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뇌관이라고 불리던 BBK 사건 무혐의 처분 후 이명박 후보 지지 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사진은 KBS 백남준 특별전을 관람하고 있는 이 후보.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그러나 이런 이명박 후보의 대세론 속에서도 BBK 여진이 여전히 이 후보 주변을 흔들어 대고 있다. 검찰의 BBK 사건과 관련 무혐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검찰 수사를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이 신뢰한다는 사람보다 많다. 정동영 대통합신당 후보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은 광화문에 모여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6일 실시된 TV 토론 현장에서 상대후보들이 보여준 모습은 이념이나 정책과 상관 없는 ‘부패 대 반부패’ 구도로 이 후보를 몰아붙이는 1대 다수의 구도였다. 이 후보의 자신감과 아직도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불안감은 무엇일까. 그의 유세현장을 동행 취재해 봤다.
이명박 후보의 거리 유세 현장에서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연신 ‘V’자를 그리고 있었다. 이 후보 유세 현장의 ‘V’자는 기호 2번과 승리를 동시에 나타내는 상징이다. 지난 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항상 원내 1당으로 기호 1번을 달고 나왔던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가 이제는 기호 2번을 달고 나와 “지지율 1위 후보의 모습은 이렇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유세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인 로고송도 전 세대를 포괄한다. 이 후보 측은 젊은 층들에게 높은 인기를 구사하는 슈퍼주니어의 ‘로꾸꺼’에서부터 트로트 ‘무조건’까지 7개 노래를 개사해 로고송으로 사용한다. 이에 맞춰 율동을 하는 당원들은 한나라당의 고유색인 파란색의 목도리, 모자, 티, 스카프 등을 매고 유세 현장을 뜨겁게 달궜다. 파란색으로 페이스 페인팅까지 했다.
이런 유세 현장의 열기와 함께 이 후보는 그 곳에서 ‘경제 대통령’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 11월 29일 천안지역 유세 현장에서 연단에 오른 한 사람은 이 후보가 서울 시장 시절 청계천 복원 사업을 벌일 때 “이명박을 죽이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다”라고 고백을 하며 “하지만 그는 청계천뿐만 아니라 (청계천 복원사업에 반대하는)장사꾼들의 마음까지 끌어안았다”고 지원연설을 했다.
이 후보의 지난 4일 인천지역 유세 내내 사회를 봤던 탤런트 유인촌은 “야망의 세월 봤느냐, 영웅시대 봤느냐”며 이 후보를 20여 년 전 대한민국을 먹여 살린 산업을 일으켜 세운 주인공, 영웅이라고 추켜세웠다. 그는 “10번 만나주지 않으면 100번 쫓아갔다. 90% 반대하면 90%를 보완했다. 그렇게 해서 4200번의 만남이 있었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청계천이다. 하나의 약속을 위한 4200번의 실천, 그 실천을 시행하신 분이 바로 이명박 후보다”라며 그의 경제 대통령 이미지 세우기에 열심이었다.
이렇게 화려함을 자랑하며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데 여념이 없는 듯한 유세현장. 그런 이 후보의 유세 현장에서도 BBK 사건에 대한 불안한 그림자가 언뜻언뜻 엿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3일 이 후보는 계란 세례를 받았다. 당일 의정부에서 있었던 거리 유세 현장에서 승려 복장을 한 서 아무개 씨(54)가 빈틈을 노려 이 후보에게 계란을 던진 것이다. 서 씨는 계란을 투척한 후 “부패하고 정직하지 못한 이명박은 사퇴하라” “검찰은 이명박 후보를 즉각 소환해 수사하라”고 써있는 전단지를 뿌리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지난 2일에는 이 후보의 광주 지역 유세현장 앞에 ‘BBK 주가 조작 사기꾼 감옥으로’라고 쓰인 피켓을 든 50여 명의 광주지역 대학생들과 이 후보의 지지자들이 전경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일도 있었다.
이처럼 이 후보의 유세 현장은 여전히 ‘BBK’와 ‘김경준’이란 글자들을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었다. 유세에서 연단에 오른 사람들이 현장 분위기를 고조시킬 때 가장 즐겨 쓴 구호도 ‘속지 말자 김경준, 잊지 말자 김대업’이었다. 연단에 선 사람들의 찬조 연설에서도, 그 자리를 빛내기 위해 참여한 유명인사들 입에서도 “김경준의 BBK 조작에 국민 여러분이 속아서는 안된다”는 말이 단골처럼 등장했다.
BBK 사건 수사 결과에 대한 검찰 발표가 있었던 지난 5일 이 후보는 1시간가량의 간단한 일정을 당사에서 마친 후 검찰 발표를 기다렸다. 당 내부 인사들 역시 당일 검찰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기자들에게는 당일 오전 9시경부터 ‘BBK 발표 직후 강재섭 대표의 기자회견, BBK 발표 직후 클린정치 위원회 홍준표 의원의 기자회견’ 등의 휴대폰 문자가 계속해서 전해졌다.
▲ 이명박 후보가 지난 6일 청구동 김종필 전 자민련총재 자택을 방문해 환담을 나누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위), 같은날 (사)한국대중문화예술인복지회 회원들이 한나라당사에서 이 후보 지지 선언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한나라당 | ||
강 대표는 이 자리에서 이 후보의 생각을 대신 전했다. 그는 “조금 전 이 후보와 대화를 했는데 (이 후보가) 정말 너무나 사필귀정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국민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더 낮은 자세, 겸손한 자세로 임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검찰의 ‘무혐의’ 발표 직후 이 후보가 처음으로 간 곳은 KBS에서 주최하고 있는 백남준 비디오 아트 전시장이었다. 이 후보는 이 자리에서 백남준의 거북선이란 작품의 일부 부품이 떨어져 나간 것을 손수 고치는가 하면 백남준의 자화상 작품 앞에서 마지막으로 사진을 촬영하면서 “(손가락으로)V자 좀 해주세요”라는 사진 기자의 요구에 “예술 앞에서는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농담을 던지며 웃음을 짓기도 했다. 이제 그의 ‘대세론’이 시작되는 것처럼 보이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