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EO형 총장’으로 불리는 이경숙 위원장. 학교 아닌 정치판에서 그의 파워가 어느 정도 발휘될 지 지켜볼 일이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경숙 위원장은 이명박 당선자가 공식적으로 대통령직을 넘겨받기까지 ‘안착’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물론 정부 초기의 국정 장악력까지 좌우할 수 있는 것이 인수위원회의 중요 책임이다. 이경숙 총장이 인수위원회 위원장으로 낙점되기까지엔 누구보다 이명박 당선자의 고심이 곁들여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명박 당선자가 이끌어갈 새 정부의 청사진을 그린다는 점에서 인수위원회의 역할과 위원장의 위치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위원장은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의원과 민정당 전국구 의원 전력 때문에 임명을 두고 논란도 적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이 당선자 본인이 강하게 밀어붙였다는 후문이다.
인수위원회의 장을 맡으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이경숙 위원장은 그동안 숙명여대 총장으로서 탄탄대로를 걸어온 인물이다. 1994년부터 현재까지 4번이나 총장직을 연임해 ‘장기집권’에 대한 대학 사회의 일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이례적인 프로필을 가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무엇보다 그의 능력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 역시 이경숙 위원장을 임명하며 그의 ‘흠’보다는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세간의 집중적 관심을 받게 된 이 위원장은 어떤 인물이며 주변의 평가는 어떤지 들어보았다.
이경숙 위원장은 요즘 매일 오전 7시 반 인수위원회가 있는 삼청동 금융연수원으로 출근해 회의에 참석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있다. 이명박 당선자가 주재하는 전체회의는 일주일에 한 차례 매주 화요일 오전에 이어진다. 그동안 숙명여대 총장으로 학교로 출퇴근하던 이 위원장은 인수위원회에 참여하게 된 뒤 밤낮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경제 살리기가 최고의 총선 카드’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명박 당선자는 특히 이 위원장에게 ‘민생경제’에 신경을 기울여 줄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경제대통령’의 브랜드를 내세워 압도적 표차로 당선된 이 당선자의 경제 정책의 큰 흐름도 결국 인수위에서 출발할 것으로 보인다. 이 위원장은 지난 25일 인수위원장으로 선정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경제 살리기와 교육에 당선자가 우선순위를 두는 것 같다. 먼저 우선순위와 경중을 가려보는 작업을 해야겠다”고 밝혔다.
무난하게 첫발을 내디디고 있지만 이 위원장의 임명에 대해서 내부에서는 적지 않은 진통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이 위원장이 국가보위입법회의(국보위) 입법의원을 지낸 것과 민주정의당 전국구 의원 전력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 위원장은 1980~81년 국보위 입법의원, 1981~85년 민정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전두환 정권을 만들어나가는 데 일정한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당시 국보위 입법회의는 1980년 5월 전두환 정권의 권력 장악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들기 위해 무리하게 급조한 입법기구였다. 국보위에서의 활약으로 이 위원장은 민주정의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아 11대 국회의원이 됐다.
이러한 전력이 문제시될 것을 염려했던 한나라당 내 일부 인사들도 강하게 이 위원장의 임명에 반대했었다고 한다. 공식 발표 하루 전인 24일 오후 이재오 최고위원은 이명박 당선자를 찾아가 2시간여가량 독대하며 ‘담판’을 벌이기도 했다. 이 최고위원은 “첫 인사인데 비판받을 소지가 있는 인물은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명박 당선자는 “흠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작은 흠보다 능력이 중요하다”며 소신대로 밀고 나갔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범여권은 이 위원장의 임명을 감행한 이명박 당선자의 역사의식을 문제 삼고 있다. 황선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은 정례브리핑을 통해 “80년 5월 국보위 참여는 ‘묻지 않을 수 없는 과거’”라며 “그 하나의 경력이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를 예상할 수 있게 하고 권력의 월권행위에 대한 무심함도 예측할 수 있게 한다”고 비판했다. 황 부대변인은 “이명박 당선자의 인생처럼 인사원칙조차 ‘과거는 묻지 마세요’여서는 안 된다. 인수위원장 인선을 보니 후보 시절 광주항쟁을 광주사태라고 말하던 이명박 당선자의 철학이 새삼 걱정스럽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 이경숙 위원장이 지난 12월 25일 숙대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임명 소감을 밝혔다. 연합뉴스 | ||
이러한 논란이 예상됐음에도 이명박 당선자가 이 위원장을 ‘밀어 붙인’ 배경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분석이 있다. 한나라당 측은 이 당선자의 ‘실용주의적 사고’가 반영된 인사였다는 설명이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명박 당선자의 인사스타일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념적 좌우를 가리는 것보다 능력 위주로 사람을 평가하는 방식”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여러 가지 흠과 의혹이 제기됐지만 결국 능력으로 평가받고 대통령에 당선된 이 당선자 자체가 이 위원장 인사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사례 아니겠는가”라는 분석을 하기도 했다.
이미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손병두 서강대 총장 등 인수위원장 직에 거론됐던 인물들에 앞서 이명박 당선자는 이 위원장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대선 기간 중 이명박 후보로부터 선대위원장직을 제의받았으나 고사한 바 있다. 이 위원장은 당시 내년 8월까지인 총장의 임기가 많이 남아있어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반면 이번 인수위원장직은 “학교가 방학 기간이고 2개월만 열심히 수행하면 되는 것이어서” 수락했다고 밝혔다.
