 진료 및 치료 시스템과의 호환성, 방사선 전문 인력 확충 및 교육 등의 운용 계획부터 밝혀야 한다. 국내에서 아직 시험조차 해보지 않은 설비이기 때문이다.
또 중입자치료기는 일반 방사선 치료와는 다르다. 치료를 시작하기 전 환자의 3D 모형을 떠야 하고, 가속기를 가동할 때 속도와 입자의 폭발력을 조절하기 위한 물리 연구인력도 필요하다. 또 움직이는 장기인 위·대장·소장암과 혈액암은 중입자치료기로 완벽하게 치료가 어렵다. 장기의 움직임을 추적 치료하는 기술 개발이 거의 마무리 단계지만, 아직 국내에는 이를 원숙하게 소화할 만한 인력이 없다.
연세의료원 등은 일본의 히타치가 개발한 중입자선 가속기를 들여온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들여오는 것은 설비일 뿐이다. NIRS 등 일본 전문기관과의 협력이나 운용지원, 기술 이전 논의는 없다. 자칫 수천억 원대 설비가 무용지물로 남을 수도 있다.
이보다 앞서 고비용을 감내하고 치료에 나설 환자가 얼마나 있을 것이냐는 문제가 있다. 일본에서 중입자치료를 받는데 1인당 약 1억 원 안팎이 소요된다. 국내에서는 최소 4000만~5000만 원에 달할 전망이다. 중입자치료는 양성자치료처럼 여러 번 받을 필요는 없지만 한 번에 많은 비용이 든다.
이에 비해 국립암센터·삼성서울병원이 운영 중인 양성자치료는 정부가 건강보험을 적용하기로 하면서 가격이 확 낮아졌다. 그간 양성자 치료는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아 회당 1000만~2000만 원 들었으나, 건강보험을 적용받게 되면 5~10%만 부담하면 된다. 보편화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뜻이다. 효과에서는 중입자가 앞서지만 비용에서 경쟁력이 없다. 정부 차원으로 중입자치료기 도입을 펼치고 있으나, 이에 맞지 않는 건강보험 시책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중입자치료를 전가의 보도처럼 받아들여선 안 된다. 아직 국내에선 운용한 적이 없기 때문에 한국인에도 맞는 수술법인지, 부작용이나 연구 결과, 임상 사례를 분석하는 것이 먼저”라며 “운용 능력과 국내 의료 여건, 경제성 등을 고려하지 않고 정부가 주먹구구식으로 도입 계획을 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서광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