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종용 부회장 | ||
이건희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결정적 조력자 역할을 해준 인사는 바로 신현확 전 삼성물산 회장이었다.
지난 1987년 이병철 회장이 사망한 직후 신현확 전 회장의 주재로 삼성 계열사 사장단 회의가 긴급 소집됐다. 이날 자리에서 사장단 전원의 만장일치 동의를 받아 이 회장이 새 총수로 추대됐다. 그룹 총수직 이양 과정에서 사장단을 아우를 수 있는 인사의 영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단적인 예다.
이재용 전무에게 신현확 전 회장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인물로 이학수 부회장이 꼽혀왔다. 삼성 내 2인자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의 조직 장악력을 보여 왔을 뿐 아니라 이건희-이재용 부자의 지분승계와 재산형성 과정에도 깊이 관여한 까닭에서다.
그러나 삼성 비자금 파문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으면서 전략기획실 축소개편설과 이 부회장 책임론이 불거지는 것을 간과할 수도 없다. 때문에 일각에선 신현확 전 회장이 해줬던 역할을 윤종용 부회장이 맡게 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윤 부회장은 삼성전자에서만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당초 윤 부회장에 대해선 그룹 내 홍보·정보·대관 라인을 장악한 이학수 사단의 힘에 밀린다는 점과 삼성전자 실적 비관론 팽배로 인해 향후 거취가 불투명하다는 전망까지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이학수-윤종용 두 실세 부회장의 공백은 그룹 내 심각한 리더십 부재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윤 부회장 역할론이 급부상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최종현 SK 창업주의 오랜 가신이었던 손길승 전 SK 회장은 1998년 최종현 회장 작고 당시 최태원 회장의 추대를 받아 그룹 회장직에 올랐던 바 있다. 2003년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분식회계 사태로 최태원 회장이 구속수감 되는 곡절도 있었으나 SK가 삼성 현대차에 이은 재계 3위로 올라서게 된 배경엔 리더십 부재를 막아준 손 전 회장의 존재가 컸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이 부회장의 그룹 내 권력이 너무 커졌다는 우려 또한 이재용 시대의 조력자로서 윤 부회장을 더 돋보이게 하는 대목일 수도 있다. 최근 일부 정보기관과 대기업 정보팀 인사들 사이에선 ‘그룹 내 경쟁관계 심화로 이 부회장과 반목해온 윤 부회장이 최근 이 부회장 입지 논란으로 인해 표정관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그러나 조직 내 이 부회장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 때문에 윤 부회장에게 그만한 리더십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윤 부회장이 이건희-이재용 승계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천우진 기자 wjc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