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5일 노량진을 찾아 취업준비생들과 만난 이회창 후보. 2002년 대선 당시 대학생들과 어색하게 자전거를 타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아래 사진). 그의 민심잡기 전략이 이번엔 성공할 수 있을까. 사진공동취재단 | ||
과연 그는 완전히 달라진 것일까. 그리고 이런 모습을 통해 민심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부산에서부터 다음날 저녁까지 30시간 동안 바로 곁에서 이 전 총재의 가식 없는 맨 얼굴을 지켜보았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처음 만난 곳은 14일 부산 해운대구의 영광재활원에서다. 이날은 이 전 총재가 대전을 시작으로 전국 투어를 시작한지 3일째 되는 날로 일정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이른 오전 근방의 범어사를 들른 탓에 약속된 시간을 훌쩍 넘긴 오후 1시 30분경 이 전 총재는 보라색 점퍼 하나를 걸치고 과거에 비해 비교적 수수한 모습으로 재활원에 들어섰다.
오후에는 인근 자갈치 시장에 들러 상인들과 일일이 인사를 주고받기도 했다. 그가 자갈치 시장을 찾은 것은 지난 2002년 대선 이후 5년 만이라고 했다. 생선가게 아줌마의 손을 잡아주고 비린내 나는 생선도 직접 손으로 들어 보이는 행동 등 시장 언저리를 방문한 대선 후보들에게 늘 볼 수 있을 법한 행동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그가 5년 전 자갈치 시장을 방문했을 때와 가장 다른 행동을 보인 것은 시장 골목 허름한 가게에서 단돈 5000원짜리 ‘국밥’을 먹었다는 점이다.
지난 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말쑥한 모습과 귀족적인 이미지를 풍기던 그가 서울의 한 떡집에서 떡가래를 손수 뽑는 모습이 언론에 비쳤을 때 과거 그를 보좌했던 인사들 사이에서는 ‘측은하다’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지방 민심탐방을 행한 3일 내내 ‘국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장급여관에서 머무를 때도 비슷한 말이 나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평가는 달라지고 있다. 과거의 이 전 총재에서 볼 수 없었던 서민적인 풍취가 이목을 끌고 있음에는 틀림없었다.
이 전 총재 캠프의 강삼재 전략기획팀장은 이를 “이제 세 번째 도전인데 지난 낙선을 통해 국민들을 대할 때 어떤 자세로 대해야겠느냐 생각해보니 이 전 총재의 태도가 변한 것이고 그가 무소속 후보라는 점에서 맞아떨어진 것이다”라며 “정당을 따라가려 하면 가랑이가 찢어진다. 슬림화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방대한 조직을 이끌 수가 없다. 그런 사람이 호텔에 가고 갈비 뜯고 그러는 게 이미지와 맞겠느냐”고 말했다.
이 전 총재 역시 민심을 잡기 위해 서민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이 전 총재는 오후 부산일보 빌딩에서 열린 ‘아시아연합포럼’ 초청강연 말미에 직접 그 사실을 고백하기도 했다. 그는 “나는 지금 돈도 없고 세력도 없다. 그러나 돈 있고 세력 있는 큰 정당의 선장이었다. 그러나 국민을 얻지 못해 실패했다”며 “이제는 자만하고 안이한 생각에 빠졌던 이회창이 아니라 진심으로 국민 속에서 호흡을 같이하며 뛰는 그런 이회창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점들 때문인지 이 전 총재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후 유독 점퍼를 즐겨 입는 것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과거의 귀족적인 모습에서 이제는 검은색 정장 대신 보라색, 녹색 등의 비교적 수수해 보이는 점퍼를 즐기고 있다. 지난 97년, 2002년 이 전 총재의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불리던 한나라당 권철현 의원은 이 전 총재의 점퍼를 입고 나서는 모습을 보고는 “불쌍해 보이기도 하고 쓸쓸해 보이기도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서민적인 모습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이 전 총재는 여전히 귀족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서빙고동의 210.25㎡(63평형)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 전 총재의 집은 현재 공시지가가 16억여 원에 이른다. 집 앞에 즐비한 고급 외제차들 또한 서민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게만 느껴진다. 이곳의 한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A 씨는 “이 전 총재의 차량이 그렇게 좋은 축에 들지 못하는 동네”라고 말했다. 이 전 총재는 얼마 전까지 에쿠스를 사용했다.
