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6월 교통사고를 당해 7년간 병상에 누워 있다가 지난 7월 서울대병원에서 사망한 황 씨의 사망진단서엔 직접사인인 ‘패혈증’만 표기, 사망의 종류가 ‘병사’로 분류됐다. 서울대병원은 황 씨가 사망하기 직전에 혈액배양검사를 실시한 결과 Klebsiella pneumonia(폐렴간균)이 검출됐고, 폐렴간균에 의해 패혈증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병사’라는 주장이다.
롯데손해보험 본사 전경. 사진=비즈한국DB
반면 유족은 황 씨가 교통사고로 인해 우측 어깨 골절상을 입었고, 20여 차례에 걸쳐 어깨 수술을 받다가 MRSA(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에 의해 패혈증이 왔으며, MRSA 치료와 어깨 수술 과정에서 면역력이 떨어져 응급실에 떠도는 폐렴간균에 감염돼 사망했으므로 ‘외인사’로 수정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유족은 대한의사협회와 통계청이 작성한 ‘사망진단서 작성안내 리플릿’을 근거 자료로 제시하고 있다. 이 리플릿에는 외상의 합병증으로 질병이 발생해 사망했을 경우 사망의 종류가 ‘외인사’로 표기돼야 한다고 적혀 있다.
이처럼 서울대병원과 유족의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롯데손해보험이 황 씨의 입원비 및 치료비 일부를 지급보증하지 않아 적잖은 파장이 일 조짐이다. 롯데손해보험은 황 씨의 교통사고 가해자인 노 아무개 씨(47)가 업무용자동차종합보험에 가입했던 보험사로, 손해배상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롯데손해보험은 황 씨가 사망하기 전까지 입원했던 7개 병원 중 2개 병원의 입원비 및 치료비를 지급보증하지 않았다. 황 씨는 7년 동안 대학병원 3곳, 정형외과병원과 요양병원 각 2곳 등 모두 7개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다. 이 중 롯데손해보험이 지급보증을 하지 않은 병원은 S 요양병원과 H 요양병원이다.
황 씨의 차남인 김 아무개 씨(32)는 “어머니는 당시 15차례에 걸쳐 어깨수술을 받아 통증이 심했고 패혈증, 발작, 부종, 무호흡증 등으로 요양이 필요한 상황이었다”면서 “대학병원에서 장기간 입원할 수 없어 요양병원으로 전원했는데, 롯데손해보험은 교통사고와 무관하다며 중도에 지급보증을 끊었다. 어깨 수술을 한 병원에만 지급보증을 해줬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두 병원에 밀린 병원비만 1억여 원이며, 간병비를 비롯한 부수적인 비용은 모두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해결해야만 했다”면서 “어머님의 어깨가 완치되지 않은 상태에서 롯데손해보험이 지급보증을 끊어버렸고, 결국 병세가 더욱 악화돼 사망하시고 말았다. 롯데손해보험만 아니었다면 어머님은 돌아가시지도 않으셨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롯데손해보험은 황 씨가 S 요양병원과 H 요양병원에 입원한 건 교통사고와 전혀 무관하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교통사고로 인해 황 씨가 다친 부위는 오른쪽 어깨인데, 두 요양병원에서는 파킨슨증후군 치료를 받았다는 것이다.
롯데손해보험 관계자는 “교통사고가 난 후에 파킨슨증후군 진단을 받았지만, 이는 교통사고로 인해 발병한 게 아니다”며 “어깨 수술과 관련된 입원비 및 치료비의 지급보증을 해주지 않았다면 보험회사의 횡포로 볼 수 있겠으나, 파킨슨증후군은 교통사고와 전혀 무관하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고 반박했다.
유족이 황 씨의 파킨슨증후군 진단과 관련해 중앙대학교 정형외과에 신체감정을 의뢰한 결과, 교통사고가 100% 기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반면 서울대병원은 대한의사협회에 황 씨의 신체감정을 의뢰했다.
유족과 롯데손해보험 양측은 황 씨의 신체감정서를 근거자료로 내세우고 있다. 우선 유족이 지난 2012년 10월 중앙대학교병원 신경외과에 의뢰한 신체감정서에는 ‘교통사고 직후 발생한 것은 아니나 교통사고로 인한 치료 중 발생하였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현 증상에 교통사고가 100% 기여하였을 것으로 사료됨’이라고 적혀 있다. 즉 교통사고로 인해 파킨슨증후군이 발병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김 씨는 “일반 파킨슨증후군 환자에 비해 어머니는 발병속도가 상당히 빨랐다”며 “한 의사로부터 교통사고가 없었더라도 파킨슨증후군이 발병될 수도 있으나, 교통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남들보다 30년이나 빠르게 진행됐다는 소견을 들었다”고 보탰다.
반면 롯데손해보험은 대한의사협회가 작성한 황 씨의 신체감정서를 근거자료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자료는 롯데손해보험의 내부자료라서 보여줄 수 없다는 입장을 ‘비즈한국’에 전했다. 다만 “황 씨에 대한 신체감정서를 대한의사협회에 의뢰한 결과, 파킨슨증후군과 교통사고의 연관성은 10% 미만으로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전혀 무관하다는 것은 아니니 요양병원 치료 및 입원비 일정 부분이라도 지급보증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롯데손해보험 관계자는 “유족 측과 소송이 진행 중이므로 그 결과에 따르겠다”며 말을 아꼈다.
한편 황 씨 유족은 지난 2011년 12월 롯데손해보험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내용은 황 씨가 교통사고로 인해 장애가 생겼고, 이에 따라 더 이상 식당일을 할 수 없게 됐으므로 임금에 대한 보상과 가족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것이다.
유족은 롯데손해보험이 지급보증을 중단한 시기가 소장을 접수한 날 직후인 점으로 미뤄 소송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지급보증을 해주지 않았던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유족이 소장을 접수한 건 2011년 12월 21일. 롯데손해보험이 지급보증을 중단한 것은 2012년 1월 1일부로 유족은 기억하고 있다.
김 씨는 “어머니가 S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병원 측으로부터 지급보증이 중단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5개월 동안 아무런 문제없이 지급보증을 해줬던 롯데손해보험이 소송장이 접수되자마자 지급보증을 중단한 것”이라며 “당시 롯데손해보험 담당자로부터 ‘소송으로 넘어갔으니 더 이상의 보상은 없다’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서울대병원에도 지급보증을 해주지 않다가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하고 나서야 지급보증을 해줬다. 민원이나 언론 노출은 겁내면서 소송 앞에서는 너무 당당한 롯데손해보험에 화가 난다”고 토로했다.
롯데손해보험 관계자는 “소송 때문에 지급보증을 중단한 것이 아니라 파킨슨증후군이 교통사고와 무관하다고 판단한 이유”라고 거듭 강조하며 “소송 중인 사고에 대해서는 자세한 이야기를 해줄 수 없다. 판결문이 진실을 이야기해줄 것”이라고 밝혔다.
유시혁 비즈한국 기자 evernuri@biz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