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시즌 팬들의 큰 관심을 불러 모았던 김성근 감독의 거취가 유임으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언론이 앞 다퉈 김성근 감독의 유임을 보도한 데에는 김 감독이 지난 20일 일본 미야자키에서 진행되고 있는 마무리 캠프를 보기 위해 출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김 감독이 마무리 캠프에 합류했다는 것 자체가 유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팬들의 퇴진 시위 등 좋지 않은 여론에도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의 거취가 유임으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한화 구단 상황을 잘 알고 있는 A 씨로부터 김 감독 유임의 배경과 그 속사정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먼저 김성근 감독의 퇴진 시위가 벌어지고 각종 야구 커뮤니티에선 김 감독의 퇴진을 성토하는 동영상과 서명 운동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단이 반응을 보이지 않는 데에는 모기업 최고 결정권자의 움직임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외부 상황과 달리 내부에선 김성근 감독이 내년에도 팀을 이끌어 갈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김 감독 유임은 기정사실이었다. 가장 큰 이유가 그룹 최고위층의 입김 때문이다. 김응용 전 감독에 이어 김성근 감독도 위에서 결정해서 내려 보낸 감독 선임이었다. 즉 구단에서 감독 후보군을 정해 그룹에 보고한 형식이 아닌 그룹에서 ‘찍어’ 내린 인사 형태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구단에선 현 감독에 대해 이런저런 보고를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룹도 듣고 보는 귀가 있기 때문에 김 감독과 관련된 좋지 않은 여론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래도 결정권자의 허락 없이 감독을 교체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김 감독은 내년에도 한화를 계속 맡게 돼 있다.”
2014년 3년 계약으로 한화 사령탑을 맡은 김성근 감독. 최악의 여론에도 불구하고 그가 흔들림 없이 팀을 이끌어가는 데에는 자존심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 감독은 지금까지 다른 팀 감독을 맡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잘린 걸 자주 언급했었다. 강연할 때도 이 내용은 강의 재료로 소개되며 자신이 그런 숱한 경질과 사퇴 압박 속에서도 여전히 야구인으로 살아가는 걸 자랑스러워했다. 그런 김 감독으로선 구단이 먼저 내치지 않는데 여론이 좋지 않다고 알아서 감독직을 그만두는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스스로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건 자신이 해왔던 야구가 잘못됐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한때 ‘야신’으로 추앙받던 김성근 감독은 두 시즌 동안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것은 물론 선수 혹사 논란과 선수단 운영 등의 문제로 더 이상 팬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중 가장 큰 문제는 선수들이 줄줄이 부상으로 수술대에 오른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주축 투수들이다.
한화 구단은 지난 15일 좌완 투수 권혁의 수술 사실을 발표했다. 시기만 문제였지 어느 정도 예견된 부분이었다. 권혁은 이미 8월말 사실상 시즌 아웃이었다. 팔꿈치 통증을 느끼고 서산 재활군에서 재활을 병행했지만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뒤늦게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은 것이다. 송창식은 캐치볼 하던 도중 통증이 재발하면서 11일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
송창식 권혁의 수술 소식은 한화 팬들에게 뼈아픈 여운을 남겼다. 그들은 한화의 필승조였기 때문이다. 물론 뼛조각 제거 수술은 인대 접합 수술과 달리 회복이나 재활 과정이 비교적 순조롭게 이어지는 터라 내년 시즌 이들이 재기를 기대할 수 있지만 일련의 선수단 부상 일지를 살펴보면 한화 팬들의 근심이 이해가 될 수밖에 없다.
김성근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배영수(2015년 11월,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 윤규진(2015년 10월, 어깨 관절경 수술), 이동걸(2015년 10월, 무릎 수술), 임준섭(2016년 3월, 팔꿈치 뼛조각 제거 및 인대 접합 수술), 로저스(2016년 6월,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 안영명(2016년 7월, 어깨 관절경 수술), 김범수(2016년 10월, 고관절 수술), 송창식(2016년 10월,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 권혁(2016년 10월,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이 잇따라 수술대에 올랐다. 이중 배영수는 미야자키 마무리 캠프에서 최고 구속을 140km대 중반까지 끌어올리며 상당히 호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한화 선수들의 부상에 대해 야구 선수들의 어깨, 팔꿈치 수술을 담당했던 정형외과 전문의 B 씨는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투수의 어깨나 팔꿈치는 쓰면 쓸수록 닳기 마련이다. 특히 권혁이나 송창식처럼 이미 수술 경험이 있거나 나이가 많은 선수들은 젊은 선수들에 대해 회복 속도가 더디고 재발 위험이 상당하다. 한화 투수들이 혹사 논란과 함께 부상이 끊이지 않는 데에는 선수와 구단은 아니라고 해도 무리하게 투구를 했기 때문이다. 이걸 조절해주는 사람은 투수코치와 감독이다. 특히 감독이 선수의 몸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투수들의 어깨나 팔꿈치는 건강을 유지할 수 없다. 물론 선수들도 자신의 몸 관리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지만 감독, 코치가 선수 몸을 챙겨주지 않는 상황에서 선수가 자기 몸을 챙기긴 어렵다. 스포츠 세계에서 성적을 내는 건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선수의 몸이다. 선수는 기계가 아니다. 기계도 오래 쓰면 닳고 고장나기 마련인데 하물며 선수의 몸은 오죽하겠나.”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