한편 이 위원장이 비정치인이라는 것과 함께 ‘여성’이라는 점 또한 인수위원장 직에 적합했다는 분석도 있다. 인수위 구성을 두고 치열한 파워게임과 줄서기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비정치인이자 여성’인 이 위원장이 인수위를 보다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위원장의 인사에 대해서는 ‘코드인사’라는 또 다른 비판도 없지 않다. 이명박 당선자와 같은 소망교회를 다니고 있는 이 위원장은 오래 전부터 이 당선자와 ‘친분’이 있던 인물이다. 이경숙 위원장은 ‘총장직에 머무는 이유를 사사로운 이익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부름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서울시 봉헌 발언’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던 이 당선자는 이 위원장뿐 아니라 소망교회 출신 인사들을 대거 기용해 우려를 낳고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해 주호영 대변인은 “당선자께서 다니시는 교회의 신자가 7만 명이나 된다. 인수위원장 되신 분하고 같은 교회에 다니는 줄은 언론의 보도를 통해서 처음으로 알게 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여러 가지 인연이 겹치는 사회에서 그런 거 따지면 실제 쓸 사람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 당선자와의 친분에 대해 이 위원장은 “이명박 당선자가 서울시장 재임 중 각 대학이 컨소시엄을 만들어 연구 프로젝트를 제출해 같이 일하는 기회가 많았다. 장학금 수여식이라든지 연구 컨소시엄 프로젝트를 의논할 때 뵐 기회가 있었다. (내가) 서울시향의 이사장을 하고 있어 함께 일하면서 만났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위원장이 이명박 당선자에게 높은 신임을 얻게 된 것은 그가 숙대 총장으로서 보여준 역량이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1943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 위원장은 숙대 정외과를 수석 입학, 수석 졸업하고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76년 모교인 숙대로 돌아온 그는 이후 총장 자리에 오르기까지 학교의 요직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 이명박 당선자(왼쪽)와 이경숙 위원장. | ||
이 위원장은 총장 재임 중에도 다양한 사회 활동을 벌여왔다. 방송위원회 위원,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위원, 제2의 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외교통일부 자문위원, 국회제도개선위원,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이사장 등의 이력을 쌓으며 ‘정치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듣고 있기도 하다.
이 위원장은 2006년 처음 총장에 선출된 이후 지난해까지 1000억 원의 대학발전기금을 모으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취임 초 ‘개교 100년을 맞는 2006년까지 1000억 원을 달성하겠다’고 약속했던 목표를 이룬 것. 이 총장은 대학발전기금 모금 과정에서 ‘제2 창학’이라는 타이틀로 대규모 행사를 계획하며 일부 교수들에게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냈다.
이 위원장은 ‘제2 창학 선언일’을 1995년 2월 22일로 정하고 당시 ‘등록금 한 번 더내기’를 제안했다. 당시 등록금 액수는 150만 원가량. 행사일 하루에만 2500여 명이 참석했고 약정된 기부금이 62억 원이었다고 한다. 그때까지 숙대 역사상 기금 모금 최고액이 2억 원 정도였다고 하니 이 액수는 ‘기적’과도 같은 수치였다. 이 위원장은 기부금 모금의 비결에 대해 “꿈을 판다고 말한다. 대학은 인재를 양성하는 곳인데 인재를 양성해서 대학이 쓰는 것이 아니지 않나. 사회에 공헌하고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이렇게 설명을 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에게 지원을 요청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 위원장의 총장 취임 이후 숙대는 표면적인 성장을 포함해 개교 이후 가장 빠른 발전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캠퍼스 부지가 2배로 늘고 재학생, 교원 수도 크게 늘었다. 또 2002년에는 세계적인 요리학교 ‘르 코르동 블루’의 석사과정을 개설해 대학의 글로벌화에도 성공했다는 평을 들었다.
이 위원장은 또 숙명여대를 통해 21세기형 세계적인 여성지도자들을 키워내는 것에 목표를 두고 ‘섬기는 리더십’을 강조해 왔다. 이명박 당선자도 이 위원장에게 “숙대도 섬기는 봉사고 나도 국민을 섬기겠다고 약속했다”며 취지에 공감하기도 했다. 또 이 위원장은 ‘현모양처’를 떠올리는 숙대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울어라 암탉’ ‘나와라 여자 대통령’과 같은 파격적인 모토를 내세워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숙대의 단결력이 사회적으로 앞으로 좀 더 두각을 보일 것이라는 예견도 나온다.
임명 과정에서의 논란을 뒤로 하고 이 위원장의 선출 이후 한나라당 내에는 대체적으로 무난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 이들이 많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인수위원장 직 제의를 받은 사람 중에는 차기 정부에서의 ‘자리’를 요구한 이도 있다고 하더라. 이경숙 위원장 체제 후 확연히 달라진 게 있다면 ‘줄서기’가 많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젠 누구한테 줄서야 돼?’라는 우스갯소리를 하는 인사들도 있다. 그런 면에서는 긍정적인 결과라고 본다. 이견이 없진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무난하다고 받아들이고 지켜보자는 입장이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짧은 임기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인수위원장 자리는 칭찬보다 비판을 듣기 쉬운 곳이다. ‘학교’가 아닌 ‘정치판’에서 이경숙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의 정치력이 어느 정도의 힘을 발휘할 지 지켜볼 일이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