한편 이 전 총재가 자신의 이미지 쇄신을 꿈꾸며 힘 기울이는 지역의 민심도 ‘서민층의 지지율 상승보다는 이념의 대립을 통한 극우 보수세력의 지지층을 굳건히 하는 면만 부각되고 있다’는 견해들이 아직도 없지 않다. 부산일보 빌딩에서 아시아연합포럼이 주최한 이 전 총재의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이란 주제의 강연을 하는 자리에서 그 일면을 볼 수 있었다. 이 전 총재의 강연 전 강단에는 부산대 철학과 최우원 교수가 인사말을 하기 위해 올랐다. 최 교수는 지난 8월 국회에 난입해 “2002 전자개표기 조작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다”는 주장을 펼쳤던 인물. 그는 이 자리에서도 현직 대통령을 ‘노무현 씨’라고 거침없이 표현하며 “노무현 일당이 우리 대한민국을 농락하고 위험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말하는가 하면 “이 반역의 도당들은 지난 50년 동안 너무나 치밀하게 작업을 꾸며왔기 때문에 위장 우익 트로이 목마(이명박 후보)를 등장시킨 것이다”라고 발언하자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 지난 14일 부산의 영광재활원을 찾은 이 후보가 원생을 돌보고 있다(위). 다음날인 15일에는 서울의 한 택시회사를 찾아 기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 ||
물론 서민들 중에서도 그의 변모된 모습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많다. 부산 일정을 마친 다음날인 15일 이 전 총재는 노량진 고시촌을 방문해 ‘청년 구직자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이 전 총재의 노량진 행보는 연예인들의 ‘거리 인터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의 모습을 휴대폰에 담아가는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 전 총재는 이곳의 한 허름한 식당에서 7~8명의 청년 구직자들과 함께 1500원짜리 국수를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함께 자리를 하던 한 학생은 이 전 총재에게 미리 준비한 찹쌀떡을 주며 “오늘이 수능 날이니 그 의미를 살려 이 전 총재도 이 찹쌀떡 드시고 12월 19일에 철썩 붙으시길 바란다”며 “지난번에 단상에 올라가 구호를 외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키가 작아서 올라가셨다는 얘기가 있더라. 나도 키가 작은데 키 작은 사람이 대접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이 전 총재가 빼놓지 않고 하는 말 탓에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바로 시도 때도 없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 대한 비판성 발언들 때문이다. 이 전 총재는 택시 회사를 찾은 자리에서건 청년 구직자를 찾은 자리에서건 직·간접적으로 상대 후보에 대한 비판을 잊지 않았다. 이 때문에 진심으로 서민에게 다가가 민심을 동하게 하는 자리로서의 의미가 퇴색하기도 한다.
이 전 총재가 지역 민심 탐방을 하는 동안 그의 공약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이 전 총재를 계속해서 따라다닌 질문은 ‘도대체 공약이 뭐냐’는 것과 ‘이 전 총재가 출마의 변으로 삼았던 대북정책과 이명박 후보의 대북정책의 차이점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이 전 총재는 이에 대해 부산 강연회 후 이어진 기자 간담회에서 “내가 이미 오래전부터 대선 출마를 준비하던 사람이었다면 확실한 공약을 내세웠겠지만 국가적으로 위급함을 느껴 갑작스럽게 나왔기 때문에 뚜렷한 공약을 가지고 나오지는 못했다”며 “그러나 확실한 공약은 이미 다 세워져 있고 발표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 전 총재가 부산 자갈치 시장을 방문해 비린내 나는 생선을 맨손으로 들어 올리며 서민들의 민심을 끌어올리려 할 때 한편에서는 “공약이 있어야 밀어주지”라는 상인들의 말이 들리기도 했다.
이 전 총재는 언론과 개별적인 접촉도 일절 하지 않고 있다. 공식적인 행사에 따라다니는 기자들이 던지는 질문에 준비된 답변만 할 뿐 언론사의 개별 인터뷰 요청은 거의 거절하고 있다. 그의 일정을 30시간 동안 동행했던 기자가 “인터폰으로라도 좋으니 인터뷰 시간을 잠시만 내달라”고 부탁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그를 수행하는 보좌관은 “이 전 총재가 어디든 언론과의 인터뷰 자체를 일절 하고 있지 않다”며 양해를 구했다. 이 전 총재가 출마와 동시에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것 때문에 당분간은 공식적인 자리 외에는 아예 언론과 개별적인 접촉을 하지 말자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앞으로 한 달도 남지 않은 대선 기간 중 이 전 총재가 또 어떤 달라진 모습을 보일지 주목된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