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0일 한국과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 협상을 타결한 뒤 처음 열린 수요집회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일요신문 DB
여성가족부가 2014년부터 매년 추진해오던 ‘위안부 피해 해외홍보 사업’을 지난 12·28 한일 합의 이후 축소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국정감사를 통해 드러났다. 특히 2016년 ‘위안부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사업’은 전년도에 예산 4억 4000만 원까지 책정됐지만 여가부는 이 예산을 집행하지 않았다.
국회 여성가족위원장 남인순(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여가부는 2014년과 2015년에는 민간단체 기념사업 지원 차원에서 소요예산을 일부 지원했다. 하지만 여가부는 유네스코 등재는 기록물을 소장하고 있는 민간단체에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에 따라 2016년부터 민간단체에서 추진하였기에 미집행한다고 밝혔다.
남 의원은 이에 대해 “위안부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관련 기편성된 예산을 정부 마음대로 집행하지 않고 심지어 내년엔 아예 예산을 요구하지 않았다”며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정부가 사실상 위안부 기록물 세계유산 등재 사업을 철회한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사업은 결코 민간단체사업 차원이 아니었으며 역대 여가부 장관들이 국내외적으로 공식적으로 노력해온 것을 한일 합의로 인해 뒤집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피해 실태를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제작한 위안부 백서 또한 올해는 발간되지 않았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여가부 자료에 따르면 2014년과 2015년에 꾸준히 발간해 온 <위안부 바로알기 백서>(영어·중국어·일어판)가 2016년에는 제작되지 않았다. 이에 박 의원은 “일본이 현재 유네스코 분담금을 내지 않는 등 국제기구의 재정을 압박하며 위안부 기록물 등재를 방해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국제 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위안부 관련 정부 사업을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또 ‘일본군위안부피해자 관련 국제학생작품 공모사업’도 올 해부터 ‘국제’라는 단어를 명칭에서 빼고 국내 학생 위주로 실시한다고 박 의원은 전했다.
이밖에도 여가부는 지난 2014년 1월부터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 축제, UN국제기구 일본군 위안부 문제 홍보,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토론회, 일본군 위안부 국제 심포지엄 개최 등 다양하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 국제 홍보사업을 벌여 왔다. 하지만 이러한 사업들이 올 해 들어선 전무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정춘숙 민주당 의원은 “2014년부터 국제 사회를 대상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방안 모색을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왔던 여가부가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국제 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12·28 한일 합의 이후 겉으론 ‘치유’를 외치며 위안부 관련 사업을 축소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가운데 재단법인 ‘화해치유재단’은 지난 14일 한일 합의를 통해 받은 10억 엔(한화 110억 원)을 수용 의사를 밝힌 29명의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지급하겠다고 밝혀 또다른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앞서 재단은 지난 11일부터 사업 공고를 내고 지급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재단은 내년 6월 말까지 피해자와 유족의 신청을 받아 지급신청서 등 제반 서류가 갖춰지고 서류 검토가 이루어지는 대로 순차적으로 현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재단이 밝힌 지급 대상은 정부에 등록·인정받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지난해 12·28 한일 합의 날짜를 기준으로 생존자는 1억 원, 사망자는 유족이 신청할 경우 2000만 원을 지급받을 수 있다. 지급 방식은 일시금이 아닌 분할 지급될 전망이다.
재단은 지난해 말 기준 생존 피해자 46명 중 29명이 현금 지급을 수용한다는 의사를 밝혀 이들에게 우선 지급한다는 방침이다. 김태현 화해치유재단 이사장은 “재단사업에 대해 직접 수용 의사를 밝히시고 이사회 의결을 마친 피해자 할머니들부터 첫 지급하게 됐으며, 재단사업을 수용하신 피해 할머니들게 가능한 빠른 시일 내 지급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모든 피해자와 유족들을 찾아뵙고 면담할 준비가 돼 있으며 관련 분들의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재단은 또 피해자 지원 후 남은 금액을 기념비 사업이나 기증 등을 통해 모두 지출할 계획이다. 재단 관계자는 “지속적인 공고를 하고 만약 전달되지 못한 금액은 기념사업이나 기증 등 다른 쪽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라며 “어떤 방식으로든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재단에 따르면, 수용 의사를 밝힌 29명 중 직접 수용 의사를 표한 피해자는 11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18명의 경우 보호자 혹은 유족이 피해자를 대리해 의사를 밝혔다. 여기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운영하는 ‘쉼터’ 거주 3명과 ‘나눔의 집’ 거주 10명의 피해자는 면담이 성사되지도 않았다. 이들 피해자들은 12·28합의가 피해자의 의사를 담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10억 엔 수용의사를 거부하고 있어 갈등은 지속될 전망이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253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서 생존 피해 할머니, 시민단체 등 참가자들은 성명서를 통해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로부터 10억 엔이란 돈을 덥석 받아 화해치유재단을 세우고 생존 할머니들에게 1억 원씩 선심 쓰듯 나눠주며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며 “잘못된 것에 대한 법적 배상이 아닌 모호한 성격의 돈으로 면죄부를 사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8월 위안부 피해 할머니 12명은 서울중앙지법에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일 합의는 2011년 헌법재판소 결정에 어긋나며 피해자들에게 정신적·물질적 손해를 입혔다”면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지난 2011년 헌법재판소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있어 한국 정부가 법적 절차를 수행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냈다. 이 헌재 결정에 근거해 할머니들이 정부에 법적 책임 및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다.
정대협도 화해치유재단의 결정에 “정부는 현금을 수용하기로 한 일부 할머니들을 앞세워 이 사태를 종결지으려 하고 있다”면서 “현금을 수용했든 안 했든 10억 엔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법적 권리가 소멸될 수 없으며 정의와 인권 회복을 위한 노력을 꺾을 수 없을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